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 키우던 박응오씨 연탄에 석회 뿌리자 일산화탄소 급감

특허출원‘죽음의 사신 쫓아낼 개량연탄’전국 환호
사재털어 충남 서산에 연탄공장 건립, 사무실은 서울에 
정부, 연탄 KS규격 바꿔가며 전국 업체에‘석회석 넣어라’
특허 보호받지 못해 거부 뜻 이루지 못한듯

70 ․ 80년대까지만 해도 겨울이 되면 가장 무서운게 연탄가스 중독이었다. 한 겨울이 되면 거의 매일 TV뉴스에 공단주변에서, 학교주변에서 자취를 하는 젊은이들이 연탄가스에 중독된 화면이 등장하곤 했다. 70년대 초반 서울에서만 한해 200여명이 연탄가스중독으로 숨지곤 하던 시대였다.

그래서 당시 연탄가스는 ‘죽음의 사신’이라고 불릴 정도로 공포의 대상이었다. 이를 극복해 보려는 노력도 다양하게 진행됐다. 서울시는 70년대 초반 1천만원이라는 어머어마한 현상금까지 내걸고 연탄의 독성가스를 제거하는 방법을 공모했으나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또 민간인들도 연탄을 태우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일산화탄소를 줄여보려는 노력을 시도했다. 성공만 하면 황금이 쏟아질 일이었기 때문이다. 때로는 발명특허까지 낸 경우도 있었으나 대부분 경제성이 없어 제품 자체를 만들어 내지 못했다. 

그러던 차에 1972년 11월 전국을 깜짝 놀라게한 소식이 신문에 실렸다. 강진군 성전면 신풍리 박응오(54)란 사람이 10년 연구 끝에 무해연탄을 발명했다는 것이었다. 박씨는 발명특허(3747호)까지 내서 개량연탄을 만들었고 일부지역에 시판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당시 박씨의 개량연탄 발명은 큰 사회적 관심을 끌어 동아일보(1972년 11월 9일자)와 경향신문이 이를 크게 보도했다. 그만큼 연탄가스는 사회적으로 큰 골치덩이였다. 박씨는 성전 신풍마을에서 양계장을 운영하는 주민이였다. 닭을 3천여마리 키웠다. 겨울이 되면 연탄가스에 중독되어 죽은 닭이 많이 나왔다. 그래서 연탄위에 석회석을 뿌려보기 시작했다.

놀랄만한 현상이 나타났다. 연탄위에 석회를 뿌렸을때 닭이 가스에 중독되지 않은 것이다. 석회성분이 일산화탄소를 줄여준 것이다. 시제품을 만들어 보건연구원 검사를 거쳐 특허를 얻었다. 흰쥐등 동물실험을 통해서도 이 연탄에서 나온 일산화탄소가 치사량에 이르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받았다.

또 두평의 밀폐된 방에 닭 20마리를 넣고서 개량연탄을 피운 결과 10시간 동안 이상이 없는 실험도 통과했다. 연탄의 제작원리는 기존의 석탄에 석회석 20%, 백토 80%를 혼합해서 열량기준인 4천600칼로리를 내는 것이었다. 학계에서도 박씨의 발명을 지원했다.

박씨는 사재를 털어 충남 서산에 한국연료개발주식회사라는 공장까지 차리고 서울 종로에 사무실도 냈다. 사무실에서는 직원들이 이 개량연탄을 피워놓고 일을 하면서 유해성이 없다는 것을 홍보했다. 사무실 직원들은 “골방 안에 연탄을 피워놓고 다 탈때까지 바둑을 두어도 끄떡 없었다. 부엌에서 이 연탄을 땔 경우 치사상태는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고 신문과 인터뷰를 했다.

그러나 그 뿐이였다. 박씨의 발명품이 그 뒤로 공전의 히트를 쳤다는 기록이 없다. 당시 사회적 분위기로 봐서 연탄가스를 획기적으로 줄인 박씨의 개량연탄은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을게 틀림없다.

하지만 그 뒤로 그런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 현재 성전 신풍리에서 살고 있는 주민들도 박응오씨를 기억하는 사람이 없다. 그 일로 큰 돈을 벌었다면 성전에 소문이 크게 났을게 분명하지만 그의 소식은 오리무중이다. 그는 갑자기 어디로 사라졌을까.

그의 행적을 추정할 수 있는 기록이 있기는 하다. 그해 12월 27일, 그러니까 박씨가 개량연탄의 시제품을 내 놓고 본격적으로 시장에 진출할 시점이다. 정부가 ‘석탄공사 기술연구소가 연구한 석회배합탄이 아황산 가스와 일산화탄소 등 유해가스 발생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고 확인하고 연탄을 제조할 때는 반드시 석회를 배합토록 업계에 강력지시하고 현재의 연탄KS규격을 고쳐 이를 반영하기로 했다’는 기사가 그것이다.(매일경제 1972년 12월 21일)

정부가 박씨의 특허권을 인정해주지 않고 이 기술을 정책적으로 일반화 해버린 내용이다. 모든 재산을 투자했을 박씨의 개량연탄은 그 해 전국적으로 모든 연탄제조업체에서 생산이 가능해지면서 그 가치가 급락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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