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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으로 본 강진정치사] 14대 국회(1992.5.30 ~ 1996.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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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05.01  14: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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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대선 앞둔 ‘황색돌풍’ 위력 확산, 광주·전남 싹쓸이 
13대 국회 광주청문회 등 맹활약한 김영진후보 재선 성공

   
김영진 의원
14대 국회의원 선거는 1992년 3월 24일 실시됐다. 14대 총선은 14대 대선(92년 12월18일)을 9개월 앞두고 치러져 대선전초전 성격을 띠었다.

대통령 임기(5년)와 국회의원 임기(4년)를 조정하지 않는 한 20년마다 같은 해에 총선과 대선이 실시되는데, 올해가 바로 그 해이다. 지난 4월 11일 19대 총선이 실시됐고, 오는 12월 19일 18대 대선을 앞두고 있다.

14대 총선은 13대 총선 때 내용과 달라진 게 거의 없다. 의원 정수 역시 299명으로 13대 때와 같지만, 지역구가 224명에서 237명으로 늘어나고, 대신 전국구가 75명에서 62명으로 줄어들었다.

선거는 3당 통합(민주정의당 · 통일민주당 · 신민주공화당)으로 거대 여당이 된 민주자유당(민자당), 평화민주당과 신민주연합당의 통합으로 탄생한 민주당, 그리고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이 창당한 통일국민당(국민당)의 3당 대결구도로 전개됐다.

선거 결과, 민자당이 149석(지역구 116, 전국구 33), 민주당이 97석(지역구 75, 전국구 22), 국민당이 31석(지역구 24, 전국구 7)을 차지했다. 이 밖에 무소속이 21석, 신정치개혁당이 1석을 차지했다.

민자당은 지난 90년 1월 3당 합당으로 인위적인 거대여당(216석)을 만들었으나, 이번 총선에서는 1석 차이로 과반수 의석을 확보하는데 실패했다.

민주당과 국민당 등 야당과 무소속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14대 국회 임기동안, 여러 일들이 발생했다. 95년 6월27일 4대 지방선거가 30여년 만에 다시 실시됐다.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연기문제로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해 임기 개시후 4개월 만에 원을 구성하기도 했다.

95년 정기국회 때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돼 ‘광주사태’가 15년 만에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역사적인 재평가를 받았다. 전두환 · 노태우 전 대통령은 비자금 사건과 12·12 군사쿠데타 주도 혐의로 각각 구속됐다.

대선패배로 정계 은퇴했던 김대중 총재가 영국에서 귀국해 95년 9월5일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하고 정계에 복귀했다. 이에 앞서 92년 12월 18일 14대 대선이 치러져 93년 김영삼 정부가 출범했다.

 
세 후보 재격돌... 김식.김영진 난타전
김영진 재선 성공,김식 재기 실패  


강진·완도 선거구에서 14대 총선에 도전한 후보는 김식(金湜·59, 민정당) ·  김영진(金泳鎭·46, 민주당) · 이선동(李先東·60, 무소속) 후보 등 3명이었다. 이들 세 후보는 13대 총선에 이어 다시 맞붙었다. 김식·김영진 후보는 강진 출신이고, 이선동 후보는 완도출신.

   

민주당 김영진 의원이 1994년 8월 29일 국회 농수산위에서 <우루과이라운드와 WTO에 관한 주요 국가들의 비준동향 보고>를 하던 중 미국산 한글상표의 쌀 포장지를 들어 보이고 있다.

선거전은 3파전으로 전개됐다. 세 후보가 재격돌하다보니 선거전이 4년 전보다 더 치열했다. 13대 총선 때 ‘황색돌풍’에 무너졌던 김식 후보가 재기에 성공할 것인가, 아니면 13대 국회 때 광주청문회와 수입 소 파동진상규명 활동 등 뛰어난 의정활동으로 명성을 떨쳤던 김영진 후보가 재선에 성공할 것인가에 우선 관심이 집중됐다. 더불어 완도 출신 이선동 후보가 ‘완도 표’를 얼마나 결집시킬 것인가도 선거전의 흥미를 더하게 했다.

선거전이 종반에 들어서면서 김식 후보와 김영진 후보가 난타전을 벌였다. 김식 후보측은 강진읍 모 마을 87가구에 현금 3만~5만원씩을 뿌리며 지지를 부탁한 사실이 드러나, 김영진 후보측이 민자당 당직자 7명을 국회의원선거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김식 후보는 선거운동기간에 “특정인 덕택에 국회의원이 된 사람, 60대의 나이에 초선을 바라보는 사람이 지역을 위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는가?”라며 김영진 후보와 이선동 후보를 동시에 비판한 뒤 “지난 4년간 무엇이 달라졌느냐. 강진·완도 발전을 위해서는 10명의 야당의원보다는 1명의 여당의원이 필요한 때”라고 지지를 호소했다.

이와 함께 완도 국제항 기능 확충, 호남고속도로 4차선 완도 연장, 완도수산전문대 설립, 강진에 도청유치, 장흥 유치댐 건설, 강진에 전문대 설립 등을 공약했다.

김영진 후보는 “지난 4년간 지역발전과 정부의 살인적 농수산정책에 온몸으로 싸워왔다. 4년간 의정활동을 열심히 한 결과, 광주·전남 28개 민주단체와 농민회 등에서 전남 유일의 민주후보로 추대해줬다.

고통 받는 농어민이 한을 풀 수 있도록 큰 일꾼이 되겠다”고 강조한 후, 농어가부채 추가 경감을 위한 특별법 제정, 김·미역 가격보장과 수입 저지로 어민보호, 강진 공업전문대 설립 등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선동 후보는 민주당 공천에 탈락하고 또다시 무소속 출마를 하게 된 배경을 설명하고 지지를 호소했다. 그는 “지난 6대 총선 때 제1야당의 공천을 받고 입후보한 이후 32년간 야당에만 몸담아왔다. 민주당을 사랑한다. 민주당을 사랑하기에 민자당이나 국민당을 가지 않고 무소속 출마했다. 반드시 당선돼 지역민의 여론을 묵살하고 비민주적 밀실공천을 한 민주당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겠다. 13대 총선 때 황색돌풍 속에서도 무소속으로 2만8천여표를 획득했다”면서 한 표를 호소했다.

이 후보는 완도지역에 배포된 공보물에 유신이후 20년동안 완도 출신 국회의원을 배출하지 못한 사실을 강조하면서, ‘이선동 당선시켜 완도의 자존심을 회복하자’, ‘고향의 부모형제들이여! 이선동 후보 당선시켜 20년 완도 한을 풀어 달라’는 등 노골적으로 지역감정을 자극하는 선거운동을 펼쳤다.

<강진․완도선거구 제14대 총선 입후보자 명단>

이름

(나이)

주소

직업

학력 및 경력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김 식

(59)

 

강진군 칠량면 영동리 631-2

정당인

강진농고 졸, 육사11기 졸, 연세대․중앙대 경영대학원 수료, 육군소장 예편, 국회 농수산위원장, 11,12대 의원(재선), 농림수산부장관

민 주

자유당

29,139

(39.54%)

김영진

(46)

강진군 강진읍 남성리 61-7

국회

의원

강진농고 졸, 전남대행정대학원 수료, 기독청년협의회(EYC)전국회장, 평민당 강진군 대선본부장, 13대 의원,민주당 원내부총무

민주당

33,685

45.70%)

이선동

(60)

완도군 완도읍 군내리 363

제조업

광주고 졸, 고려대 법대 졸, 평민당 완도군대선대책위원장, 신민당 완도군지구당위원장, 평민당 중앙위원

무소속

10,879

(14.76%)

※명단의 내용은 입후보 당시 선거관리위원회 기록임

선거 결과, 김영진 후보의 재선 성공으로 선거전은 끝났다. 김 후보는 유효투표수 7만3천703표의 45.70%인 3만3천685표를 득표했다. 김식 후보는 김영진 후보보다 4천5백46표가 적은 2만9천139표(39.54%)를 얻어 또다시 낙선했다.
 
이선동 후보는 선전이 예상됐으나 1만879표(14.76%)를 얻는데 그쳐 3위를 기록했다. 이 후보는 13대 총선 때 완도에서 네 후보 중 1위를  차지했었다. 그래서 이번 선거에 ‘완도 몰표’ 여부가 관심을 끌었으나 완도에서 3위를 기록, 득표력의 한계를 보여줬다.
 

김영진 의원 4선 동안 농수산위 붙박이 의정활동 진기록
투사형 정치인 이미지..."나는 온화한 성품의 소유자"


18대 국회 임기종료(5.29)를 앞두고 있는 김영진 의원(1947.11~ )은 의정활동과 관련한 진기록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국회 상임위활동. 김 의원은 13대 국회 때 의정활동을 시작한 이래 16대 국회까지 무려 15년여 동안 줄곧 농수산위원회에서만 상임위활동을 했다.

그래서 ‘농어민의 대변자’ ‘농정 전문가’ 외에도 ‘붙박이 농수산위원’ ‘농수산위 터줏대감’이라는 또 다른 별칭이 이름 앞에 붙곤 했다. (김 의원은 참여정부 초대 농림부장관을 맡으면서 임기 1년을 남겨놓고 16대 전국구 의원직을 사퇴했음)

국회 사무처관계자는 “한 상임위만 4선 내내 한 의원은 김영진 의원이 의정사상 유일하다”고 기록을 공인했다. 4선을 하는 동안 장관이 15명이나 바뀌었고, 사무관이 승진해 고위공무원이 되었을 정도.

   

김영진 의원이 정부의 과학벨트 입지선정에 반발하며 2011년 5월 16일부터 5일째 단식농성을 하고 있다.

김영진 의원은 ‘투사형 정치인’으로 국민들에게 각인돼 있다. 단식농성, 삭발투쟁, 명패투척 등의 단어와 김영진 의원의 강성 이미지가 겹친다.

김 의원의 강경한 이미지는 첫 국회의원이 된 13대 국회 당시의 정치상황 때문에 더 고착화되었는지도 모른다. 첫 여소야대 국회 때 열린 광주청문회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 등 신군부세력을 매섭게 몰아붙이고, 국정감사 때 수입 소 대량매립장을 찾아내 폭로하고, 멀리 스위스 제네바까지 가서 쌀시장 개방을 반대하며 삭발 단식을 하는 등 맹활약을 하다 보니 강성 이미지가 굳어졌다.

김영진 의원은 ‘현장 정치인’ 스타일이다. 옳다고 생각하면 온 몸을 던진다. 정치쟁점이나 현안을 잘 포착한다. 또한 언론의 ‘입맛’에 맞게 언행을 하기 때문에 언론으로부터 집중 조명을 받을 수밖에 없다. 때문에 그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정치 감각이 뛰어나다”고 평하고, 그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정치적 쇼맨십이 강하다”고 평하기도 한다.

지난 13대 국회 끝 무렵, 김대중 평민당 총재가 기자단담회에서 “김영진 의원은 13대 공천에서 가장 성공했다고 자부하고 있는 모범적인 의원”이라고 극찬을 한 적이 있는데, 그의 강성 이미지, 부정적인 이미지는 DJ의 평가로 상쇄되고도 남을 듯하다.

이와 관련, 김 의원은 “김대중 대통령이 반독재투쟁을 하면서 강성인물로 비춰졌으나, 실은 부드럽고 감성적인 분 이셨다”면서 “나도 불의를 보면 침묵하지 않지만 평소에는 온화한 성품의 소유자”라고 말했다.
(김영진 의원이 강진에서 국회의원에 선출되었던 15대 국회 때의 의정활동과 정치행적, 일화 등은 <15대 국회>편에서 소개할 예정임. 김 의원의 13대 국회 활동은 이미 소개했음. 강진일보 홈페이지 참조.)
/임영상 객원기자(정치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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