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 99년에 탐진댐대책추진위원회구성

“강진만 어패류 피해 대책세워야”주장

탐진댐공사가 시작된 후에도 주민들의 반발은 계속됐다. 장흥주민들이 집회를 하는 모습.
90년대까지만 해도 목포에서 사는 사람들은 평생 식수걱정을 하고 살았다. 바다쪽으로 툭 튀어나온 지형 때문에 늘 먹는 물이 부족했다. 인근 무안이나 신안, 영암등에도 큰 산이 있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댐을 만들어 물을 저장할 장소가 없었다. 목포사람들은 조금만 가뭄이 들어도 제한급수를 했고, 가뭄의 정도가 세지면 멀리서 배로 물을 공수해와 사용하곤 했다.

목포는 95년부터 주암댐 광역상수도에서 하루 12만t의 용수를 공급받고 있지만 여전히 물부족을 겪고 있었다. 영암, 해남 등 소규모 상수원에서 물을 끌어 쓰고 있으나 갈수기에는 하천과 소규모 저수지가 말라 용수수급에 불안을 가지고 살았다. 영산강물은 수량은 많았으나 수질이 극히 좋지 않았다.

목포의 상습적인 용수난을 해결한게 바로 탐진댐(지금은 장흥댐)이었다. 탐진댐의 수혜대상은 목포를 비롯한 강진, 영암, 진도, 완도, 해남, 장흥 등 전남 남부권이었으나 누가 뭐래도 가장 큰 수혜를 입은 곳은 목포였다.

탐진댐은 1997년 11월 착공된다. 정부는 90년대 들어 전국에 10여개의 댐건설을 추진했으나 92년 이후 장흥 탐진댐을 제외하고는 새로 공사를 시작한 다목적 댐이 없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탐진댐 추진은 상당히 속력을 가지고 추진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남 서남부권에 하루 35만t의 생활용수와 공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한 광역상수도 사업이었다. 총 사업비는 3천6백45억원. 장흥군 부산면에 높이 54m, 길이 403m의 본댐과 부대시설을 만들어 이곳에 최대 1억8천300만톤의 물을 저장하겠다는 계획이었다. 댐 건설로 생산되는 하루 35만t의 물은 영암 15만3천t, 목포 7만t, 해남 2만2천t, 장흥 1만1천t, 강진 9천t, 진도 6천t, 완도 5천t, 하천유지 및 공업용수(전남도) 7만4천t으로 각각 배분했다.

탐진댐 공사가 시작되기전 장흥쪽에서는 보상문제라든가, 환경문제등으로 주민들의 다양한 항의가 있었으나 강진쪽은 비교적 조용했다. 그러다가 공사가 시작된 97년이 지나서 탐진댐이 강진에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들이 제기됐다. 장흥 탐진댐 건설로 예상되는 탐진강 일대와 강진만의 피해에 대해 대책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그래서 99년 구성된게  탐진댐 대책 추진위원회(위원장 김승홍 강진군의회 의장)였다. 추진위는 수차례 집회를 열고 탐진강 하류에 위치한 강진만에서는 오염되지 않은 바지락과 꼬막 등 각종 어패류가 생산돼 이 지역 어민들의 주 수입원이 되어 왔다며 탐진댐으로 인해 탐진강에 적정 유수가 없을 경우 막대한 피해가 예상된다고 이에대한 보완대책을 세워줄 것을 정부측에 촉구했다.

또 댐 주변지역 지원사업을 강진군 전역으로 확대실시 해 줄 것도 요구하기도 했다. 추진위는 건교부와 수자원공사, 탐진댐 건설추진본부 등의 성의있는 대책이 나올 때까지 환경사회단체들과 연계한 각종 환경사업들을 펼치고 환경토론회는 물론 필요하면 대규모 군중집회도 수시로 개최하기로 했으나 그 시기가 오래가지는 못했다.

탐진댐은 2002년 12월 댐 축조공사가 완료되고 2003년 2월 담수가 시작돼 그해 12월 말 준공됐다. 그후로 15년 정도가 흘렀다. 강진만의 패류가 많이 사라져 버렸다. 그때 강진사람들이 좀 더 강력하게 탐진강 건설에 따른 강진만 피해대책을 주장했다면 오늘날 강진만은 어떻게 됐을까. 지금도 탐진강은 흐르고 있다.

저작권자 © 강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