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량 출신, 미국에 밀항 12년 동안 망명생활

5.18을 이야기하면서 강진 칠량 출신 윤한봉 선생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5.18 마지막 수배자였다. 윤한봉은 1947년 칠량면 동백리에서 태어났다. 광주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곧장 광주일고에 입학했다. 대학은 전남대 농과대학 축산과를 갔다. 그는 1972년 박정희 정권의 유신선포에 반대하면서 본격적인 반독재투쟁에 나섰다. 다음해인 1974년 4월에는 민청학련 사건이 터져 징역 15년 자격정지 15년을 선고받고 전남대에서 제적됐다.

그러다가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을 겪었다. 그는 광주민주화운동을 예견한다. 신군부가 절대 권력을 놓지 않으리라는 것도, 시민들의 큰 희생이 있을 것이라는 것도, 그 운동이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도 5.18 이전에 여러 자리에서 이야기한다. 그는 이러한 이유등으로 신군부세력으로부터 일찌감치 5.18 핵심주동인물로 찍히면서 거액의 현상수배자가 됐다.

신군부는 그를 체포해 폭동의 수괴로 만들어 전남의 운동조직을 일망타진할 요량이었다. 그가 체포돼 신군부의 제물이되는 것은 본인에게도 억울하고 두려운 일이었지만 전남운동 세력도 치명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는 1981년 4월까지 국내에서 지리한 도피생활을 하다 4월 29일 마산에서 화물선을 타고 미국으로 밀항한다.

윤한봉 선생의 미국 삶은 핵무기 철수 운동, 새로운 조직구성, 국제평화대행진, 범민련 북미주본부결성, 전두환 노태우 방미규탄시위, 세계인권대회 참가등 고국의 민주화를 위한 다양한 활동으로 점철됐다.

1993년 5월 13일 김영삼 대통령이 광주 민주화운동 13돌을 앞두고 특별담화를 발표한다. 80년 5월 광주의 희생은 이 나라 민주주의를 위한 것이였고 오늘의 정부는 그 연장선 위에 있다며 광주민주화운동 기념공원 조성, 관련전과기록 말소등 명예회복 방안을 밝힌 것이다. 특별담화에 따라 423명의 전과가 말소되었고, 윤한봉 선생 또한 수배자에서 해제됐다. 5.18의 마지막 수배가 해제된 순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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