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명 / 완도 금일고등학교 교사

강진읍에서 나와 영랑 동상이 서있는 삼거리에서 강진공설운동장을 지나 2번 국도를 따라 장흥쪽으로 1km쯤 가다보면 작천․병영 방면으로 가는 829번 지방도로와 만난다.

이 길을 따라 까치내 고개 길을 오르다보면 고갯마루 조금 못 미쳐 왼쪽의 높은 바위 벼랑 사이로 좁은 길이 있고 그 안에 금곡사가 있다.

금곡사는 고려 초 밀봉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자그마한 절로 임진왜란과 6․25 때 전소되는 등 여러 차례 폐사의 위기를 겪었으나 1960년대 민가형태의 법당과 요사체를 지어 그 명맥을 이어오다 최근에 대웅전과 종각, 천불전, 명부전 등을 새로 지어 면모를 일신했다.

이 절의 대웅전 앞에 보물 제829호로 지정된 삼층석탑이 있다. 이 석탑은 기단중석의 전 후 측면에서 각기 1매씩의 판석이 유실된 상태였고 갑석에서도 부분적으로 파손되어 원형의 모습을 잃은 채 보존되어 왔었다.

그러던 중 1988년에 해체 복원공사를 실시하였는데 이때 몸돌 윗부분 사리공에서 세존진신사리 32과가 발견되어 이 탑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되었다. 사리장치는 도굴되고 없었다 한다.

높이가 5.4m에 달해 삼층석탑으로서는 큰 편이며, 그 형식면에서는 삼층석탑의 전형 양식을 따르면서도 단층의 기단부 구성이나 훌쩍 높은 1층 몸돌, 여러 개의 돌로 각 부분을 짜맞추는 구성 방식 등에서 약간 백제계 석탑의 분위기가 보이나, 조성연대는 고려초반기로 추정된다.

지면에 바로 각각 얇은 4장씩의 판석을 2단으로 조립한 중석을 올려놓았고, 우주나 탱주 등의 장식은 표시되지 않았다.

기단은 단층이며 네 기둥을 튼튼하게 세우고 그 사이에 면석을 끼워 만들었으며, 탑의 규모에 비해 얇은 편인 갑석에는 아래쪽을 한 단 들여 깎아 부연을 표현했고 위에는 넓적한 돌 두 장을 포개 얹어서 탑신 굄을 만들었다.

1층 지붕돌은 4개의 돌을 맞춰 만들었으며, 2층과 3층은 두 개의 돌로 만들어졌다. 지붕돌은 모두 비교적 두꺼운 편으로 처마 곡선이 밋밋하고 모서리에 풍경이 달렸던 작은 구멍이 있다. 지붕돌 받침은 통례(通例)와는 달리 1층에서는 6단이며, 2층은 5단, 3층은 4단으로 줄여 표현한 것이 특이하다.

다른 층에 비해 유난히 높은 1층 몸돌은 두 개의 석재를 포개어 만들었으며, 4면에는 모두 감실이 파여 있고, 이 감실들에 불상을 모셨었다고 한다. 또 기단이건 각 층의 몸돌이건 간에 우주나 탱주가 없이 모두 평면으로 처리되었고, 상륜부는 모두 없어졌다.

이 탑은 전반적으로 보아 기단 중석의 두께와 넓이가 얇고 좁아 안정감을 해치고는 있으나 단층 기단이면서 기단부나 탑신부 각 면에 모서리 기둥이 없이 편평하게 처리된 점이라든가 또는 층급 받침이 일률적이 아닌 6, 5, 4 단으로 된 점 등은 정형을 따르지 않고 있어 독특성을 보여준다.

마치 숨은 요새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주는 절 입구의 좁은 바위 벼랑길에는 방랑시인 김삿갓이 세상을 떠돌다 잠시 들러 경치에 반해 시를 남겼다는 곳으로 김삿갓의 시비가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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