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식당 떡갈비’ 강숙월 사장

40여년 동안 강진읍 동성리에서 갈비집을 했던 강숙월 사장은 손맛은 주인의 정성으로부터 찾아온다고 했다. 강사장은 그 정성으로 40년 동안 흔들리지 않은 손맛을 지켜왔다. 강사장은 "주인들이 정말 손님을 진심으로 위한 마음으로 음식을 만든다면 장사는 잘되게 돼 있다"고 했다.
58년도 시작 60, 70, 80년대 성업, 직위고하 막론 입맛 사로잡아
“손맛이라는 것은 주인의 정성... 정성들어가면 맛난 음식나와”
특별한 메뉴 부족한 강진, 그때 그맛 다시 만들 수 없을까

한여름에 냉면이 그립고, 추운날 곰탕이 생각나듯이 요즘 강진에 변변한 식당메뉴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옛날을 그리워한다. 그중에 대표적인 것이 있다.

‘그때 동성식당 떡갈비가 참 맛있었는데... 요즘 강진에는 왜 그런 식당이 없지’ 
그땐 그랬다. 밤이되면 강진읍 동성리 신식당(동성식당 전 이름) 아홉 개 방이 꽉 찼다. 주방에서는 연탄불에 익어가는 떡갈비가 지글지글한 냄새를 풍겼다. 갈비굽는 냄새가 문틈으로 빠져 나갔다. 밖에서 줄을서 기다리고 있던 손님들이 언제 방이 비느냐고 재촉했다.

때는 1958년 겨울이다. 강진의 최대 번화가 시장통 골목에 신식당이라는 갈비집이 문을 열었다. 주인은 26세의 강숙월(80)사장. 한복을 입은 젊은 강숙월 사장은 얼굴도 예뺐지만 손맛이 남달랐다.

주 메뉴는 갈비와 떡갈비. 여기에 곰탕을 덤으로 취급했다. 신식당 갈비가 맛있다는 소문이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당시에는 강진 인구가 11만명이 넘을 때다.
 
인근 5개 군을 관할하는 기관이 세무서와 한전등 5개나 됐다. 소위 기관직원들이 많았다. 개업한지 얼마되지 않아 아홉 개의 작은 방이 매일같이 꽉 찼다. 군수와 경찰서장이 찾아와 갈비를 먹었다.

얼마되지 않아 장흥군수와 해남군수가 직원들을 데리고 와 ‘떡갈비 맛을 좀 보자’고 했다. 신식당 갈비는 순식간에 유명세를 탔다.  예약을 하지 않으면 갈비맛을 볼 수 없었다.

강숙월 사장은 한우 암소 갈비를 썼다. 갈비는 한짝의 무게가 스물다섯근(한근은 500g) 정도되는게 좋았다. 너무커도 갈비살이 뻣뻣했다. 갈비가 들어오면 자르고 잇는 작업이 시작됐다.

우선 갈비에 붙은 기름기를 완전히 제거했다. 그다음에 갈비를 손가락 하나 크기로 잘랐다. 살점이 붙어 있는 것은 그대로 살리고, 살점이 적게 붙은 갈비는 주변살을 얹어 붙였다.

그 다음에는 양념을 준비했다. 양념을 어떻게 했느냐는 질문에 강숙월 할머니의 표정이 달라졌다. 양념은 비법(秘法)인 법이다.

식당일을 놓은지 20년이 가까워지지만 양념비법을 말하는 것은 지금도 꺼리는 일이었다. 다행히 말이 계속됐다. 신식당 갈비 양념의 비법은 푸짐한 참기름에 있었다.

강숙월 사장은 갈비양념을 준비하면서 참기름을 듬뿍 넣었다. 고소한 참기름 맛이 소고기 특유의 기름 냄새와 어울어져 맛을 냈다.

강진사람들은 입맛이 고급이였다. 1930년대와 1940년대를 주름잡았던 고급한정식 문화가 6.25란 큰 난리가 지난간 후에도 여전히 유지됐다. 여자들이 술과 음식을 파는 요정도 많았다. 만덕장과 창덕장이란 여관에서는 유명한 백반을 팔았다. 중앙식당의 곰탕은 70년대까지 번영을 구가했다.

강숙월 사장이 맛있는 갈비를 만드는 또 하나의 비법은 양념된 갈비를 잘 굽는데 있었다. 아무리 좋은 갈비를 구입하고, 아무리 맛있는 양념을 사용해도 이게 연탄불에서 잘 못 구워지면 막장이었다.

양념이 깊게 베어든 갈비를 적쇠에 올려 너무 세지도, 약하지도 않은 연탄불에 올렸다. 적당한 불꽃이 갈비의 속살까지 골고루 익혔다. 갈비에서 흘러나오는 육즙과 양념이 배합돼 지글지글 끓기 시작할 때 하얀 접시에 갈비를 올렸다. 한복에 앞치마를 두르고 낭자를 한 강숙월 사장이 갈비를 내갔다. 손님들은 갈비의 냄새에 취하고, 맛에 반하며 소주몇병과 공기밥을 후다닥 먹어 치웠다. 

강진읍 동성리 시장통에는 아직도 옛 동성식당 건물이 남아있다. 강숙월사장은 지금도 이곳에서 살고 있다.
신식당의 갈비맛은 유명한 밑반찬이 한몫을 했다. 반드시 강숙월 사장의 손을 거친 반찬들이 나갔다. 동치미는 기본이었다. 시장이 가까웠기 때문에 푸성거리를 매일같이 구입해 손님들 상에 올렸다. 손님들은 강숙월 사장의 손맛이 대단하다고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매일같이 큰 다라이로 한다라이 만큼의 갈비가 팔려 나갔다. 직원들이 다섯명까지 늘어났다. 그러나 주방아줌마들을 밤새 붙들고 있을 수는 없었다. 다음날 사용할 갈비를 손질하는 일은 강사장 몫이였다.

갈비를 손질하는 칼이 수십개였다. 갈비 손질은 억센 뼈와 부드러운 살을 다루는 일이었다. 떡갈비용 갈비살을 다질때에는 매일 두시간 이상씩 칼을 때렸다. 엄지와 검지손가락이 항상 힘을 많이 받았다. 그때문인지 80살이된 지금은 엄지와 검지손가락이 휘어져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강숙월 사장의 갈비가 유명해 지면서 강사장을 초빙하려는 사람들이 많았다. 80년대까지만 해도 강진사람들은 외지에서 손님이 오면 직접 집으로 초청을 해서 만찬을 베푸는 관례가 있었다. 신임 군수가 오면 지역 유지들이 돌아가면서 집에서 식사를 대접했다.

신임군수를 대접하는 밥상위에 갈비가 빠질 수 없는 일이었다. 집에서 음식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강사장을 초빙했다. 갈비를 고르는 것에서부터 양념, 굽는 작업이 강사장의 일관된 손길로 이뤄졌다.

가정 주부들도 갈비맛에 감복했다. 어쩌면 저렇게 손맛이 좋을까 하는게 당시의 유행어였다. 강사장은 식당일이 너무 바빴기 때문에 가정집 초청은 많이 가지 못했다고 했다.  

신식당의 갈비맛을 본 외지인들중에 우리 지역에서도 저렇게 하면 성공할 수 있겠다고 욕심을 내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서 한번은 전라북도 이리(지금의 익산시)까지 초빙을 받아 올라갔다.

갈비집을 열었으니 한 일주일 정도 주방직원들을 가르쳐 달라는 주인의 간절한 요청이 있었다. 큰 맘먹고 이리로 올라갔다. 일주일을 지도했다. 갈비를 고르는 법에서부터 시작해 피빼는 방법, 칼질하는 방향, 양념 배합 비율, 굽는 정도등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전수해 주었다.

당장 손님들이 줄을 섰다. 강진이나 이리나 사람의 입맛은 비슷했던 것이다. 그렇게 손님들이 늘어나는 것을 보고 강진으로 내려왔다. 그런 며칠후 이리 갈비집 사장으로부터 기별이 왔다. 아무리 잘해 볼려고 해도 그 때 그 갈비맛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일이 있은 후 시중에는 “역시 강사장의 손맛이 맛있는 갈비를 만든다”는 소문이 더 크게 돌았다.

강숙월 사장이 기술을 전수 해 준 곳은 그밖에도 몇 곳이 있다. 지금도 강진에서 유일하게 떡갈비를 하는 한 식당도 초창기에 강숙월 사장이 기술을 가르쳤던 곳이다. 모 면의 갈비집도 강사장으로부터 양념기술을 배워갔던 곳이다.

그렇게 50년대 후반, 60년대, 70년대, 80년대를 보냈다. 어느때 인가 식당이름을 동성식당으로 바꾸었다. 돈도 많이 벌었다. 매일같이 식당이 꽉 찼기 때문에 돈 벌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그러나 돈이라는게 그렇게 인연이 깊은게 아니였다.

한번은 계모임을 했는데 큰 돈을 잃었다. 날마다 갈비 팔아서 모은 돈을 순식간에 날렸다. 요즘에도 그 생각만 하면 한숨이 절로 나오지만 포기하고 있다. 그저 자식들 키웠으니 그것으로 만족할 따름이다.

60대 초반이 되던 어느날 갑자기 눈에 이상이 생겼다. 20여년전의 일이다. 한참 더 일할수 있는 나이에 동성식당 문을 닫았다. 많은 사람들이 아쉬워했다. 지금도 강사장을 만나는 사람들은 “그때 아짐 떡갈비가 최고였는데요”하는 말을 자주한다.

요즘처럼 음식 한가지 맛있으면 전국에서 손님들이 몰려오는 시대에 ‘동성식당 떡갈비’는 다시 태어날 수 없는 것일까. 일단 강숙월 사장을 통해 떡갈비가 다시 선 보일 수는 없을 것 같다.

올해 80세가 된 강할머니는 몸이 몹시 쇠약하다. 인터뷰도중 떡갈비를 좀 해주실 수 있느냐는 몇차례의 부탁에 손사래를 쳤다. 또 종업원들이 기술을 전수받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 맛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은 이상 ‘동성식당 떡갈비’는 반드시 재현될 수 있을지 모른다. 강할머니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손맛이라는게 정말 있습니까’

“그게다 정성이지. 손님들에게 정말 맛있는 음식을 드려야겠다고 진심으로 생각하면 손맛이라는게 나와. 우리집에 찾아 온 손님들에게 드릴 갈비를 손질하는데 실수가 있으면 안되지. 그런 마음 없으면 식당이 안돼. 좋은 음식 내 놓으려면 식당주인들이 참 마음을 옹골차게 먹어야 해”

정성 들여 갈비를 만들면 누구나 그때 그 맛을 낼 수 있다는 것인데, 강진에서 ‘동성식당 떡갈비’ 맛을 낼 사람은 언제쯤 나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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