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북 수려한 전망자랑, 서쪽은 잔목으로 막혀있어

다산 정약용 선생이 형님 그리며 바라봤던 서쪽하늘
스토리텔링 안내판 만들고 잔목정리해서 서쪽 조망케 해야

보은산 정상의 서쪽은 각종 잔목이 우거져 서쪽하늘이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오래전 '산불조심'이란 큰 간판이 있었는데 그것을 철거한 후 나무를 심어서 그 나무들이 서쪽 조망권을 막고 있다. 이곳들을 적당히 정비하면 시원스런 서쪽 하늘이 열릴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강진읍의 주산이라고 할 수 있는 보은산에 오르는 사람들은 늘 한가지 아쉬움을 갖게 된다. 정상에 오르면 남쪽으로 시원한 강진만과 강진읍 풍경, 동쪽으로 군동 벌판과 탐진강 하류가 조망되고, 북쪽으로는 멀리 무등산이 보일정도로 전망이 좋지만 서쪽 전망이 꽉 막혀 있기 때문이다. 서쪽에는 잔목과 일부 심어 놓은 나무들이 우거져 있고 이 나무들이 점점 커가면서 서쪽 조망을 갈수록 어렵게 하고 있다.

보은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서쪽 풍경은 아주 아름답다. 가까운 곳에 서기산이 있고 우측으로 성전의 월출산 자락과 월각산이 펼쳐져 있고 멀리 뒤쪽으로는 해남의 흑석산이 아스라이 펼쳐져 있다. 또 맑은 날에는 멀리 서해바다까지 볼수 있는 곳이 바로 우두봉 정상이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낙조는 어느지역 보다 훌륭하다는게 강진읍 주민들의 설명이다. 

그러나 지금은 보은산 정상에서 서쪽 하늘을 볼 수 없다. 이곳에서 서쪽 풍광을 볼 수 있어야 하는 이유가 또 한가지 있다. 이 산 봉우리에 다산 정약용 선생의 스토리텔링이 전해진다. 다산선생이 형님 정약전 선생을 존경하며 그리워 했다는 것은 세상에 알려진 사실. 형제는 한양에서 함께 유배를 오다가 1801년 음력 11월 22일 새벽 나주의 북쪽에 위치한 밤남정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작별을 한다.

다산은 강진에 와서도 늘 형님을 그리워했다. 현재 다산초당에 세워져 있는 천일각은 다산이 형 약전을 그리워하며 바다를 바라본 곳이라고 한다. 손암 정약전은 흑산도 옆 우이도(牛耳島)에서 귀양살이를 했다.

다산이 강진에 온지 3년째인 1805년 어느날 일이다. 다산은 스님한분과 보은산 등반을 하게 된다. 다산은 보은산 정상인 우두봉에 올라서 먼서쪽을 바라보며 혹시 형님이 계시는 우이도가 보이지 않은가 살펴보았다.

그러나 강진서 흑산도가 어디라고 해발 439m에 불과한 보은산에서 보이겠는가. 다산은 당시의 느낌을 ‘서쪽을 바라보니 바다속에 산들이 얽혀 있고 구름사이로 보일락 말락 하면서도 나주의 여러 섬들이 보였지만 어느것이 우이도인지 분간이 되질 않았다’고 안타까운 심정을 기록했다.

우두봉 정상은 동쪽과 남쪽, 북쪽이 시원하게 뚫려 조망권이 아주 좋다. 등산객들이 동쪽을 바라보며 운동을 하고 있다. 그러나 서쪽은 꽉 막혀 있다.
그 때 마침 동행한 스님이 다산의 귀를 쫑긋하게 했다. 보은산을 일명 우이산(牛耳山)이라고도 하고 그 정봉이 둘 있는데 그것은 형제봉(兄弟峯)이라고 한다는 것이였다. 그러니까 지금의 보은산을 달리 우이산이라고 하고 산봉우리를 형제봉이라고 한다는게 스님의 설명이였다.

다산선생은 순간 자신의 처지와 너무 비슷한 상황을 보고 무릎을 친다. 그리운 형님은 지금 우이도에 유배돼 있다. 자신은 지금 우이산에서 그쪽을 바라보고 있다. 우이산의 정상을 형제봉이라고 한다. 우이산의 형제봉은 마치 그리워도 만나지 못하는 자신처럼 생각됐다. 다산은 서글픈 마음이 들어 다음과 같은 한시를 적는다.

나해와 탐진이 이백 리 거리인데
/ 羅海耽津二百里
험준한 두 우이산을 하늘이 만들었던가
/ 天設巃嵷兩牛耳
삼년을 묵으면서 풍토를 익히고도
/ 三年滯跡習風土
자산이 여기 또 있는 것은 내 몰랐네
/ 不省玆山又在此

사람 눈은 그 힘이 멀리 보지 못하여
/ 人眼之力苦不長
백 보 밖의 얼굴도 분간을 못하는데
/ 百步眉目已微芒
더구나 탁주 같은 안개구름 껴있으며
/ 況復雲霾濃似酒
눈앞의 섬들도 자세히 보기 어려움에랴
/ 眼前島嶼猶難詳
먼곳을 실컷 본들 무슨 소용 있을 건가
/ 瓊雷騁望嗟何益
괴로운 마음 쓰라린 속을 남들은 모른다네
/ 苦心酸腸人不識
꿈속에나 서로 보고 안개 속을 바라보다
/ 夢中相看霧中望
눈 물커지고 눈물 말라 천지가 깜깜하다네
/ 目穿淚枯天地黑

두 우이산이란 형님이 사는 우이도를 의미하고 또 하나는 자신이 서 있는 우이산(보은산 정상)을 뜻한다.<한국고전번역원 1994년 양홍렬 번역본 참조)

이 처럼 사무친 형제의 정이 전해 오는 곳이 바로 우두봉 정상이다. 그런데 다산선생이 우두봉에서 형님을 그리워하며 지은 한시의 스토리텔링 안내판이 이상스럽게도 고성사 서쪽 등산로 중간 지점에 있다.
 
사람이 거의 다니지 않은 곳이다. 더더욱 오늘날 사람들이 다산이 바라보던 서쪽 하늘을 볼 수 있는 기회마저 차단되고 있다. 아쉬운 대목이다.

주민들은 “우두봉 정상에서 다산선생의 한시를 감상할 수 있는 스토리텔링을 접할 수 있고, 서쪽으로 펼쳐져 있는 시원한 풍경을 볼 수 있도록 적당한 정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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