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욱 / 민족문화유산연구원 부원장

계절의 여왕 5월은 온갖 꽃들이 만발하여 사람의 발길을 끌어당긴다. 5월을 대표하는 꽃 가운데 하나가 네델란드의 국화國花인 튤립이다.

풍차와 튤립의 나라 네델란드는 강진과 인연이 깊은 하멜의 조국으로 강진은 이를 기념하기 위해 하멜의 고향인 호르큼시와 1998년부터 자매결연을 맺고 다양한 교류를 진행하고 있다.

하멜(Hendrik Hamel 1630~1692년)은 <하멜 표류기蘭船濟州島難破記>로 유명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Verenigde Oost-Indische Compagnie, VOC)의 선원이자 서기이다.

그는 1653년 1월 포겔 스트루이스(Vogel Struuijs)호를 타고 네덜란드를 출발하여 6월 자바섬의 바다비아(Badavia, 자카르타)에 도착한 후, 7월 스페로 호크(Sparrow Hawk)호로 갈아타고 타이완臺灣을 거쳐 동인도회사의 일본 상관商館이 있던 나가사키長崎의 데지마出島로 가던 도중 폭풍을 만나 8월 제주도 대야수연변大也水沿邊(지금의 산방산) 앞바다에 표착하였다.

이듬해 5월 해남-강진-나주-장성-공주-천안-수원-과천을 거쳐 한양으로 이송되어 훈련도감에 편입되었다. 그 뒤 1656년부터 1663년까지 7년 동안 강진의 전라병영에서 조선에서의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낸 후, 1663년 여수의 전라좌수영에 배치되어 잡역에 종사하다, 1666년 9월 조선을 탈출하여 일본의 나가사키를 경유한 후, 1668년 7월 암스테르담에 귀환하였다.

하멜은 일본에 도착하여 일본 관원의 조사를 받고 본국으로 돌아가기 위한 배를 기다리던 2개월 동안 표류기를 작성하였다.

<하멜 표류기>는 1668년 암스테르담에서 출간되었는데 원래는 <1653년 타이완으로의 스페로 호크호의 불우한 항해에 관한 일지: 스페로 호크호가 제주도에서 좌초된 이유와 더불어 조선 왕조의 영토, 지방, 도시, 요새에 관한 특별한 묘사>라는 긴 제목으로 발간되었다.

표류기의 내용은 정치와 외교, 교육, 종교, 문화, 사회, 풍속, 지리, 풍토, 산물, 군사, 법속, 교역, 언어 등 하멜이 직접 보고 들은 조선의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

  <하멜표류기>는 하멜 일행이 조선에 있는 동안 받지 못했던 급료를 청구하기 위해 바타비아 총독과 평의원에게 제출하기 위한 목적으로 작성되었다.

또한 조선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하멜 일행이 회사의 일원으로서 그 역할과 의무에 충실하였음을 입증하는 자료로 회사와 국가의 이익을 위한 현실적 필요성도 내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동인도회사는 하멜 일행의 송환을 계기로 조선과의 무역을 추진하기 위해 코레아(Corea)호라는 대형 무역선을 만들었으나, 일본의 견제와 한국의 지리적인 문제 때문에 스시마對馬島를 통한 간접 무역으로 대체하였다.

이처럼 하멜 일행의 장기간 조선 체재는 네달란드와 일본에 조선의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였는데, 이는 실리를 취하기 위한 국제관계의 냉혹한 현실이 그 당시에도 존재하였음을 알려주고 있다. 아무튼 하멜 일행은 이 보고서를 제출하고 가장 중요한 14년여의 급료를 지급받을 수 있었다.

  하멜이 강진의 병영에 머물렀던 17세기는 네덜란드 문명의 황금 시기로 동서양의 무역을 주도하던 강력한 국가였다.

동인도회사는 네덜란드가 자신들의 인도양 무역을 보호하기 위해 1602년에 세운 무역회사로 교역의 독점권과 함께 조약 체결, 군대 편성, 관리 임명 등의 권한을 부여받은 국가 권력의 대행기관이었다.
 
이들은 바타비아에 총독정청總督政廳을 설치하여 동양 무역의 우월적 지위를 확립하였으며, 당시 세계 무역 총액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그 영향력이 막강하였다.
 
동인도회사의 교역품 가운데 동양의 도자는 중요한 품목이었다. 동인도회사의 무역선은 1621년부터 1847년까지 700여척이 일본에 입항하였는데, 그 가운데 도자는 1650년부터 1757년까지 모두 1,233,418점을 선적하고 있다.
 
이들은 처음 중국 도자를 취급하였으나 중국이 명·청 교체기의 혼란으로 대외 수출이 힘들게 되자 중국의 경덕진景德鎭을 대신하여 일본의 이마리伊万里에 중국풍의 도자를 대량 주문하였다.

이후 청나라의 정세가 안정되어 중국에서 다시 수출을 시작하지만 그 사이 일본의 도자가 유럽에서 선풍을 일으켜 중국에서는 일본 도자를 모방하여 수출하기에 이른다.

또한 유럽도 일본 도자에 자극받아 18세기가 되면 독일의 마이센으로부터 도자가 제작되기 시작한다. 도자의 기술이 중국에서 한국을 거쳐 일본으로 건너가 유럽까지 전파된 것이다. 

  조선의 도자 기술이 일본과 동인도회사를 통해 유럽까지 전파되었던 것처럼 오늘날의 강진 청자가 다시 네덜란드를 통해 유럽에 널리 유통되어 문화와 경제의 첨병 역할을 하길 바래본다.

그리고 5월은 가정의 달이다. 가족들과 튤립 향기를 맡으며 하멜의 체온이 남아 있는 병영성과 하멜기념관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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