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0년 제주에서 강진오던 장한철 청산도에 표류해 한 여인과 로맨스
우리나라 해양문학의 백미... 메밀꽃 필무렵의 물방앗간 사랑과 비교되기도
 
1770년 12월 25일 제주의 장한철이란 사람이 서울에 과거를 보러가기 위해 제주항에서 29명의 일행과 함께 배를 타고 강진의 남당포(지금의 남포마을)마을을 향해 출항한다.
 
제주사람들은 겨울철 항해를 피했으나 아마도 이 배에 탔던 사람들은 무슨 사연이 깊었던 듯 싶다. 장한철처럼 과거일정 때문에 배를 탄 사람도, 강진에서 제주로 장사를 갔던 사람도 끼여 있었다.

일기예보가 없던 시절, 겨울 바다는 아무도 몰랐다. 그날 오후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다. 지금의 완도 소안도 인근에서 갑자기 폭풍우를 만나 서쪽으로 밀려 표류하기 시작한다. 배는 흑산도 인근까지 밀려갔다.

배는 다시 서남풍을 만나 동쪽으로 밀려갔다가 표류 13일만에 다시 소안도 일대로 떠밀려 왔다. 이때까지만 해도 일행 29명은 모두 살아 있었다. 그러나 배가 한밤중에 청산도 암벽에 부딪치면서 19명이 죽었다.

또 두명은 마을을 찾아가다 낭떨어지에 떨어져 죽었다. 제주에서 출발한 29명중 단지 8명만이 살아 남았을 뿐이다.

구사일생으로 청산도에서 살아남은 장한철 일행 8명은 청산도 주민들의 극진한 간호를 받으며 그 섬에 머무르게 된다. 여기서부터 한 로맨스가 시작된다.

어느날 장한철은 마을의 당집에 들려 그곳에서 소복을 입고 모친의 일을 거드는 무녀의 딸을 만난다. 소복입은 무녀의 딸은 남편을 잃은 20살의 과부였다.

그런데 그 여인은 장한철이 바다 한가운데서 풍랑을 만나 생사의 갈림길에서 의식을 잃고 있을때 꿈속에서 나타나 물을 건네주던 여인이었다. 어딘가 우격다짐의 모양세가 보이지만 장한철은 그렇게 표류기에 적었다.

여인은 어딘지 모르게 신비한 느낌을 주었다. 피부가 하얗고 얼굴도 매우 아름답다. 청초한 매력을 가지고 있으며 눈빛은 우수에 젖어 있다. 남편을 잃고 외로워하고 있으며 순종적이고 착한 여성이다. 장한철은 이 여인과 꿈같은 하룻밤을 보낸다.

이 대목을 평론가들은 ‘우리나라 최초의 해양문학이자 해양문학의 백미’라고 평가한다.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에 나오는 숨막히는 물방앗간 풍경과 비교되기도 한다.

청산도는 1770년 바다에서 동료 21명을 잃은 선비가 죽음의 사선을 넘어 육지에 도착해 현지 여인과 로맨스를 나누었던 연애소설의 무대이기도 한 것이다.

청산도는 요즘 슬로우시티로 지정돼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온다고 한다. 많은 스토리텔링을 개발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그곳에 왜 장한철의 연애이야기가 없는 것인지 모르겠다.

장한철은 청산도에서 몸을 회복해 신지도와 마량~칠량을 거쳐 남당포에 도착해 한양으로 올라간다. 그러나 과거에 합격하지 못하고 다시 남포를 거쳐 고향으로 돌아갔다.

아마도 표류기간 동안 공부했던 것을 모두 까먹었는지 모를 일이다. 아니면 청산도 여인을 생각하느라 정신을 내놓고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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