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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으로 본 강진정치사] 16대 국회(2000.5.30 ~ 2004.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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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05.15  11: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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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대통령 만들기’ 일등 공신 천용택 후보 압승
역대 총선사상 처음으로 강진출신 후보 없이 선거 치러 

   
천용택 의원
제16대 국회의원 선거는 2000년 4월 13일 실시됐다. 지역구 227명과 전국구 46명 등 모두 273명을 선출한 16대 총선에는 새천년민주당(민주당)과 한나라당, 자유민주연합(자민련), 민주국민당(민국당) 등 8개 정당과 무소속이 참여했다.

선거결과, 야당인 한나라당이 133명(지역구 112, 비례대표 21)을 당선시켜 원내 제1당이 됐다. 집권당인 민주당은 115명(지역구 96, 비례대표 19)을 당선시켰다. 15대 총선 때 의석수(79석) 보다는 36석을 더 얻었다.

자민련은 17명(지역구 12, 비례대표 5)을, 민국당은 2명(지역구 1, 비례대표 1)을, 한국신당은 1명을 각각 당선시켰다. 무소속은 5명이 당선됐다.

이번 총선부터 전국구 제도가 바뀌었다. 종전에는 지역구 의석수에 따라 전국구 의석수를 정했으나, 이번에는 정당 득표율에 따라 의석수를 배분토록 했으며, 명칭도 비례대표로 바뀌었다.

의석수도 15대 때는 299석이었으나, 16대 때는 273석으로 줄었다. 이번 선거부터는 시민단체의 낙선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돼 선거에 큰 영향을 줬다. 낙선대상자 86명 중 59명을 낙선시키는 위력을 발휘했다.

16대 국회 임기동안 여러 일들이 일어났다. 분단사상 처음으로 남북정상회담이 2000년 6월 13일 평양에서 개최됐다. 같은 해 12월에는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2004년 3월 12일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되기도 했다. 고비용 저효율의 정당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지구당 제도가 폐지되고 후원회제도가 개선됐다. 
 
 
천후보 전국 최고 득표율 목표
이후보 인지도 높이는 계기


16대 총선 때 강진·완도 선거구에 출마한 후보는 천용택(千容宅·64, 민주당) 후보와 이영호(李泳鎬·42, 무소속) 후보 두 명뿐이었다. 역대 강진지역 총선 중 9대 총선(2명 선출한 중선거구제, 3명 출마)에 이어 두 번째로 낮은 경쟁률이었다.

천 후보와 이 후보는 모두 완도 출신. 강진 출신 후보는 없었다. 강진 출신 후보가 없었던 총선은 제헌의회 선거부터 지난 4월 11일에 끝난 19대 총선까지 통틀어 16대 총선이 처음이었다.

당초에는 다자대결이 예상됐었다. 그러나 천용택 후보가 민주당 공천자로 결정되자, 공천경쟁을 벌였던 황주홍 아태재단 부총장과 김영국 순천향대 교수가 당 결정에 승복하고 지지를 선언했고, 신정철 자민련 위원장도 출마를 포기했다.

윤동환 위원장은 한나라당을 탈당, 무소속 출마를 준비 중이었으나 후보등록 직전 출마를 포기하고 전격 민주당에 입당해 천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한나라당은 위원장 탈당으로 조직이 와해돼 후보조차 등록시키지 못했다.

<강진․완도선거구 제16대 총선 입후보자 명단>

이름

(나이)

주소

직업

학력 및 경력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천용택

(64)

강진군 강진읍 평동리 231-2 금호타운1-108

정치인

목포 문태고 졸, 육사 16기 졸, 중앙대 경영대학원 졸, 육군 12사단장, 육군 제2군단장, 비상기획위원장(장관급), 15대 의원, 국방부 장관, 국가정보원장

 

새천년

민주당

47,771

(76.94%)

이영호

(42)

완도군 군외면 불목리 494

광주대

겸임교수

완도수고 졸, 부산수대 졸, 부경대 대학원 박사과정 3년 수료, 해양기술사, 한국조류학회 이사, 해남(강진)수산기술관리소장, 완도수고 겸임교사

무소속

14,318

(23.06%)

※명단의 내용은 입후보 당시 선거관리위원회 기록임

선거전은 정치거물 대 정치신인의 싸움이라서 당선이 예상되어서인지 싱겁게 진행됐다. 기호 2번 천용택 후보는 ‘국민의 정부’ 탄생 일등공신이자 15대 전국구 의원과 국방부장관, 국가정보원장을 지낸 정치 거물.
 
반면 이영호 후보는 강진·완도·해남 등지의 어촌지도소(수산기술관리소)에서 어업지도를 하다 해남수산기술관리소장을 끝으로 공직을 퇴직, 총선에 출마한 무명의 정치신인이었다.

따라서 천 후보의 선거캠프는 재선 여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전국 최고 득표율 달성’에 목표를 세우고 선거운동을 전개했다. 천 후보의 선거캠프는 직전 지구당 위원장인 김영진 의원 세력과 구 여당 세력 등 지역의 여러 정치 세력이 참여한 ‘연합군’으로 구성됐다.

기호 4번 이영호 후보는 천 후보와의 맞대결은 역부족이라고 판단, 지역에서 공직생활을 하면서 맺었던 인간관계를 토대로 ‘밑바닥 훑기 전략’으로 표밭갈이를 했다.

이 후보는 “지금까지 강진은 농업 중심으로, 완도는 수산업 중심으로 지역경제가 유지돼 왔으나, 이제는 보다 복합적인 지역경제 육성방안이 필요한 때”라며 농어촌 보건진료소 확대, 농어업 재해대책법 개정, 식물 · 수산생물의사 및 병원제도 도입, 농수산계 대학 및 대학원대학 유치 등을 약속했다.

선거 결과, 예상대로 천용택 후보의 압승으로 끝났다. 천 후보는 유효투표수 6만2천89표의 76.94%인 4만7천771표를 획득해 1만4천318표(23.06%)를 얻은 이 후보를 3만3천453표 차이로 제치고 당선됐다. 이 후보는 낙선했지만 지명도를 높이는 등 ‘본전은 찾은 선거’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북풍차단 병풍 확산 주인공
고비때 마다 DJ바람막이 


   
민주당 천용택 의원이 2002년 8월 26일 열린 국회 국방위에서 이회창 한나라당후보의 차남 이수연씨의 병적기록표를 들어 보이며 질문을 하고 있다.
 
천용택 의원(1937.8~ )은 완도군 노화읍 당산리, 전형적인 반농반어(半農半漁)의 어려운 가정에서 태어났다. 천 의원의 부모는 모두 8남매를 낳았는데, 이 가운데 4명은 유아시절 사망해 천 의원은 사실상 4남매 중 셋째였다.

어린 시절 이름은 기영이었다. 마을을 방문한 스님이 ‘천용택 어린이’를 보고 천 의원의 아버지에게 “모든 사람을 포용한다는 의미인 ‘용택’이라고 지으면 좋다”고 말해 형제 중 유일하게 항렬자를 버리고 개명했다.

천 의원은 목포 문태고와 육사(16기)를 거쳐 중앙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그의 육사 동기생 중에는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인물들이 많다. 장세동 전 경호실장, 이종찬 전 국정원장, 고 강재구 소령, 이승만 대통령의 양자 이강석 등이 천 의원과 육사 동기들이다.

천 의원은 93년 중장으로 예편하기 전까지 37년 간 군 생활을 했다. 맹호부대 중대장으로 월남전에 참전하기도 했다. 군에서는 육군본부 체계분석처장, 12사단장, 2군단장, 합참 전략기획본부장 등을 지내며 군사전략전문가로 명성을 떨쳤다.

김영삼 정부 때 장관급인 비상기획위원장을 지낸 천용택 의원은, 김대중 전 대통령(DJ)이 정계복귀 후 95년 9월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하자 입당, 처음으로 정당 활동을 하면서 지도위원 겸 안보특별위원장을 맡았다. 15대 총선(전국구)과 16대 총선(지역구)에 당선돼 재선의원이 됐다.

지난 97년 대선 때는 선거대책위원회 비상기획단장을 맡아 당시 여당인 신한국당의 ‘DJ 사상시비’와 ‘북풍’을 차단하고, ‘병풍’을 확산시켜 DJ가 당선되는데 크게 기여했다.

국민의 정부 출범이후 초대 국방부 장관과 국정원장 등을 역임한데 이어, 국회 국방위원장과 민주당 전남도지부장 등을 지냈다. 17대 총선을 앞두고 군납비리 혐의(나중에 무혐의)로 조사를 받으면서 불출마를 선언했다.

   
천용택 국방부장관이 1998년 12월 13일 서부전선을 방문, 경계근무중인 초병과 함께 철책을 둘러보고 있다.
천 의원이 DJ와 정치적 인연을 맺은 것은, 육사 선배(13기)인 임동원 전 국정원장이 아태평화재단 사무총장을 맡고 있던 95년 초였다. 임 전 원장을 만나 향후 진로를 상의할 겸 아태재단을 찾아갔다가 임 전 원장의 주선으로 DJ와 면담, 군문제 등을 논의하면서 인연이 시작됐다.

천 의원은 “97년 곡절이 많은 대선과정을 거치면서 느낀 것은 DJ가 대통령을 할 운세를 타고난 분이라고 믿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하늘이 돕고 있는 것처럼 극적인 상황들이 이어졌다.

DJ가 해방 전 좌익 활동을 했다(DJ의 사상시비)는 신한국당의 공세와 관련, 천 의원은 수소문 끝에 당시 목포해군경비사령관을 지낸 송인명 장군을 미국 뉴저지 주에 까지 가서 만났다.

송 장군으로부터 DJ가 해상방위대 부대장 출신이라는 사실을 녹취했고, 귀국 후에는 목포해상방위대가 유령조직이 아니라 해방 후 해군에 공식 편입됐음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를 신원미상의 사람으로부터 건네받아 신한국당의 허위공세를 무력화시키기도 했다.

DJ가 대선 승기를 잡게 한 이회창 후보 아들의 병역비리 문제(병풍)도 우연하게 일이 시작됐다. 97년 4월초, 국회 의원회관 천 의원 방으로 상이군인이 찾아와 “이회창 후보의 두 아들이 불법으로 병역을 면제받고 병역을 기피했으니 확인해보라”고 제보했다. 천 의원은 즉시 국방부와 병무청으로부터 이 후보 두 아들의 병적기록표 등 관련 자료를 입수, 병역비리 사실을 확인해 공개했다.

이 문제로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던 이회창 후보의 지지율은 급락(40%대→13.5%)했고, DJ는 반대로 가파른 상승세(20%대→40%대)를 타면서 이 후보를 앞서기 시작했고, 마침내 DJP연합까지도 성사돼 승리할 수 있었다.

‘북풍’도 사전에 차단했다. 천 의원은 안기부가 국민회의 고문을 잠시 맡았던 오익제 전 천도교 교령의 월북사건을 DJ와 연계시키려 한다는 정보를 입수, 미리 대처해 무산시키기도 했다.

천용택 의원은 부인 김아미 여사와의 사이에 3녀(미혜, 현진, 수영)를 뒀는데, 모두 출가했다. 올해 76세인 천 의원은 육사 동기 등 지인들과 함께 일 주일에 두 세 차례 골프를 하면서 건강을 관리하고 있다. /임영상 객원기자(정치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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