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급격한 인구감소… 기관 이전설 갈수록 확산‘민심흉흉’

3대대, 한국통신, 강진교육청, 한전강진지점등 모조리 거론
최인수 31사단장이 강진군 방문해‘이전없다’직접 해명
99년 6월 강진세무서 해남세무서로 흡수 전격 발표
1934년 어렵게 유치했던 세무서‘해남세무서 강진지서로’

90년대 말 강진사람들에게 가장 큰 충격을 주었던 강진세무서의 해남세무서 흡수통합은 99년 6월에 전격적으로 시행됐다. 주요기관이 흡수되어 갔다는 정신적인 충격이 컸으나 주민들의 세무업무에는 아무런 불편이 없었다. 좌측사진은 1934년 세무사가 처음유치돼 지었던 건물이고 가운데사진은 70년대에 다시지었던 건물이다. 제일 오른쪽 사진이 2014년 10월에 준공한 최근의 건물의 모습이다.
지난호에 설명했듯이 강진인구는 74년에서 75년 사이와 99년에서 2000년 사이에 큰 지각변동을 겪는다. 보통 한해에 1~2천명씩 감소하던 인구가 두 기간 동안에는 1만명에 가까운 인구가 줄어들었다. 1998년에서 1999년 사이에 강진에서 줄어든 인구가 9천명이 넘었다.

당시 한해 동안 9천명의 인구가 줄어든 것은 주민들에게 큰 충격이었다. 여기저기서 주민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지역내에서는 이상한 소문들이 돌고 또 돌았다. 인구가 줄어들었기 때문에 강진세무서가 옮겨 갈 것이고, 군부대는 물론, 한국통신, 담배인삼공사, 강진교육청과 농어촌진흥공사 강진지부, 국립농산물검사소 강진,완도출장소, 한전 강진지점, 국민의료보험관리공단 강진지사 등 강진에 있는 대부분의 기관들이 이전대상으로 거론됐다. 구체적으로 언제 옮긴다는 소문까지 돌기 시작했다.

주민들에게 가장 심각하게 다가왔던 것은 강진세무서 이전 소문이었다. 일제강점기에 설립된 강진세무서는 강진이 인근 해남이나 장흥지역보다 경제적 우위에 있다는 상징적인 존재였다. 유치과정에서 주변 지역과 대대적인 갈등을 이겨내며 어렵게 유치한 기관이 바로 강진세무서였다.

또 강진읍 기룡마을에 있는 3대대가 장흥으로 옮겨갈 것이란 것도 민감한 사안이었다. 3대대는 부식물의 상당부분을 강진읍 시장에서 구입해 소비하고 있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곳은 강진군이었다. 인구감소가 민심이반으로 연계되는 심각한 상황이었다. 당시만 해도 막 인터넷이 보급된 때라 주요기관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는 기관이전을 우려하는 글들이 수시로 올라왔다.

결국 98년 12월 15일 당시 최인수 31사단장이 강진군을 방문해 3대대는 이전할 계획이 없다고 분명한 의사를 밝히기에 이르렀다. 강진주민들로서는 가슴을 쓸어내리는 일이었다. 또 통폐합설과 함께 자리를 옮긴다는 소문이 나돌던 한국통신 강진지국도 일부 총무업무만 목포전화국으로 옮겨지고 인원감축도 5명선에서 그칠 것으로 확인돼 강진은 전반적으로 안정을 되찾아갔다.

그러나 기관 이전설은 끊이질 않고 이어졌다. 그후 세무서가 떠날 것이라는 소문이 지속적으로 돌았으나 “이미 3대대 존치와 함께 세무서 역시 계속 있는 것으로 확인되지 않았느냐”는 말이 대응논리로 떴다.

그러던 1999년 6월 어느날이었다. 송선호 강진세무서장이 지역 상공인들에게 설명회를 한다며 사람들을 경찰서 아래 있는 강진문화원 2층 강당으로 모이게 했다. 세무서장이 사람들을 모이게 한 일 자체가 이례적인 일이었다.

송서장은 긴장한 표정이 역력하더니 상기된 얼굴로 강진세무서가 불가피하게 해남세무서로 통합된다는 장황한 설명을 했다. 송세무서장의 말은 이렇게 요약됐다. 정부의 국세행정조직개혁안에 따라 광주지방국세청이 징세조사국과 직세국, 간세국을 없애고 납세지원국, 세원관리국, 조사1국, 조사2국을 신설해 지방국세청의 조사인력을 강화했으며 이에따라 전주와 북전주세무서를 전주세무서로, 익산과 김제세무서를 익산세무서로, 남원과 진안세무서를 남원세무서로, 순천과 벌교세무서를 순천세무서로, 해남과 강진세무서를 해남세무서로 통합하게 됐다는 것이다.

송세무서장은 납세서비스 전담과를 신설해 대민 서비스 관련조직을 강화했으니만큼 강진주민들이 세금납부와 관련해 불편한 사항은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10분 정도의 설명 후 질문을 받았으나 무어라고 질문을 던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만큼 강진세무서가 해남에 통합된 것은 충격 그 자체였다.

세무서와 관련해 해남은 강진에 큰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1934년 4월 14일 세무서 위치가 강진으로 확정돼 발표되고 관할구역을 강진, 장흥, 완도와 함께 해남까지 포함시키자 해남지역에서 들끓기 시작했다. 세무서가 강진읍으로 가기로 한 것은 잘못됐다며 면협의원, 학교조합평의원, 기타 공직자들이 총 사직서를 냈다.

동아일보 1934년 6월 15일에는 ‘세무서 위치 문제 발단, 해남공직자 총사직 단행’이란 제목으로 당시 상황을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그동안 세무서가 그 위치 문제로 격렬한 쟁탈전이 되어오다가 결국 강진읍으로 지정돼 해남에서는 세금액으로 장흥, 강진 두군을 합한것과 비슷하다며 세무서의 위치는 잘못되었으며 도당국과 감독국에 진정한 후 만약 개선되지 않으면 군민대회까지 개최하겠다고 한다’고 했다.

그러나 공직자들이 총 사직서를 낼 정도로 강한 반발을 했던 해남은 결국 세무서가 강진으로 오는것을 막지 못했다. 당시 강진 사람들로서는 이만큼 통쾌한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어렵게 유치한 세무서가 해남으로 간다니, 옛날 일을 알고 있는 지역 주민들에게는 가슴을 칠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강진사람들도 세무서가 해남세무서로 흡수통합되는 것을 결국 막지 못했다. 강진세무서의 명칭은 해남세무서 강진지서가 됐다. 그러나 모든게 전산처리되고, 금융기관을 통해 세금을 납부하는 시대에 세무서 통합이 주민들에게 준 어려움은 거의 없었다. 단지 심리적인 아픔이 있었을 뿐이었다.

그 후로 담배인삼공사 강진지사가 다른 곳으로 흡수됐을 뿐 다른 기관들은 큰 변화없이 세월을 이어갔다. 강진교육청은 강진교육지원청으로 명칭이 바뀌었고 농어촌진흥공사 강진지부는 한국농어촌공사 강진완도지사로 이름이 달라졌다. 국립농산물검사소 강진,완도출장소 역시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전남지원 강진완도사무소로 이름이 변했을 뿐이다.

한전 강진지점,  국민의료보험관리공단 강진완도지사도 튼튼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동안 강진에는 새롭게 들어온 기관도 있었다. 호남지방통계청 강진사무소와 전남해양수산과학원 강진지원, 전남도 축산위생사업소, 전남도교통연수원에 이어 이번에는 전라남도 공무원교육원이 오기로 결정이 됐다. 

90년대에 강진에서 빼 놓을수 없는 행사를 말하자면 청자문화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제1회 청자문화제가 96년 9월 15일에 열린 것. 장소는 지금처럼 대구 청자촌이 아니라 종합운동장이었다. 종합운동장 주변 주차장을 빙 둘러 행사장과 청자 전시장, 먹거리 장터가 마련됐다. 그때까지 24회째 열리고 있던 군민의날 행사가 있었으나 군민의날 행사가 말 그대로 지역내 행사였다면 청자문화제는 전국을 대상으로 열리는 첫 축제마당이었다.

청자문화제의 당시 목적을 살펴보면 새삼 고려청자의 발상지인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청자의 우수성을 국내외에 널리 알리고 전통문화를 발굴, 보존하겠다는 것이었다.

행사 내용은 지금 생각해도 재미있는 것들이 많았다. 많은 사람들의 기억속에 생생히 남아 있는 청자아가씨 선발대회와 전국노래자랑, 축등행사, 불꽃놀이, 그네뛰기 등 민속놀이 경연과 배구, 축구, 궁도대회 등 풍성한 체육대회가 열렸다.

또 지금도 유지하고 있는 분재와 난전시회가 첫 행사부터 열렸고, 시 낭송회, 서화전, 맛자랑 잔치, 서예전, 애견전시 및 애견쇼 등 각종 부대행사도 곁들여졌다.

첫대회를 치르고 난 청자문화제는 다음해부터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게 된다. 청자문화제는 제2회 대회인 1997년부터 2001년 제6회 대회까지 5년 연속 국가지정 집중육성축제로 선정된데 이어 2002년부터는 5년 연속 국가지정 최우수 문화관광 축제로 선정되면서 전국적인 명성을 굳혀갔다.

2009년 청자문화제는 새로운 모습을 갖추게 된다. ‘강진청자문화제’의 명칭을 ‘강진청자축제’로 바꾸고, 대회횟수도 금릉문화제를 포함해 37회로 조정한 것이다. 금릉문화제는 1973년부터 1996년까지 청자문화제가 열리기 전까지 개최되던 강진의 대표축제였기 때문에 청자축제의 뿌리로 해서 횟수를 포함시킨 것이다. 청자축제는 지난해 43회째 축제를 치렀다. 금릉문화제의 맥을 이어받은 청자축제는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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