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대 말에 지은 고급 한옥
도시계획도로 공사로 철거돼 떠나가

월드컵이 열린 2002년 많은 사람들이 축구에 열광하고 있을 때 강진에서는 멋진 한옥 한 채가 서울로 이사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당시 강진 사람들에게 많이 회자됐던 비장네집 철거였다. 비장네는 지금의 강진읍 금두꺼비 식당 근처에 있던 한옥이었다.

강진의 유명한 서예가였던 고 김현장 선생이 살았던 집으로 할아버지가 지었던 고급 한옥이였다. 1910년대 말경에 지은 건물이었는데 경복궁을 중수했던 목수들이 동원됐고, 백두산 적송을 가져와 목재로 지은 집으로 유명했다. 매년 대학 건축과 학생들이 견학을 오는 한옥이였다.

이 집은 건축에 문외한이라도 안동 하회마을에서나 볼 수 있는 한옥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곳이였다. 집의 구조는 안채와 사랑채, 행랑채로 구성되어 있고 특이한 것은 사랑채와 안채가 행랑채에 의해 완전히 공간이 분리되어 있었다.

이같은 건축적인 중요성과 함께 고 김현장선생의 생가인 이곳은 강진의 정신이 서려있는 곳이라고 사람들은 입을 모았다. 일본 유학파였던 김선생은 60년대 이후 강진을 발전시킨 중심인물 중의 한사람이었다는 평을 들었다.
 
강진에 정통 서예의 씨앗을 뿌렸고, 강진읍 춘곡마을 앞 소규모간척지는 직접 사비로 조성해 주민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청자사업소가 탄생하게한 역할을 하기도 했다. 비장네는 많은 사람들의 아쉬움속에 2003년 5월 이전되기 위해 철거됐다.

강진을 떠난 비장네 한옥은 일년여만에 경기도 광주시 남종면 분원리에 모습을 나타냈다. 조선시대 왕실용 백자를 공급했던 분원에 문화진흥원장을 지냈던 김정옥선생의 박물관 건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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