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것도 풀어써야 후세들이 알지요

작천 용정마을 정자 현판
일제강점기 주민들의 꿋꿋한 의지 담겨있어

한글로 풀어써 주민 출향인들에게 배포하기로
“훗날 또 누군가 근고정의 의미를 전할 것”

신창현 어르신이 작천 용정마을 정자인 근고정 안에서 근고정의 뜻을 설명하고 있다. 좌측은 김행식씨다.
일제가 우리나라를 강제 합병한 후 당시 한학자들의 정신적 갈등은 상당했다. 전국적으로 유림들이 각종 상소를 올려 일제 강제합병의 부당함을 주장했던 사례가 많다.

광양에 살고 있던 매천 황현 선생 같은 사람은 할복 자살로서 강제합병의 부당함을 알리기도 했다.

당시 강진의 유림사회도 많은 갈등을 겪었던 것으로 보인다. 작천면 용상리 용정마을에 가면 이같은 채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 있다. 용정마을 앞에는 근고정(近古亭)이란 정자가 있다.
 
이 정자는 1918년에 마을주민들이 지은 것이다. 일제의 강제합병이 1910년에 있었기 때문으로 그로부터 8년후 지은 정자인 셈이다.

정자 대들보에는 이 정자를 근고정이라 이름 지은 이유가 작은 판자에 적혀 있다.

‘현 시대가 말세여서 일본에게 강제로 나라를 빼앗긴 이후 세상의 모든 풍속이 이익만 쫓아가는 형국이지만 우리마을은 선현의 유풍을 지키면서 옛 풍속을 그대로 잇고 있음으로 이는 옛 성현들의 행동과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우리마을 사람들의 풍속이 옛 성현들의 풍속과 가깝다는 뜻에서 마을 정자의 이름을 근고정이라 짓는다’

정자이름을 근고정이라고 지은 사람은 당시 용정마을에 살고 있던 신묵재 김 선생님이란 한학자였다. 신묵재 선생은 당시 상황을 ‘일본에게 강제로 나라를 빼앗긴 이후 세상의 모든 풍속이 이익만 쫓아가는 형국이다’고 진단하고 있다.

나라를 빼앗기고도 그속에서 잇속을 챙기려 했던 사람들을 비판적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는 학자의 면모가 보이는 대목이다.

그러면서 신묵재 선생은 용정 마을은 선현의 유풍을 지키면서 옛 풍속을 그대로 잇고 있기 때문에 주민들의 삶이 옛 성현들의 풍속과 가깝다는 뜻에서 마을 정자의 이름을 근고정이라 짓는다고 적고 있다. 

이 글은 다시 1993년(계유년) 마을 한학자 김재오 선생을 통해 다시 한번 의미가 되살아 난다. 그 전까지는 근고정이란 이름만 있을 뿐 그 뜻을 아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마을 주민들이 마을 한학자에게 근고정의 의미를 새겨 달라고 부탁했던 것이다.

근고정이 세워진지 75년만의 일이었다. 김재오 선생은 근고정이 신묵재 김선생님이란 분이 이름을 지었다는 것과 그 뜻이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고도 꿋꿋한 지조를 지키며 사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것이라고 글을 세겨 주었다.

그러나 이 글 또한 세월이 가면서 한문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줄어들어 새로운 변신이 필요하게 됐다. 최근 마을 주민 신창현(83) 김행식(74)씨는 근고정기를 순수한 한글로 풀어서 마을 주민들과 출향인들에게 나눠주기로 했다.

신묵재 김선생님을 통해 근고정이란 이름이 탄생한지 94년만의 일이자, 다시 김재오 선생을 통해 근고정기가 나온지 10년만의 일이다.

유학자인 용정마을 신창현(83)어르신은 “근고정은 일제시대에도 당당하게 우리 것을 지켜려고 했던 마을주민들의 큰 의지가 담겨 있는 정자다”며 “세월이 흘러 세대가 변한만큼 모든 사람들이 그 뜻을 이해할 수 있게 한글로 번역한 글을 주민들에게 안내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김행식씨는 “이번에 한글번역본을 알려 놓으면 훗날 몇십년 또는 몇백년 후에 그 시대에 맞게 근고정의 뜻을 전하는 사람들이 또 있을 것”이라고 의미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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