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대 총선 때 선거운동했던 김오동 어르신

황호동 후보 도왔으나 길전식, 윤재명 당선

성전면 오산마을 김오동(78) 어르신은 1978년 11대 국회의원 선거 때부터 현역이던 황호동 국회의원의 투표소 참관인으로 등록하면서 처음 선거운동에 발을 디뎠다.

그의 나이 41세때였다. 다른 사람에 비해 늦깎이 입문이였지만 활약은 대단했다. 고향에서 터를 잡고 살며 주변사람들과 끈끈하게 다져놓은 친화력 덕분에 재선에 도전한 황호동 후보가 성전지역 득표율을 올리는데 상당한 공을 세웠다.

그러나 아깝게도 황후보는 길전식․ 윤재명 후보에게 패해 정치권을 떠났다. 12대 국회의원 선거 때는 민한당 후보였던 영암출신 유재희 후보를 위해 선거운동을 했다. 집안 친척뻘 되는 유후보를 도와야 한다는 권유로 영암과 강진을 오가며 선거운동을 열심히 했다.

김어르신이 국회의원 선거를 처음 경험한 것은 1950년 2월에 있었던 2대 국회의원 선거때였다. 약관의 41세 변호사 양병일 후보가 현역인 차경모 제헌의원을 누르고 당선된 선거였다. 성전 처인마을에서 양병일 후보가 유세를 했는데 회관앞에 500여명의 청중이 모여들었다.

“그 사람 참 말잘하든만. 키는 작았는데 목소리가 카랑카랑하고 아주 똑똑해. 저 사람이 되겄다 했는데 진짜 되더라고. 그 때 그런생각이 들어. 나는 못배워서 못하지만 잘난 사람 내가 당선시키면 그 재미가 있겠드란 말이여”

3대 선거에는 성전 영풍마을 출신 조덕훈씨가 무소속 후보로 출마한 선거였다. 김어르신은 선거운동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내심 조후보의 당선을 바랬다. 약관 34세의 조후보는 성전지역의 후원으로 5천614표를 얻었으나 당선된 김성호, 양병일 후보에 이어 3위를 하는데 그쳤다.

“다른 후보들은 트럭에 마이크를 설치해서 선거유세를 하는데 아 우리 조후보는 깍대기(두꺼운 종이)를 말아서 연설을 하드란 말이시. 참 안쓰럽기도 하고... ”

옛날에는 금권선거가 판을 쳤다. 선거 때가 되면 선거운동원들이 돈을 좀 벌었을 성 싶기도 했다. 중간 배달사고가 많았을 것이다.

“나는 내가 사람들에게 막걸리 사주며 선거운동 했네. 차비하고 밥값 조차 받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것지만 나는 돈하고는 먼 사람이었어. 황호동후보 참관인 할 때는 밥값하라며 그때 돈으로 오천원을 주더구만. 지금으로 치면 한 오만원 될려나”

김어르신은 후보들에게 선거를 해서 당선이 되려면 사람들을 진실되게 만나라고 충고했다. 또 마음을 전혀 열지 않은 사람이 내 지지표가 되도록 하려면 5~6 번은 찾아가라고 권장했다. 오랜 선거운동 경험에 의하면 아무리 무쇠같은 사람도 후보가 5 번 이상을 찾아오면 마음을 열게 된다는게 김어르신의 신조였다.
 

저작권자 © 강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