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탄핵 후폭풍, 강진·완도 선거에도 영향 끼쳐

이영호 의원
대통령 탄핵 후폭풍, 강진·완도 선거에도 영향 끼쳐
우리당 이영호 후보 ‘당선’, 민주당 황주홍 후보 ‘석패’ 

제17대 국회의원 선거는 2004년 4월 15일 실시됐다. 17대 총선은 국회를 장악한 야당이 대통령 탄핵을 배경으로 진행된 ‘탄핵 총선’이었다. 대통령 탄핵은 선거의 가장 핵심 쟁점이 되었으며, 선거 결과에도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

이번 총선부터는 비례대표 의석수 배정방식이 달라졌다. 16대 총선까지는 정당득표율에 따라 비례대표(전국구) 의석을 배정했으나, 17대 총선부터는 지역구 투표와 비례대표 투표를 분리한 <1인 2표제>를 총선 사상 처음으로 도입했다. 의원 정수는 299명(지역구 243명, 비례대표 56명)으로 재조정됐다. 16대 때는 273명이었고, 15대 때는 299명이었다.

선거 결과, 여당인 열린우리당(우리당)이 과반수가 넘는 152명(지역구 129, 비례대표 23)을 당선시켜, 16년 만에 여대야소 국회가 탄생했다. 5·16군사쿠데타 이후 처음으로 민주진보진영이 원내 과반의석을 확보했다.

한나라당은 121명(지역구 100, 비례대표 21)을 확보했으며, 민주노동당(민노당)은 10명(지역구 2, 비례대표 8)을 얻어 국회 사상 처음으로 진보정당이 원내에 진출해 원내 제3당의 위치를 차지했다.

반면 16대 국회에서 제2당이었던 새천년민주당(민주당)은 9명(지역구 5, 비례대표 4)을, 자유민주연합(자민련)은 지역구에서만 4명을 당선시켰다. 이 밖에 국민통합21이 1명, 무소속이 2명을 차지했다. 광주·전남은 우리당이 다수당이 됐다. 우리당은 20개 선거구 중 14석을 차지했고, 민주당은 5석을 얻는데 그쳤다. 무소속은 1석.

수도권에서 불어오던 ‘탄핵풍’ 광주 거쳐 남하
강진․완도 ‘민주당 전선’도 무너뜨렸다 

17대 총선에서는 모두 3명이 하나의 금배지를 차지하기 위해 선거전에 뛰어들었다. 이들은 황주홍(黃柱洪·53, 민주당) · 이영호(李泳鎬·46, 우리당) · 이재진(李在珍·46, 자민련) 후보였다. 황주홍 후보와 이재진 후보는 강진 출신이었고, 이영호 후보는 완도 출신이었다.

2003년 초여름부터 시작된 민주당 분당과 우리당 창당(2003.11.11), 천용택 의원 불출마 선언(2004.2.2),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 가결(2004.3.12)등 잇따라 발생한 굵직한 정치적 사건들이 강진·완도 선거구의 정치구도를 흔들어버렸다.

현역 의원이던 천용택 의원이 민주당을 탈당, 새로 창당한 우리당으로 옮겼다. 이에 지난 4년 동안 권토중래했던 민주당 황주홍 후보는, 천 의원과의 맞대결을 예상하고 선거준비를 해왔다.

그런데 천 의원이 군납비리에 연루돼 경찰조사를 받으면서 전격적으로 불출마를 선언, 지역 총선판이 흐트러지면서 새로운 정치구도가 형성됐다. 더욱이 선거 1개월여를 남겨놓고 일어난 대통령 탄핵에 따른 후폭풍은 총선 전망을 종잡을 수 없게 만들었다. 

선거전은 황주홍 후보(기호 2번)와 이영호 후보(기호 3번)가 치열한 2파전으로 전개됐다. 황 후보는 민주당 경선(여론조사)에서 오석보 후보(한국원자력문화재단 전무)를 이겨 본선에 올랐다. 이 후보는 당초 무소속 출마를 준비하다 우리당에 입당, 곽동진·정수산·손승길·윤재근 후보가 참여한 선거인단 경선에서 63%를 얻어 본선 후보가 되었었다.  

<강진․완도선거구 제17대 총선 입후보자 명단>

이름

(나이)

주소

직업

학력 및 경력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황주홍

(53)

완도군 완도읍 가용리 3-40 학림아파트103-1006

정당인

광주일고 졸, 연세대 정치외교과 졸, 미국 미주리대학원 졸, 정치학박사, 아태평화재단 부총장, 국민회의 원내기획실장, 국회 정책연구실장(1급), 건국대 정치학과 교수,

새천년

민주당

24,905

(45.78%)

이영호

(46)

완도군 군외면 불목리 494

정당인

완도수고 졸, 부산수대 졸, 부경대 대학원 졸, 수산학 박사, 해양기술사, 한국조류학회 이사, 해남수산기술관리소장, 전남대 교수

열 린 우리당

28,381

(52.17%)

이재진

(46)

강진군 칠량면 현평리 89

정당인

강진농고 졸, 강진 칠량면 4H회 회장, (사)농어민후계자 중앙위원, (주)진원건설 회장, 자민련총재 경제담당특보

자유민

주연합

1,111

(2.04%)

※명단의 내용은 입후보 당시 선거관리위원회 기록임

대통령 탄핵 전까지는 황 후보가 각종 여론조사에서 이 후보를 앞섰다. 그러나 대통령 탄핵이후 엎치락뒤치락하던 지지율은 이 후보가 상승세를 타면서 앞서기 시작했다. 수도권에서부터 불어오던 ‘탄핵풍’은 광주를 거쳐 남하, 강고하게 보이던 강진·완도의 ‘민주당 전선’도 무너뜨렸다.

황 후보는 “이번 선거는 국회의원 선거이지 군의원 선거가 아니다. 급변하는 세계를 전혀 모르고, 경륜과 식견과 능력을 알 수 없는 사람을 선택하면 안된다”고 은근히 이 후보를 비난하면서, 24시간 민원 응급실 설치, 국내 최초 군 발전기금 조성, 연세대 완도분교 유치 등을 공약했다.

반면 이 후보는 “지역실정도 모르는 도시형 비전문가보다는 위기에 처해있는 농축수산을 살릴 수 있는 발로 뛰는 전문가가 필요하다”면서 농어업인 기술지원 전문연구소 설립, 농수산계 대학 및 대학원 유치, 장미육종연구소 설립 등을 약속했다.

이재진 후보(기호 4번)는 “그간 권위와 명령만을 앞세우는 황제 국회의원만 봐왔다. 이제는 지역민의 손발이 될 ‘머슴 국회의원’이 필요한 때”라면서 노인전문병원 유치, 해산물 가공산업단지 조성 등을 공약으로 발표했다.

선거 결과, 이영호 후보가 유효투표수(5만4천397표)의 52.17%인 2만8천381표를 득표, 두 번째 도전 끝에 ‘여의도 입성’에 성공했다. 황주홍 후보는 이 후보보다 3천476표가 부족한 2만4천905표(45.78%)를 얻어 낙선했다. 이재진 후보는 유효투표수의 2.04%인 1천111표를 얻는데 그쳤다.   

 

열린우리당 이영호 의원이 국회 농림해양수산위원회 회의에서 농림부 장관 등 관계자들을 출석시킨 가운데 질문을 하고 있다.
정책보고서 31권 발간,
간담회와 세미나 58회 개최
36건 법안 대표 발의,
법안 16건 제․개정 성과  


이영호 의원(1959.12~ )은 완도군 군외면 불목리 494번지에서 5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이 의원은 어촌, 어업, 해양, 수산 등의 단어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자타가 인정하는 수산 전문가다. 섬에서 태어나 바다를 놀이터 삼아 성장했고, 완도수고와 부산수대, 부경대 대학원을 졸업했다. 해양기술사와 수산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6대 총선에 출마하기 전까지는 어촌지도소(나중에 수산기술관리소, 해양수산사무소 등으로 바뀜)에서 지도사와 지도관(소장)으로 재직하며 일선에서 어민들에게 어업지도를 했었다. 16대 총선 낙선 후 강진군 대구면 저두리에 3천평 규모의 양식장을 세우고 ‘한국식량산업연구원’을 발족시켰다.

국회의원이 되어서는 농림해양수산위원회에서 상임위활동을 했고, ‘바다포럼’이라는 국회연구단체도 만들어 활동했다. 말 그대로 이론과 실천을 겸비한 ‘해양수산전문가’다.

아울러, 이 의원은 보기 드물게 생활기반을 지역에 두고 지역민들과 부대끼며 살아오면서 국회의원에 당선돼, 지역의 정치지망생들에게 ‘나도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줬다. 또한 5급 상당의 수산기술관리소장(지도관)을 그만두고 ‘무모한 도전’끝에, 마침내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은 관운 외에도 그의 집념의 산물이었다. 

이영호 의원은 바다와 섬에 대한 자긍심이 대단했다. 바다는 그의 삶의 터전이었고, 바다를 통해 꿈을 키웠다. 국회의원 시절 그의 홈페이지를 클릭하면, 첫 화면에 우리나라 지도가 거꾸로 된 세계지도가 나타났다. 성장 가능성이 무한한 ‘바다영토’를 잘 활용해야 한다는 그의 일관된 신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열린우리당 이영호 의원이 2006년 12월 국회를 방문한 강진·완도 지역 주민들과 반갑게 악수하고 있다.
공직생활(어촌지도소)때는 열정적으로 일해 어민들로부터 깊은 인상을 남겼다. “24시간 언제든지 상담해드립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명함을 가지고 다니며 연중무휴로 뛰었다. 어촌지도사 시절, 새벽 3~4시에 집을 나서 배를 타고 가 민원을 해결한 경우가 허다했다. 밤낮없이 양식장을 돌아다니다가 오토바이 사고로 앞니 4개가 부러지기도 했고, 졸음운전으로 차가 논두렁에 처박혀 살아나기도 했다.

이영호 의원은 국회의원이 되겠다는 꿈을 군대생활 때 가졌다. 대학 2학년을 마치고 완도에서 근무했던 군대시절, 국회의원이 돼 육지 주민들보다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는 섬 주민들을 위해 법·제도 등을 개선하는데 앞장서겠다고 다짐했다. 어렸을 적 꿈은 새마을지도자. 박정희 대통령은 ‘소년 이영호’의 영웅이었다. 17대 총선 후보시절 그의 휴대폰 컬러링은 ‘새벽종이 울렸네’로 시작하는 ‘새마을 노래’였다.

17대 국회 때 이 의원은 31권의 정책보고서를 발간하고, 간담회와 세미나를 58회나 개최하는 등 왕성하게 활동했다. 36건의 법안을 대표 발의했고, 그중 16건의 법안이 제·개정되는 성과를 올렸다.
사람은 누구나 공과(功過)가 있는 법. 열정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세련미 부족 때문이었을까? 이 의원은 몇 차례 구설에 오르내렸었다.
 
당선 직후 강진군공무원노조와 갈등(04.5), 한나라당이 주도한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 개정안’ 서명 논란(04.7), 강원도 산불피해대책 논의시 여성비하 발언 논란(05. 4) 등에 휩싸였다. 해남 어민간담회시 폭언 파문(06.10)에 이어, 한미FTA 찬성 발언으로 농민단체들로부터 거센 반발(07.3)을 사기도 했다.

이 의원의 선거전적은 1승 3패. 1승은 17대 총선 한번 뿐이고, 16대 총선과 18대 재선(경기도 안산상록을), 19대 총선(해남·완도·진도) 등 세 번은 패배했다. 18대 총선 때는 당내 경선 패배로 본선에 나가지 못했다. 이 의원은 대구면 저두리 양식장을 처분하고 현재 완도에 거주하고 있다. 박순미 여사와 1남.
 
바로 잡습니다-지난주 발행된(5.8자) 16대 총선후보 명단표 중 천용택 후보의 소속정당을 새천년민주당으로 바로 잡습니다.  

 /임영상 객원기자(정치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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