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명 / 완도금일고등학교 교사

김종명 선생님의 우리고장 문화재<1>

병영을 이야기하면서 하멜을 빼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 나라를 최초로 서방세계에 소개한 『하멜표류기(1668)』는 당시 조선의 생활풍속과 지리, 정치․군사․종교․교육 등을 상세하게 기록해 서방세계에 알리고 있다는 점에서 그 역사적 가치가 매우 크다고 알려져 있다.

하멜 일행은 1653년 8월(효종 4년) 네델란드 동인도회사 소속이었던 상선 ‘스페르위르호’를 타고 일본 나가사키로 가다 폭풍우를 만나 제주도로 들어왔다.

이후 1666년 여수에서 배를 타고 일본으로 탈출하여 본국으로 돌아가기까지 약 14년 간을 우리 나라에서 억류생활을 하게 되는데 제주도와 서울, 남원, 순천 등을 거쳐 이곳 병영에서 7년 간을 머무르게 된다.

당초 그가 밀린 임금을 청구하기 위해 증거로 썼다고 알려진 『하멜표류기』는 ‘조선왕국 견문기’이자 한편으로 병영 일대의 스님들과 교류, 기근과 질병으로 고생하는 주민들의 실상, 자신을 감시하던 병사들과의 인연 등을 생생하게 담고 있어 ‘전라병영 체류기’라 해도 좋을 만큼 강진이야기가 수두룩하게 나온다.

 그런 인연으로 강진군은 1998년 그의 고향인 네델란드 호르큼 시와 자매결연을 체결하였으며, 2007년 12월엔 강진하멜기념관을 개관하여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서기였던 핸드릭 하멜과 일행들의 7년 여 동안 강진생활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역사전시공간으로 자리매김 하였다.

현재 이곳에는 하멜의 고향인 네덜란드 호르큼 시에서 기증한 하멜동상과 대포 등 관련 유물 50여 점과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기증한 아시아 고지도 2점, 이태호 명지대 박물관장이 기증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설립 300주년 기념 청화백자, 신동규 강원대 교수가 기증한 1939년 우리 나라 최초로 번역 출판된 하멜보고서 등 7권의 하멜관련 고서 등이 전시되어 있다.

현재까지 하멜일행이 남긴 유무형의 문화적 영향으로 빗살무늬 형태의 ‘하멜식 담쌓기’와 수로 형태, 나무를 통으로 깎아낸 나막신 등이 알려져 있긴 하지만 무려 7년 동안이나 지속되었던 최초의 문화접촉이 끼친 영향은 그보다 훨씬 많았을 것으로 짐작되어 보다 면밀한 조사가 필요하다.

또 하멜기념과 가까이에 있는 성동리 은행나무(천연기념물 385호)는 수령이 약 800년쯤으로 추정되는 노거수로 당시 하멜 일행이 머물렀던 자리에 있어 머나먼 이국땅에서의 억류생활의 고단함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함께 나누었을 것으로 짐작되어 이곳 사람들은 ‘하멜 은행나무’라고 부르기도 하여 함께 둘러볼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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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명선생님은...

병영중학교에서 첫 교직을 시작했다. 강진과 장흥에서만 20년 넘게 지리교사를 했다.
현재는 완도금일고등학교에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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