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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의 역사향기]조선시대 9급으로 관직에 들어가 2급까지 승진한 윤복선생
주희춘 기자  |  ju@nsor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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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06.05  10: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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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암면 용흥리에 있는 윤복선생의 신도비. 신도비란 무덤으로 가는 길목에 세워 죽은 이의 사적을 기리는 비석이다. 2003년에 전남기념물 제203호로 지정됐다.
최대 정치적 혼란기

중심 잃지 않은 선비

조선최고 양반촌 안동부사 역임
선생의 ‘높은 인품·학문세계’ 반영 

흔히 관운이 좋은 사람으로 고건 전 총리를 꼽는다. 61년 23세의 나이에 고등고시에 합격해 만 35세이던 73년에 강원도 부지사가 됐고, 2년 후인 75년에는 당시 최연소로 전남도지사에 올랐다.
 
이후 전두환 정권때 교통부 장관을 거쳐 농수산부 장관이 됐다. 민정당 국회의원을 지내던 87년에는 내무부 장관에 올랐다.

97~98년 김영삼 정부의 마지막 총리를 역임했고, 김대중 정부에선 민선 서울시장에 당선됐다. 2002년 2월에는 노무현 정부의 초대 총리로 다시 ‘부름’을 받았다.

총리로 재임하던 2004년 국회의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태에 따라 3월12일부터 5월14일까지 대통령 권한대행이란 자리를 맡기도 했다. 고건 전 총리는 대통령만 빼고 다해 본 사람이다.

관운이란 표현이 그렇듯이 이 정도의 직책들을 갖기 위해서는 운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지만 그 사람의 능력과 높은 청렴도가 없으면 아무리 운이 좋아도 어려운 일이다.

고건 총리의 부친인 고 고형곤씨는 한 인터뷰에서 “아들에게 누구누구의 사람이다는 말을 절대 듣지 마라”고 당부했다고 했다. 고건총리의 관운뒤에는 특정 정파나 계파에 속하지 않은 나름대로의 중심지키기가 있었던 것이다.

조선시대로 돌아가 고건 못지 않게 관운이 좋은 사람을 찾는 다면 단연 행당공 윤복선생을 꼽을 만하다. 윤복선생은 요즘 직급으로 9급으로 관직을 시작해 훗날 차관보급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 과정에서 네명의 임금이 바뀌었다.

윤복선생은 1538(중종 33년)년 27세되던 해에 별시문과에 합격했다. 이어 성균관 학유(성균관 정구품 관직)를 지낸 것을 시작으로, 전적(典籍. 성균관에 둔 정육품 관직), 예조정랑(禮曹正郞. 예조(禮曹)에 둔 정오품 관직)을 역임했다. 이어 사헌부 장령(掌令. 사헌부의 정사품 관직)을 지냈다. 이 과정에서 인조 임금이 2년 동안 재위했다. 

행당공 선생은 왕이 바뀐 1547년(명종 2년)에 부안현감으로 부임한데 이어 1552년 낙안군수가 됐다. 이어 한산군수를 지낸 후 종 삼품에 해당되는 광주목사(光州牧使)를 맡게 된다. 지금으로 이야기하면 관리관급으로 승진한 것이다.
 
이어 같은 품계인 선공감부정(繕工監副正)이란 자리를 역임한데 이어 1565년(명종 20년) 지금의 안동일대 16개군을 관할하는 안동대도호부사(정3품)가 됐다. 윤복선생이 조선시대 최고 양반촌을 자임했던 안동대호부의 부사로 임명된 것도 그렇지만 당시 안동에 살던 퇴계 이황과 교류하며 퇴계학을 호남에 전파시킨 것을 볼 때 학문이 얼마나 높았을지 상상해볼 수 있다.  

행당공 선생은 1573(선조6년)년 승정원 좌ㆍ우부승지(정삼품 당상관직)를 거친데이어 그해 8월 충청도관찰사가 되면서 종이품(從二品)으로 승진한다. 지금의 차관보급이다. 일반공직자로서 최고의 자리까지 간 셈이다.

윤복선생의 직책을 살펴보면 정9품에서 시작한 벼슬이 종이품까지 꾸준히 상승단계를 거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임금이 네명이나 바뀌었다. 무엇보다 당시 조선사회는  소론, 노론, 남인 서인이 갈리어 당파싸움에 메달릴 때였다.

실세권력이 바뀔 때 마다 관직이 널뛰기를 하던 시대다. 윤복선생은 조선시대 정치적으로 가장 혼란기때 관직을 맡으면서도 가장 초연하게 관직과 학문세계를 섭렵했던 것이다.

윤복선생은 충청도관찰사에 임명된지 8일만에 스스로 사임했다. 아마도 윤복선생이 관직에 계속있었다면 더 높은 직책까지 올라갔을게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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