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작을 지나 봉황이 활짝 날개를 펴다

신전 사내방조제를 출발한 군계는 주작산과 덕룡산을 거쳐 봉황마을을 지나게 된다. 봉황마을은 예전부터 영암, 해남군에 속해 있었지만 1990년에 강진군으로 편입돼 오늘 날에 이르고 있다. 사진은 봉황마을 회관에서 바라본 봉황저수지와 뒤로 덕룡산이 보인다.
1990년 이전까지 해남군 옥천면에 속해
새꼭재로 해남 학동, 탑동마을주민과 교류
봉황제 확장으로 농토상실돼, 마을위축 원인
돈사유치로 주민들 찬성, 반대 갈등나타나

신전면 사내방조제를 관통한 군계는 영수마을과 어관마을을 지나 주작산 서쪽능선을 따라간다. 주작산 능선을 타고 올라가다가 주작산자연휴양림과 작천소령을 지나 덕룡산과 만나게 된다. 이 곳에서 군계는 덕룡산 능선을 따라 첨봉을 지나 다시 동쪽으로 길을 잡고 덕룡산관광농원 부근을 지나게 된다.

덕룡산 관광농원은 지난 1997년 사업승인을 받아 수영장, 음식점, 숙박시설 등을 갖춘 시설로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다. 현재는 찜질방도 운영되고 있으며 최근 들어서는 귀농인들이 자리를 잡아 한옥 10여채가 신축돼 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덕룡산관광농원 인근은 대산재를 통해 해남군 대산마을과 연결되며 군계를 타고 조금 더 올라가면 강진의 봉황마을이 새꼭재를 경계로 해남군의 학동, 탑동마을과 마주보고 있다.

영암, 해남거쳐 편입된 봉황마을

봉황마을에서 해남 학동, 탑동마을로 향하는 길목에 위치한 새꼭재. 예전부터 두 마을사이를 연결하는 재로 작은 산길이었지만 1960년대 중반 확장공사를 통해 길이 만들어졌다.
봉황마을은 다소 독특한 역사를 갖고 있다. 조선시대인 1789년 당시 기록에 따르면 마을의 지명이 정확하게 기록돼 있지 않지만 영암군 옥천종면 소속으로 대산리나 흑천리에 속해있었던 마을이라 기록하고 있다. 마을이 크지 않았던 탓에 별도로 마을명칭이 있진 않았지만 영암군에 속해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1906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옥천종면이 해남군으로 편입되면서 봉황마을도 해남군에 속하게 됐다.
 
100여년이 조금 지나 영암군에서 해남군으로 행정구역이 바뀐 것이다. 바로 이 때 봉황이란 마을지명이 등장하게 됐다. 해남군 옥천종면의 마을중 하나로 봉황마을이란 이름으로 1개의 행정마을로 편제가 이뤄진 것이다. 하지만 봉황마을은 도암까지는 4㎞남짓이었지만 옥천까지는 7㎞거리로 다소 멀었다. 또 옥천으로 가기 위해서는 높지 않은 야산수준이지만 새꼭재를 넘어야 했다.

이 때문에 봉황마을의 생활권은 강진에 더 가까웠다. 불편함이 많았던 봉황마을 주민들은 중앙정부에 적극 건의한 끝에 지난 1990년 강진군 도암면의 한 마을로 편재돼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한마디로 역사적으로 영암, 해남, 강진을 모두 거쳐간 보기 드문 마을이 됐다.

거리상으로 보면 도암면소재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위치한 봉황마을이지만 도로사정이 좋지 않아 접근성은 좋지 못했다. 이는 지형상 이유가 가장 크다. 봉황마을의 바로 앞에는 봉황저수지가 있고 그 뒤에는 덕룡산이 가로막고 있다.

또 마을의 동쪽에는 석문산이 자리하고 있으며 서쪽과 북쪽도 봉덕산을 비롯한 산으로 둘러쌓여 있다. 한마디로 분지형태의 지형을 띄고 있어 밖에서 봤을 때 마을을 찾아오기가 쉽지 않는 구조이다. 봉황마을이 강진군으로 편입될 당시에는 마을까지 도로 포장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차를 타고도 마을로 들어오기가 어려웠지만 최근에는 포장이 돼 있어 다소 나아졌다.

한 때 같은 마을이었던 해남군 옥천면의 학동과 탑동, 청신, 청룡, 백호 등의 마을 사람들도 예전에는 장이 크지 않았던 옥천장보다는 도암장을 보러다녔다. 이 때 반드시 통과해야 했던 곳이 바로 새꼭재였다. 봉황마을 주민들은 새꼭재라고 부르고 있지만 새옥재, 새곡재 등 다양한 이름으로도 불리우고 있다.

일반적으로 재를 생각하면 험난한 산을 넘어 가는 것을 생각하지만 이곳 새꼭재는 조그만 야산이기 때문에 그리 어렵지 않게 넘어다닐 수 있었다. 최근에는 해남 학동, 탑동마을에서 봉황마을까지 도로가 포장이 돼 있어 차량을 타고도 손쉽게 재를 넘어올 수 있게 됐다. 이 때문에 최근에도 이 곳 새꼭재는 여전히 차량 통행량이 많은 편이다.

주민들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새꼭재

봉황제 확장공사로 인해 봉황마을의 주택과 농토가 침몰됐다. 사진은 저수지내 침몰된 나무의 모습.
봉황마을에서 새꼭재를 지나 군계부근에 서면 3갈래 길이 나온다. 우측길은 학동마을 좌측길은 탑동마을로 통한다. 어느 길로 가도 차량을 타고 쉽게 오갈 수 있다. 이 곳 재에 올라서면 소규모 저수지인 학동저수지와 옥천면의 마을들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새꼭재는 처음부터 이렇게 사람들이 오가기 편리하게 길이 만들어져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길이 생기기 이전에는 작은 산길이었다고 마을주민들은 말한다. 예전부터 통행량은 많았지만 지금처럼 길이 넓어지고 차량도 쉽게 통과할 수 있도록 된 데는 1960년대 중반부터였다.

1964년부터 주변 마을주민들이 모두 동원돼 산의 돌을 깍아내고 흙을 퍼내 길을 만들었다. 이 같은 작업은 1년정도 진행됐고 이듬해인 4월 개통됐다. 본래 개통은 더 늦게 예정돼 있었지만 당시 해남에서 출마한 야당 대통령 후보의 연설회가 해남읍에서 개최되기로 예정돼 있어 당시 해남군수와 기관단체장, 군민 등 많은 인원이 총동원돼 연설회 날짜에 맞춰 개통식을 열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야당후보의 연설회에 주민들을 참석하기 어렵게 만들려고 했다는 우스개소리도 들려온다. 이처럼 많은 주민들의 노력으로 새꼭재가 완성돼 옥천면 주민들의 주된 이동통로가 됐고 아직까지도 주민들의 주된 이동 통로로 활용되고 있다.

봉황제 확장으로 마을 위축돼

봉황마을은 현재 37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예전에도 40호가 조금 넘을 정도로 큰 마을은 아니었지만 최근에는 가구수가 더 줄었다. 현재 가구수도 덕룡산관광농원 인근에 자리잡은 귀농인들 덕분에 30가구정도가 유지되고 있다. 이는 봉황저수지 확장으로 인해 마을과 농토가 수몰돼 많은 주민들이 이주해버렸기 때문이다. 현재 봉황마을 앞의 저수지는 원래 논과 마을이 자리하고 있었다.

저수지 확장이전만 하더라도 봉황마을은 도암내에서도 농경지가 적지 않은 마을이었지만 이제는 저수지 확장으로 농토가 크게 줄었고 주민들도 이주해버려 상당히 마을이 위축된 모습이다. 봉황마을 회관이 있는 곳과 덕룡산관광농원 인근의 귀농인들의 한옥마을도 모두 봉황마을이지만 두 마을사이의 거리만 해도 3㎞가 넘어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다.

또 최근에는 돈사유치로 인해 마을주민들간에 찬성하는 사람들과 반대하는 사람들로 나뉘어져 다소 시끄러운 상황에 거의 매일 마을회관에서 회의가 진행되고 있다.

현재 돈사유치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침체된 마을발전과 소득창출로 먹고살기 위해서는 돈사유치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고 반대하는 사람들은 천혜의 자연환경을 자랑하는 봉황마을이 돈사로 인해 오염될 수 있으며 악취로 인한 주민들의 피해가 불보듯 뻔해 반대의견을 나타내고 있다.
 
현재까지도 마을주민들간의 의견이 쉽게 좁혀지지 않아 다소 시끄러운 상황이다. 주작산과 덕룡산을 지난 군계는 위로 올라가 강진읍과 경계부근에 위치한 서기산을 향해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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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계에서 만난 사람] “침체된 마을 다시 활기넘쳤으면”- 봉황마을 이기완씨

마을과 농토가 수몰된 봉황저수지를 한참 바라보던 중 회의를 위해 마을회관으로 향하던 마을주민 이기완(56)씨를 만났다. 이 씨는 어머니때부터 자신까지 2대째에 걸쳐 봉황마을에 살아온 일명 토박이다.
이 씨는 “봉황마을은 지금까지 시끄러운 사건이나 사고 한번이 없을 정도로 조용하고 주민들간 단합이 잘되는 마을이었다”며 “또한 덕룡산과 봉황저수지 등 주변 자연경관이 뛰어나고 공기도 맑아 살기 좋은 마을이다”고 말했다.
이어 이 씨는 “하지만 봉황저수지 확장사업으로 인해 주택과 농토가 침몰돼 많은 사람들이 마을을 떠나는 계기가 돼 마을이 침체됐다”며 “점차 줄어드는 사람들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마을이 다시 활기 넘치는 마을로 거듭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또 이 씨는 “최근 돈사문제로 마을이 시끄러운데 하루 빨리 마무리 돼 예전처럼 화합하고 단결된 마을이 됐으면 좋겠다”며 “군에서도 강진군으로 편입된 이후 봉황마을에 대해서 별로 신경을 써주지 않았는데 앞으로 마을주민들에게 좀 더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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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거리 읽을거리]

1. 만석골 : 봉황마을에서 서쪽으로 약 1.5㎞ 되는 곳에 위치한 골짜기이다. 과거에는 이 곳에 마을이 있었는데 어떤 한 주민이 쇠붙이를 주워 해남군 청산리에 사는 대장장이 윤씨에게 농기구를 만들어달라고 했다. 하지만 대장장이가 살펴보니 은덩이라서 이를 감추고 다른 쇠붙이로 농기구를 만들어주고 은을 팔아서 대장장이는 만석군 부자가 됐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2. 덕룡골, 덕룡사터 : 덕룡골은 마을에서 서쪽으로 약 4㎞쯤 떨어진 곳에 위치했는데 큰 사찰터가 원형을 유지한 채 남아있었다. 수년 전 목포대 박물관에서 유적발굴차 수차례 와 현지답사를 실시하기도 했다. 덕룡사터는 이 곳에 위치했던 사찰이름으로 빈대가 극성을 부려 폐사했다고 하며 빈대절터라고도 불리운다.

3. 사금리 : 현 봉황저수지에 수몰된 지역으로 예전에는 이곳에서 사금을 많이 채취했다고 하여 사금리라는 명칭이 생겨났다고 한다.

4. 삼충사지 : 덕룡산 기슭에 통천최씨 사우인 삼충사가 있었다. 1862년 왜구토벌에 공이 컸던 최운해, 최윤덕, 최산정 등 3명의 공신을 추모하기 위해 후손들이 사우를 건립했다. 그후 후손들이 살지 않아 관리가 어려워 1994년 해남군 옥천면 대산리로 옮겨가고 현재는 터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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