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작산과 덕룡산이 만나 북으로 북으로

영·장수마을 지나 장수제 통과하는 군계
주작산 아래에는 봉양마을과 삼인마을이 자리틀어

신전 영수마을을 통과한 군계는 본격적으로 주작산 서쪽자락을 따라가 주작산휴양림을 지나게 된다. 봉양저수지에서 바라본 주작산이 지난 주말에 내린 눈이 하얗게 쌓여있어 멋진 풍광을 자랑하고 있다.
군계는 해남군 장수마을과 신전면 영수마을을 옛스러운 멋을 풍기는 돌담길을 따라 주작산을 향한다. 영수마을 뒤편으로 작은 개울을 따라 군계가 흘러가다가 보면 장수저수지와 어관마을에 이르게 된다. 군계를 따라 장수저수지 제방에 올라서서 사내방조제 방향에는 초록빛의 보리가 자라나 있는 들판 뒤로 멀리 신전면 영수마을과 장수마을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고 반대쪽에는 바로 주작산이 가까이 보인다. 저수지에는 이름 모를 철새 10여마리가 물위를 떠다니며 노닐다가 인기척이 느껴지자 일제히 날아올랐다.

저수지 제방 바로 아래에도 마을을 하나 볼 수 있는데 이 곳은 바로 어관마을이다. 신전면 영수마을과 이웃하고 있는 마을이면서 군계에 근접해 있는 마을이다. 어관마을은 영수마을과 함께 영관리를 이루고 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어관마을과 영수마을의 이름을 따서 영관리라고 불렀고 어관마을이 영관리 1구가 됐다. 이 때는 도암면 소속이었지만 1983년 도암면과 신전면이 분리되면서 신전면에 속하게 돼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해남군이 생활권이었던 어관마을
어관마을도 영수마을과 마찬가지로 40호가 조금 넘는 주민들이 살고 있다. 이 곳은 벼농사와 보리, 귀리 등을 주로 지으며 살아가고 있다. 이 곳 주민들도 영수마을처럼 행정구역은 강진군에 속해 있지만 주 생활권은 해남 북평으로 장을 보러 다닐 정도로 해남과 가까웠다. 최근까지도 해남 북평으로 장을 다녔지만 최근에는 면단위 시장이 축소되면서 강진읍시장으로 장을 보러 다닌다.

어관마을에도 영수마을처럼 재밌는 사연이 전해지고 있다. 6.25 전쟁이후에 경찰들이 빨갱이를 잡는다며 다닌적이 있었다고 한다. 이 때 수배대상들은 강진군과 해남군으로 나눠져 있다는 사실을 이용해 강진경찰이 잡으러 오면 해남군쪽으로 도망가고 해남에서 잡으러 오면 강진으로 넘어와 검거를 피했다고 한다. 관할구역이 있다는 사실을 이용한 것이다.

저수지 바로 아래에 살고 있는 어관마을 김순남(78)씨는 아직도 집안에 부뚜막을 설치해놓고 나뭇가지로 불을 때서 솥의 물을 끓이고 있다. 요즘에는 시골마을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부뚜막이 아직도 사용되고 있어 놀랍기도 하고 신기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김 씨는 “어관마을은 영수마을과 함께 해남군 경계에 위치하고 있어 예전부터 생활권은 해남에 더 가까웠다”며 “요즘에는 면의 시장이 거의 사장돼 강진읍으로 다니지만 버스가 하루에 오전과 오후 모두 합쳐서 2번 밖에 운행을 하지 않아 불편하고 다리가 불편해 갈수록 장을 보러 다니는 일이 힘겹다”고 말했다.

어관마을 주민들의 농업용수로 활용되는 장수저수지는 1972년 설치된 저수지로 강진군과 해남군에 모두 걸쳐있지만 관리는 한국농어촌공사 해남완도지사에서 관리를 담당하고 있다.

주작산 정상에 등산객들이 쌓은 것으로 추정되는 여러개의 돌탑들이 신비로움을 자아낸다.
기암괴석과 풍광빼어난 주작산
어관마을과 장수저수지를 지난 군계는 이제 본격적으로 주작산과 덕룡산 자락을 통과한다. 장수저수지를 관통한 군계는 주작산 서쪽 자락을 따라간다. 주작산 서쪽능선에는 기암괴석과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는 주작산을 느끼고 체험하기 위해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주작산자연휴양림이 자리하고 있다.

주작산자연휴양림은 지난 2007년 휴양관 1동 10실로 개장했으며 최근에는 시설을 대폭 보강해 숲속의집과 한옥펜션, 휴양관 등 6인실 3개동, 6인실 1개동, 4인실 2개동 2인실 1개동으로 확장돼 운영되고 있다. 또 휴양림 내에는 풋살구장, 족구장, 야외공연장, 다목적회의실, 야영장, 물놀이장 등 편의시설도 갖춰져 있다.

다양한 편의시설 외에도 이 곳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경치가 빼어난 주작산을 몸으로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주작산자연휴양림 자체가 숲속에 위치하고 있고 주작산 정상까지 잘 조성된 임도를 따라 차량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이 곳 주작산 정상에서는 매년 연초가 되면 해맞이 장소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보은산과 함께 강진을 대표하는 해맞이 장소로서 수 많은 사람들이 새해 첫 날 뜨는 해를 보며 소원을 빌기 위해 이 곳을 찾고 있다.

주작산해맞이 장소에 올라서면 날씨가 맑고 시야가 좋은 날에는 멀리 마량항까지도 볼 수 있지만 최근에는 희뿌연 미세먼지 탓에 비가 내린 다음 날이 아니면 좀처럼 보기 어렵게 됐다. 하지만 희뿌연 날씨에도 불구하고 주작산 정상에 올라서면 멀리 사내방조제와 사내호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고 영수마을과 어관마을, 대월마을 등 신전면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또 주작산 능선과 덕룡산이 만나는 모습과 멀리 석문산까지 산세가 한눈에 볼 수 있다. 또 주작산이 자랑하는 기암괴석들을 볼 수 있어 해맞이때가 아니더라도 이 곳을 찾는 주민들은 상당히 많은 편이다.

누에로 유명했던 봉양·삼인마을
주작산 계곡 아래에는 봉양, 삼인, 수양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이 곳 3개 마을들은 좌측에는 주작산, 우측에는 덕룡산이 감싸 안아 보호하는 듯한 형세를 띄고 있다. 그 중에서도 봉양마을과 삼인마을은 예전부터 누에와 양잠으로 유명한 마을이다.

마을주민들도 1980년대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밭에는 대부분 뽕나무가 심어져 있었고 주민들도 모두 누에를 키우며 살아갔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나일론의 출현으로 양잠이 쇠퇴하면서 뽕나무가 심어져 있었던 밭에는 모두 양파, 단호박, 배추 등의 작물로 바뀌었다. 이와함께 마을주민들의 수도 급감해 현재는 삼인마을에는 20여호 주민들만 거주하고 있으며 마을내 빈집도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또 봉양마을도 삼인마을과 마찬가지로 양잠산업 쇠퇴와 함께 마을도 축소됐다.

삼인마을 이영초(78)씨는 “대구면 구수리에서 시집왔는데 젊은 시절에는 누에를 키워 누에고치로 팔기도 하고 명주실을 뽑아 팔기도 했다”며 “그 때가 지금보다 수입은 더 좋았지만 80년대 이후부터 돈이 되지 않아 마을내 뽕나무는 모두 갈아엎어버렸다”고 설명했다.

이웃마을인 봉양마을 박영란(83)씨도 “삼인마을과 함께 누에로 유명했지만 요즘은 너무 조용한 시골마을이다”며 “딱히 특별한 일도 별로 없이 조용해 활기넘치던 예전이 그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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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계에서 만난 사람]

“단결력 하나는 삼인마을이 최고죠”- 신전면 삼인마을 김동엽씨

신전면 삼인마을 회관에서 주민들과 함께 추위를 피하며 즐겁게 담소를 나누고 있던 김동엽(81)씨를 만났다. 김 씨는 해남 와룡마을이 친정으로 20살이 되던 해에 현재 남편을 만나 결혼하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김 씨는 “친정집까지 30리길인데 친정집은 바닷가에 위치한 마을이어서 김과 석화가 주로 잡혀 시장에 내다 팔았다”며 “결혼하고 삼인마을에 와서는 누에와 벼농사를 하며 5남매를 키웠다”고 말했다.

또 김 씨는 “열심히 일한 덕분에 경제적으로 어렵지는 않았지만 남편이 사업에 뛰어들어 실패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며 “하지만 삼인마을에서 지금까지 살면서 마을주민들끼리 큰 소리 한 번 나오지 않을 정도로 가족처럼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 김 씨는 “삼인마을의 가장 큰 자랑거리는 역시 단합이 잘된다는 사실”이라며 “마을내 8가구정도가 청년들인데 젊은 청년들과 노인들 모두가 집안에 숟가락 개수까지 알 정도로 친하게 지내고 있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서로 돕고 나쁜 일은 위로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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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거리 읽을거리 

1. 귀후각 : 안산김씨 제각으로 마을회관 인근에 위치하고 있다. 일제시대 중반에 건립된 것으로 정면 4칸, 측면 1칸반의 팔작와가이다. 관리사가 3칸 있으며 여기에서 어관마을 입향조씨인 김득휘이하 선조들의 시제를 모시고 있다. 또 바로 옆에는 경모제도 자리하고 있다.

2. 주작산 흔들바위 : 주작산휴양림에서 등산로를 따라 400여m를 걷다보면 직경 3.5m의 둥근 모양의 돌 중앙에 금이 나 있는 듯한 바위이다. 70톤이상의 무게가 나는 것으로 추정되며 마을주민들을 보살피는 장군이 하늘로 승천하면서 갑옷을 바위 안에 넣어두고 갔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3. 기름바위 : 삼인마을 뒷산에 있는 바위로 바위 표면이 미끄러워 마치 기름을 발라놓은 듯 하다 하여 기름바위라고 불리게 됐다. 바위 앞에는 용소(龍沼)가 있었고 그 곳에 큰 소라가 살았다고 전해지는데 이 소라가 바위를 자주 핥아서 반들반들해졌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4. 도요지터 : 마을 남서쪽에 고려말에서부터 조선초기까지 유행했던 분청사기를 생산했던 가마터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곳에는 밥그릇, 국그릇, 찬그릇, 접시 등 서민용 그릇들이 주로 출토됐으며 이조백자 파편도 출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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