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의 역사를 다시본다. 일성록을 통해 본 강진의 옛날, 이번주부터 연재

‘일성록’은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와 함께 조선의 대표적 관찬(官撰) 기록물이다. 정조 임금이 9세 때 스스로 반성하기 위해 쓴 ‘존현각일기’부터 1901년 순종 대까지 151년간 매일 왕의 동정과 국정의 제반 사항을 기록한 일지다.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는 한글로 오래전에 번역됐으나 일성록은  정조때 기록은 부분이  지난해말에야 번역돼 공개됐다. 한국고전번역원의 전신인 민족문화추진회가 1998년 번역을 시작한 지 17년만에 총 185책으로 출판된 것이다.
 
전체 4,700여만자, 2,329책으로 구성됐으며 현재 38%에 해당하는 677책이 번역됐다. ‘일성록’ 전체의 한글화 작업에는 앞으로 21년이 더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한국고정번역원이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있는 일성록 정조때 기록부분중에 강진관련 기록을 발췌해서 연재한다./편집자 주.

<정조12년(1788) 4월 9일 기록>
강진(康津)의 화재를 당한 민가를 규례 이상으로 돌보아 도와주라고 명하였다.

전라 감사 심이지(沈頤之)가, 강진현의 민가 34호가 화재를 당하여 연소(延燒)되었다고 아뢴 데 대해, 하교하기를, “한창 농사지을 봄에 살 곳을 잃었으니 너무도 불쌍하고 염려스럽다. 원휼전(元恤典) 이외에, 도백으로 하여금 규례 이상으로 돌보아 도와주게 하고 수령을 신칙하여 속히 집을 짓고 편안히 살 수 있게 해 주라고 묘당에서 해도(該道)에 신칙하게 하라.”하였다.

【해설】
4월 9일이라면 딱 이때쯤 되는 시기였던 것으로 보인다. 오늘이 음력 4월 초에 해당된다. 신록이 푸르름을 더하고, 들녘은 농사를 준비하는 농민들의 손길이 빠쁜 시기에 34호나 되는 민가가 불타는 큰 사고가 일어났다.

화재의 규모로 봐서 빽빽이 들어선 초가집의 한곳중에 불이나 이집저집으로 불이 확산된 것으로 보인다. 바쁜 농사철에 집을 잃은 주민들이 ‘너무도 불쌍하고 염려스럽다’는 영조의 표현이 진지하다. 영조는 원휼전을 내릴 것을 지시한다.

원휼전이란 나라에서 천재지변으로 인해 생계를 잃은 백성들을 구제하기 위해 내리는 곡식을 말한다. 수령을 신칙하라는 말은 ‘나의 말을 잘 듣고 나의 마음을 체득하여’라는 정도로 해석된다. 묘당은 조선시대 가장 높은 행정기관인 의정부를 의미하고, 해도는 경상도를 뜻한다.
 
이를 풀어보면 정조는 의정부에 강진의 화재사건을 잘 처리하도록 하고 이를 경상도에서도 잘 새겨서 혹시 이런 일이 일어날 때 큰 참고를 하라는 취지의 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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