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이라는게 내가 먹고 싶어야 시제에 올릴 것도 만들고 조상도 생각하는 것인디”

“젊은 사람들 안오지, 음식도 그렇지…
제 그거 인자 나도 못해먹겠단 말이시”

문중에서 매년 가을이면 올리는 시제는 오래된 행사지만 젊은 사람들이 참여하지 않는 현상도 이제 꽤 오래된 역사가 되고 있다.
강진에서 나고 자란 A(83)어르신은 평생 고향마을을 지키며 종갓집에서 살았다. 어릴적 집에는 일꾼들이 다섯이나 됐고, 어딜가면 ‘도련님’이라는 호칭도 들었다. 학교는 강진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종갓집 장남으로서 고향에 눌러 앉았다. 결혼도 고향에서 했다. 논밭이 많았기 때문에 사는데 큰 어려움도 없었고, 자식들도 대학까지 가르치며 결혼도 시켜 모두 도시에서 살고 있다.

이제 어느덧 83세가 됐다. 80이 넘은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3년이 지나버렸다. A어르신 부부가 종갓집에 살면서 평생 목숨처럼 해온게 있다. 조상님들께 시제를 올리는 일이다. 직계 조상에게 제사를 올리는 것이여서 당연한 일이었다.

10여년전만까지만 해도 시제를 올리는 일이 축제였다. 시제가 열리는 이맘때면 서울과 부산, 광주에서 사는 문중 사람들이 몰려왔다. 시제 전날부터 사람들이 몰려와 마을이 떠들썩 했다. 시제를 모시러 온 친인척들 중에는 젊은 사람도 꽤 있었고, 아이들을 데리고 온 사람도 있었다.

시제음식은 제각을 빌려 사는 사람이 모두 장만했다. 제각에 사는 사람은 문중에 딸린 논 밭을 경작했기 때문에 곡수를 내는 대신 1년에 두차례 있는 시제를 푸짐하게 차렸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시제를 참석하는 문중 사람들이 줄어들더니 4년전에는 고직사(庫直舍)에 살던 사람도 읍내로 이사간다며 떠나갔다. 고직사란 제각을 지키는 사람이 살던 집을 뜻한다. 고직사가 텅텅비어서 봄이면 풀이 무성하게 자라났다. 기와장이 바람에 떨어져도 몇 달째 방치됐다.

그것도 시대의 변화인가 싶었다. A어르신의 부부가 음식을 장만했고, 인근 친척들이 함께 도와서 시제음식을 마련했다. 그런데 갈수록 사람들이 줄어들어 지난해 부터는 시제준비할 재미가 나지 않았다. 지난달 20일 올린 올 가을 시제에는 70대 후반 문중회원 10여명이 참석하는데 그쳤다.

“시제준비 할 재미가 있어야 말이지. 80살 넘은 사람들이 어렵게 음식 준비해 놓으면 사람들이 안온단 말이여. 그나마 80 다 된 사람들이 요즘에 시제를 참석하는데 한 5년이나 10년만 지내면 이 일이 어떻게 될지 보통 고민이 아니여. 나도 이제 숨이 차서 못해 먹겠단 말이시”

A어르신은 시제에 젊은 사람들이 참석하지 않은게 가장 큰 문제라고 꼬집었다. 젊은 사람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시제에 다녀야 그 아이들이 커서 다시 시제에 관심을 갖게되며 연속성을 잇는데 지금은 완전히 그 명맥이 끊기고 있다는 것이다. 젊은 사람들이 시제에 아예 관심이 없기 때문에 지금의 70대 후반 어르신들이 더 연로해 지면 수백년 동안 이어져 온 시제문화가 일거에 무너질 것이라고 혀를 찼다.

“저 큰 제각들, 저 넓은 묘지를 누가 관리할 것인가 하는 것이여. 왠만한 문중 묘라는 것들이 좀 넓어야지. 무엇보다 시제는 음식 준비하는게 절반인데, 80넘은 노인네들이 먼 음식을 만들것능가. 음식이라는게 내가 먹고 싶어야 조상도 생각하고 시제에 올릴 음식도 만들고 싶은 것인디. 이제 입맛까지 떨어져 부렀는디...”

A어르신은 시제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젊은 세대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이라고 못박았다. 세대와 세대가 연결이 되어서 이어달리기 할 때 바통 건네주듯이 그렇게 후손들에게 바통을 전해줘야 시제가 죽지 않는다는 것이다. A어르신은 그래도 내년 봄에 시제를 올려야 하지 않겠느냐며 얼마전 사용한 목기를 마른 수건으로 닦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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