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기록도 없는 사건… 전 면장의 ‘추억담’만으로 대본 작성

최풍 작가, 전 면장의 설명을 명함에 받아 적은게 모든 자료
전 면장의 구술 한가지만 가지고 이뤄진 문제투성이의 줄거리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군동 영포마을 출신 교민 김추윤씨가 2013년 1월에 <강진일보>에 보내온 편지에는 ‘강진 갈갈이사건 방송사건’이 어떻게 해서 나오게 됐고, 얼마나 미약한 자료를 가지고 드라마를 만들었지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이 편지에는 당시 법창야화가 구전에 의존해 소설을 썼다는 것을 정확하게 알려주고 있다. 편지의 내용을 중심으로 당시 방송이 제작된 과정을 시간적으로 다시한번 재구성 해보자.

# 1973년 12월 중순 어느날 장흥지원:
MBC 최풍 작가와 연출자 고무생씨가 ‘새로 법정에서 일어난 일을 소재로 드라마를 만들어 볼까’하고 장흥법원을 찾아갔다. 장흥법원에서는 특별한 소재가 없었다. 그래서 ‘일제강점기에 군동에서 일어났던 바라바라사건(일본말로 갈갈이라는 뜻이라고 했음)이 있는데 군동에 가보라’고 소개했다. 오후 5시 30분쯤 장흥법원 직원이 군동지서에 전화를 걸어 ‘이러이러한 사람이 찾아갈 것이니 알고 있으라’고 통보해 주었다.

# 1973년 12월 중순 어느날 군동지서:
지서 사무실에는 방위병 김추윤씨와 김동엽 순경이 근무를 하고 있었다. 겨울철이라 난로를 피우고 있었고 두 사람은 난로를 쬐면서 장흥 쪽에서 올 사람들을 기다렸다. 6시가 될 무렵  MBC 깃발을 단 검정색 승용차가 지서 마당으로 들어왔다. 차에서 내린 사람은 두명이였다. 두 사람은 명함을 한 장씩 건네 주었다. 최풍 작가와 연출자 고무생씨였다. 최풍작가가 여기까지 온 과정을 대충 설명해 주었다.

군동이 고향이었지만 20대 초반이였던 김추윤씨는 사건 내용을 몰랐고, 김동엽 순경 역시 강진사람이 아니여서 사건을 모르고 있었다. 대답해 줄 것이 없자 김순경이 오래전 군동면장을 했던 군동 평리마을의 A면장이란 분을 찾아냈다. A면장이 다행히 그 때 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6시가 되면서 김순경도 근무교대 시간이 됐고, 방위병도 퇴근시간이 됐다. 네 사람은 나란히 A면장댁으로 갔다.

# 방위병과 순경의 반응:
김추윤씨는 군동에서 나고 자라 성인이 됐지만 ‘갈갈이 사건’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때 기준으로만 봐도 벌써 34년전 사건이였기 때문에 그것을 기억하는 강진사람들은 거의 없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사건 자체가 법창야화에서 다뤄지는대로 그렇게 거창한 것이 아니였기 때문에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남아 있지 못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 1973년 12월 중순 오후 7시경 군동 평리 A면장댁:
A면장의 손녀딸 정도 쯤 되어 보이는 학생같은 아이가 따뜻한 유자차를 내왔다. 네사람은 화롯가에 둘러 앉았다. 사랑방같은 분위기였다. A면장은 정담을 나누듯 그 때 그 일을 기억나는대로 옛 이야기를 하듯 풀어갔다. 김추윤 방위병과 김순경은 A면장의 말을 그냥 흥미롭게 듣고 있을 뿐이였다. 최풍작가는 자기 명함 앞뒤에다 메모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최풍작가가 추가 질문을 했으나 A면장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거나 그것은 내가 모르는 일이라고 답변하는 경우가 많았다.

A면장 댁에서 이야기를 나눌 때는 갈갈이란 표현이 전혀 없었다. A면장의 설명은 한 시간이 못돼 끝났다. 일어날 시간이 됐다. 최작가와 고연출자는 언제 서울 오시면 MBC 구경이나 한번 하시라고 인사하면서 검은 승용차를 몰고 강진읍 방면으로 총총히 사라졌다.

# A면장의 반응:
당시 대화는 화롯불에 둘러 앉아 유자차를 마시며 사랑방같은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A면장은 서울에서 온 손님들을 따뜻하게 맞이했던 것으로 보인다. A면장은 기억 나는대로 옛 이야기를 하듯 풀어갔고 최풍작가는 명함 앞뒤에다 그것을 적었다. A면장은 최풍작가가 추가질문을 하면 ‘기억이 나지 않는다거나 그것은 내가 모르는 일’이라고 답변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를 보면 A면장은 당시 사건에 대해 구체적인 이야기는 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추윤씨의 편지내용대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거나 모르는 일’이 많았던 것이다. A면장이 한 이야기는 최풍작가가 작은 명함에 적을 정도로 미미했던 것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법창야화 제1화 강진갈갈이사건은 공식적인 자료가 하나도 없는 가운데 34년전 사건을 전 면장의 구술 한가지만 가지고 이뤄진 문제투성이의 줄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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