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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선생과 함께 떠나는 조선시대로 시간여행제자 윤종진 후손 다산금속 윤영상 회장 소장유물 특별전
주희춘 기자  |  ju@nsor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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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8.26  10: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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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5일까지 다산기념관 특별전시실
다산 관련 미공개 간찰, 추사 김정희와 교류서신 등 전시
도암 귤동마을 해남윤씨와 교류, 친분 확인가능

최근에 다산기념관에서는 9월 25일까지 59일동안 다산금속 윤영상 회장의 소장유물 특별전으로 ‘다산과 강진, 다산을 품은 귤동’을 주제로 특별전을 개최한다. 이번에 전시되는 유물은 총 30여점으로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다산관련 유물들이 상당히 많다.

이번 전시는 크게 3부로 구성된다. 1부는 ‘다산과 귤동마을의 인연’으로 다산이 귤동마을로 들어오게 된 과정과 해배 이후 다산의 후손들과 귤동마을 해남윤씨와의 지속적인 교류를 살펴보고 이 두 집안의 관계를 뒷받침할 수 있는 3대에 걸친 다산 집안 간찰을 관람할 수 있다.

2부에서는 귤동마을의 입향조인 윤취서와 다산을 다산초당으로 모셔온 윤규로에 이르기까지 귤동마을의 해남윤씨 내력을 알수 있으며 윤규로가 선현의 글씨를 모으고 다산이 발문을 쓴 ‘군현유묵’을 비롯한 귤동 해남윤씨 집안 관련 유물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3부는 ‘다산의 제자 순암 윤종진’으로 그동안 다산의 제자인 황상, 이청, 윤정기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언급이 적었던 윤종진에 대해 살펴보는 자리이다. 다산이 직접 윤종진의 호를 지어준 내용이 수록되어 있는 ‘순암호기’를 비롯해 윤종진이 병인양요 때 의병을 모아 창의한 사실을 뒷받침할 수 있는 당시 어영대장의 간찰과 강진·해남·전라병마절도사들과 교우하였던 간찰 등을 통해 당시 강진 지역내에서 윤종진의 위상을 확인해 볼 수 있다.

이번 전시유물들은 대부분 다산과 도암 귤동마을 해남윤씨와의 긴밀한 관계를 알 수 있는 것들이다. 다산 선생이 해남윤씨와 친분을 쌓을 수 있었던 것은 다산 선생의 어머니가 해남윤씨 윤두서의 손녀였기때문이었다. 한마디로 외가였던 셈이다.

강진읍 사의재 부근에 머물렀던 다산 선생이 현재의 다산초당으로 거처를 옮기게 된 것도 귤동마을의 해남윤씨 덕분이었다. 본래 다산초당은 해남윤씨의 산정이었다. 이 곳 산정에서는 해남윤씨의 자제들을 교육하던 곳으로 주로 사용됐다.

해남윤씨의 산정이던 다산초당에 다산 선생이 기거하기 전에도 종종 방문해 마을의 윤단, 윤규로와 친분을 나누기도 했다. 그러던 중 1808년 봄에 윤단이 다산 선생에게 현재 다산초당을 거처로 내어주면서 다산 선생이 머무르게 된 것이었다.

윤규로는 다산 선생에게 산정을 내어주는 대신 자신의 네 아들인 종기, 종억, 종익, 종진과 윤규하의 두 아들 종수, 종두 등의 지도를 부탁하면서 제자로 받아들여지게 됐다. 제자들 덕분에 다산 선생은 다산초당에서 본격적으로 저술활동을 시작할 수 있었다. 이번에 유물을 기증한 다산금속 윤영상 회장은 윤규로의 막내아들인 윤종진의 후손이다.

이번에 기증받은 유물은 윤종진가의 간찰과 시문 모두 61점이다. 이들은 대부분 수신자가 나타나 있지 않다. 피봉엔 상당수가 ‘귤동(橘洞)’으로 표기되어 있을 뿐이다. 그러나 내용이나 작성 시기 등을 감안할 때 이들의 수신자는 윤규로와 윤종진일 것으로 보인다.

그 이전에도 윤종진이 받은 간찰이 2통 소개된 적이 있고, 이 외에도 이들이 받은 상당한 자료들이 있었을 테지만 현재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이 정도다. 이들의 분량이 많다고 할 수는 없지만 다산의 제자 중에서 이만큼의 간찰이 소개되는 것은 처음이다. 이 유물을 통해 윤종진가의 교유 관계를 확인할 수 있음은 물론이고, 그의 삶의 일부를 재구할 수 있다.

윤종진은 다산의 강진 유배시절 제자였고, 해배 후에는 다신계를 결성하여 다산가와 계속해서 관계를 유지했다. 다산의 아들인 정학연의 <증척제기숙금계>는 두 집안의 관계가 얼마나 가까웠는지 잘 알려주는 내용이 담겨있다.

이 밖에도 다산의 손자인 정대무와 정학무의 편지를 통해서도 두 집안의 관계를 잘 살필 수 있다. 또한 정약용의 미공개 간찰이 추가로 공개된다. 편지에 이름은 없지만 서체로 볼 때 다산의 간찰이 분명한 것으로 짐작된다.

편지내용으로 볼 때 다산이 해배 후 윤규로에게 보낸 것으로 다산의 친필 간찰이 새롭게 추가되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두 집안의 관계는 굳이 이들 자료가 아니더라고 잘 알려져 있지만 새롭게 소개되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또 이번에 전시되는 유물중에서는 유명한 추사 김정희와의 관계도 알 수 있는 편지도 있다. 윤종진은 김정희와 깊은 교유가 있었다. 윤종진은 어떻게 김정희와 교유를 하게 되었을까? 김정희는 일찍부터 정학연과 교유가 있었고 정학연을 통해 윤종진과도 교유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직접적으로는 김정희의 부친 유배와 관계가 있다.

김정희의 부친 김노경은 순조의 아들 효명세자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정쟁에 휘말려 고금도로 유배가게 된다. 이로부터 4년 동안 김노경은 고금도에서 유배생활을 하게 되는데 이 때 김정희는 정학연을 통해 강진(康津)에 있던 다산 제자들과 인연을 맺게 된다. 정학연이 그들을 통해 추사 부친의 유배생활을 돌보게 했기 때문이었다.

윤종진은 두 차례에 걸쳐 의병을 일으켰다. 첫 번째는 병인양요가 일어났을 때였다. 의병을 일으켜 장흥에 이르렀는데, 병인양요는 이미 끝난 뒤였다. 그러자 어영대장 이현직이 편지를 보내왔다. 피봉에는 병사라 한 것으로 보아 전라병사를 통해 전달했던 것으로 보인다.

윤종진에 대한 칭찬과 함께 향후에도 국난이 있을 때 의병을 일으켜 달라는 부탁을 하고 있다. 그리고 얼마 후 광양에서 민란이 일어났다. 윤종진은 이번에도 노구를 이끌고 창의했다.

하지만 민란이 조기에 진압되면서 싸움에 참여하지는 않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호남병마절도사 이승연이 편지를 보내 위로하기도 했다. 두 번에 걸친 창의는 윤종진의 이름을 크게 알리는 계기됐다. 이미 행당의 후손으로서 지역사회에 탄탄한 기반을 가지고 있었던 터에 다산의 제자라는 자부심이 그로 하여금 국난 극복의 선두에 서도록 했을 것이다. 다산의 가르침을 잘 실천한 제자가 되었던 셈이다.

이번에 전시 유물들은 대부분 서신들로 다산 선생이 강진으로 유배온 이후 해남윤씨와 활발히 교류했고 사후에도 후손들 간에 활발한 교류가 이어졌음을 알 수 있다. 또 그동안 많이 알려지지 않았던 다산 선생의 제자였던 윤종진의 의병활동에 대해서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도 전시된다.

최종열 다산기념관장은 “전시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신 윤영상 회장님께 감사드린다”며 “이번 전시는 강진의 지역사회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자리로 다산과 관련한 새로운 스토리 및 강진의 문화콘텐츠 개발의 기초가 될 수 있는 특별전이다”며 기획의도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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