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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강진정치사
[총선으로 본 강진정치사]제13대 국회(1988.5.30 ~ 1992.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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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04.25  13:0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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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J 진두지휘한 평민당, ‘황색돌풍’으로 제1야당 차지
정치신인 김영진, 여당중진 김식 꺾고 첫 국회 진출

   
김영진 의원
제13대 국회의원 선거는 1988년 4월 26일 실시됐다. 이번 총선은 87년 12월 16일 13대 대선이 치러진지 불과 4개월 만에 실시하는 선거였고, ‘1노 3김’의 사실상 두 번째 대결이었다.

87년 10월 29일 공포된 개정헌법(9차)에 따라 임기 5년의 <대통령 직선제>가 도입됐다. 국회의원 선거제도는 선거구당 1인을 선출하는 <소선거구제>로 17년 만에 바뀌었다. 의석수도 12대 국회보다 23명이 늘어난 299명(지역구 224명, 전국구 75명)으로 조정됐다.

집권당인 민주정의당(민정당)은 13대 총선에서 원내 과반의석을 차지하는데 실패, 의정사상 처음으로 여소야대 국회가 됐다. 민정당은 전체 의석 중 125명(지역구 87명, 전국구 38명)을 당선시켰다.

DJ가 선거전을 진두지휘한 평화민주당(평민당)은 당초 제2야당으로 출발했으나, 선거과정에서 이른바 ‘황색바람’(평민당 상징색)을 일으켜 YS의 통일민주당(민주당)을 제치고 제1야당으로 부상했다. 평민당은 지역구 54명과 전국구 16명 등 모두 70명을 당선시켰다.

반면 민주당은 60명(지역구 46명, 전국구 14명)을, JP의 신민주공화당(공화당)은 35명(지역구 27명, 전국구 8명)을 각각 당선시키는데 그쳤다. 한겨레민주당은 1명, 무소속은 8명이 당선됐다.

평민당의 ‘황색바람’은 호남에서 위력을 더해 ‘황색돌풍’으로 변했다. 평민당은 광주와 전남․북 등 호남지역(37명 중 36명)을 휩쓸었다. 평민당은 한화갑 후보가 후보등록무효가 되자, ‘총선 후 입당’을 조건으로 한겨레민주당 박형오 후보를 지원해 당선시켰다. 이로써 평민당은 사실상 호남지역 전 의석을 석권했다.

여소야대 국회가 된 13대 국회는 16년 만에 <국정감사제>를 부활했고, 5공 비리․광주특위 등을 구성해 전두환 전 대통령을 출석시켜 5․18광주민주화운동 등과 관련한 <청문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민정당은 국회가 야당주도로 운영되자, 1990년 1월22일 민주당․공화당과 전격적으로 3당 합당을 선언하고 거대여당인 민주자유당(민자당)으로 출범, 인위적으로 정치지형을 바꿔버렸다. 이 시기에 지방의회가 30년 만에 부활됐다. 1991년 3월26일에 기초 지방의원선거가, 6월20일에 광역 지방의원선거가 실시됐다.

 
거세게 불어 닥친 ‘황색돌풍’
여당후보 속수무책 


<강진․완도선거구 제13대 총선 입후보자 명단>

이름

(나이)

기호

주소

직업

학력 및 경력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김 식

(55)

1

 

강진군 칠량면 영동리 631-2

국회

의원

강진농고 졸, 육사11기 졸, 연세대․중앙대 경영대학원 수료, 육군소장 예편, 국회농수산위원장, 11,12대 의원(재선)

민 주

정의당

22,305

(25.74%)

김석영

(41)

2

강진군 병영면 성남리 124-3

정치인

연세대경영대학원 수료, 신민당 창당발기인, 통일민주당 창당발기인

통 일

민주당

1,352

(1.56%)

김영진

(42)

3

강진군 강진읍 남성리 61-7

강진제일신협 전 무

강진농고 졸, 전남대행정대학원 수료, 기독청년협의회(EYC)전국회장, 평민당 강진군 대선본부장

평 화

민주당

35,065

(40.47%)

이선동

(56)

4

완도군 완도읍 군내리 363

동일

식품

대표

광주고 졸, 고려대 법대 졸, 한국민주평화협의회 공동의장, 평민당 완도군대통령선거대책위원장

무소속

27,925

(32.23%)

※명단의 내용은 입후보 당시 선거관리위원회 기록임

13대 총선 실시에 앞서 강진의 선거구가 변경됐다. 강진은 12대 총선까지만 해도 전남 제9선거구(장흥․강진․영암․완도)였으나, 13대 총선부터는 장흥과 영암이 분리됐다. 그리고 완도군과 한 선거구가 됐다. 선거구 명칭도 <강진․완도 선거구>로 변경됐다.

강진․완도 선거구에서 13대 총선에 출마한 후보는 김식(金湜․55, 민정당) ․ 김석영(金錫英․41, 민주당) ․ 김영진(金泳鎭․42, 평민당) ․ 이선동(李先東․56, 무소속) 후보 등 모두 4명이었다. 김식․김석영․김영진 후보는 강진 출신이었고, 이선동 후보는 완도출신.

선거전은 3파전으로 진행됐다. 김식 후보의 3선 여부와 김영진 후보의 첫 국회 입성 여부, 이선동 후보의 완도지역 표 결집 여부에 관심이 쏠렸다. 특히 김영진 후보가 황색돌풍에 편승, 무난하게 당선될지 여부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그 이유는 노태우 대통령․전두환 전 대통령과 육사동기이며, 재선의원을 지낸 김식 후보가 조직이 탄탄한데 비해 김영진 후보의 경우 문동환 목사 등과 함께 ‘평민연’ 일원으로 평민당에 입당한 정치신인이었기 때문.

   
김대중 평민당 총재가 13대 총선 기간인 88년 4월 초 완도에서 열린 정당연설회에 참석, 김영진 후보 지원유세를 하고 있다.
이와 함께 유일한 완도출신 후보인 무소속 이선동 후보가 ‘완도당’ 기치를 내걸고 선전을 하고 있었던 것도 언론으로부터 ‘관심지역’으로 분류하게 만들었다.

지금은 폐지된 후보합동연설회 전경 한 토막을 통해 당시를 회상할 수 있다. 선거일 이틀 전인 4월 24일 강진 장날에 마지막 합동연설회가 열렸다. 이날 오후 2시 강진동초교 교정에는 5천여 명의 군민들이 참석했다.

맨 먼저 등단한 김석영 후보(기호2번)는 유권자들의 성향을 의식한 듯 민주당의 김영삼 총재에 대한 이야기는 한마디도 없이 오히려 평민당 김대중 총재와 사이가 가깝다면서 “제2의 김대중 총재가 되도록 표를 찍어달라”고 호소했다.

이어 김식 후보(기호1번)는 “대선과 총선은 그 성격이 다르다”면서 “지역 일꾼을 뽑는 총선에서는 지역개발에 앞장설 수 있는 여당후보를 지지해달라”고 부탁하고 강진에 전남도청 유치, 4년제 대학과 공단 유치 등을 공약했다.

이선동 후보(기호4번)는 “내가 평민당 공천을 받게 돼 있었는데 종교단체의 압력 때문에 탈락됐다”고 주장한 후 “김영진 후보가 사퇴하도록 유권자들이 압력을 가해달라”고 호소하자 평민당 지지자들의 야유가 쏟아졌다.

마지막으로 등단한 김영진 후보(기호 3번)는 “김대중 선생이 다시 대권에 도전할 수 있도록 평민당 후보에게 많은 표를 찍어 달라”고 부탁하면서 “지난 7년 동안 수많은 강진군민이 살기 어려워 강진을 떠났는데도 민정당이 살기 좋은 농촌을 건설했단 말이냐”고 김식 후보를 공격했다.

선거결과는 정치신인 김영진 후보의 첫 ‘여의도 입성’으로 마무리됐다. 김 후보는 유효투표수 8만6천647표의 40.47%인 3만5천65표를 득표했다. 2위는 2만7천925표(32.23%)를 얻은 이선동 후보가 차지했다.

김식 후보는 거세게 불어 닥친 ‘황색돌풍’을 차단하지 못하고 2만2천305표(25.74%)를 득표해 3위를 기록했다. 김석영 후보는 1천352표(1.56%)를 얻어 맨 꼴찌.
 
 
김영진의원 ‘농어민의 대변인’, ‘진짜 농정통’ 별칭
지역구 4번, 전국구 1번 등 5선 기록...종교활동이 정치적 기반이자 출발점 


김영진 의원은 강진군 도암면 항촌리에서 4남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호적상 1947년생이지만 실제는 1946년생. 김 의원의 어린 시절은 초가집도 아닌 움막집에서 생활했을 정도로 가정 형편이 어려웠다. 우체국 사환으로 학비를 벌어 강진농고를 졸업했을 정도.

젊은 시절 농협에서 10여 년간 근무한 적이 있는 김 의원은, 독실한 신앙심을 갖고 있는 기독교 장로출신 정치인이다. ‘5선 국회의원․농림부장관 김영진’이 있기까지는 종교 활동이 정치적 기반이었고 출발점이었다.

   
홍남순 변호사가 1989년 5월 26일 개최된 김영진 의원 저서 <충정작전과 광주항쟁>출판기념회에서 김대중 평민당 총재 등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축사를 하고 있다.
김 의원은 기장 강진읍교회 청년회장, 기장 광주전남 청년연합회장을 거쳐 기장 전국청년연합회장, 한국기독교청년협의회(EYC) 7대 회장 등 점차 활동영역을 넓혀가면서 지도력과 반독재 투쟁이력을 차곡차곡 쌓아갔다. 이 때 민주화운동으로 두 차례나 구속되기도 했다.

13대 총선 때 DJ에 의해 종교계 몫으로 평민당 후보로 국회의원이 된 것도 순전히 종교 활동을 통한 민주화운동, 농민운동이 계기가 됐다.

김 의원의 국회 상임위활동은 대부분 농수산위원회에서 했다. 지역구를 도시(광주 서구을)로 옮긴 이후 18대 국회에서는 교육과학기술위원회에서 활동했지만, 13대부터 16대 국회까지 줄곧 농수산위를 떠나지 않았다.

농고를 졸업하고 농협에서 근무했고, 국회 농림해양수산위원장과 농림부장관을 지낸데 이어, 국제농림어업의원연맹 회장도 역임했다. 그래서 그에게는 ‘농어민의 대변인’, ‘진짜 농정통’이라는 별칭이 영광스럽게 붙는다. 동료의원들이 “김 의원은 농(農)자 없이는 못사는 사람”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김 의원은 88년 국회 광주청문회 때 노무현 ․ 이해찬 의원 등과 함께 5․18광주민중항쟁 가해자들인 전두환 전 대통령과 민정당 정호용․박준병 의원 등을 매섭게 추궁해 ‘청문회 스타’로 떠올랐다. 하지만 90년 7월 ‘국회 명패투척사건’으로 곤경에 빠지기도 했다.

김 의원은 모두 5선을 했다. 고향인 강진에서 13,14,15대까지 내리 3선을 했고, 16대 때는 전국구 의원으로, 18대는 광주 서구을 선거구에서 당선돼 5선 의원이 됐다. 17대 때는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광주 서구을에서 출마했으나 ‘탄핵바람’에 휩쓸려 열린우리당 후보에게 낙선했다. 전적은 5승1패.

그는 19대 총선(4.11)에 출마, 6선을 한 후 국회의장에 도전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으나 민주통합당 공천에 탈락했다. 그는 공천 탈락에 반발해 무소속 출마를 적극 검토했으나 3월 19일 “연말 대선에 기여하겠다”며 전격 불출마를 선언했다.
(김영진 의원이 강진에서 국회의원에 선출되었던 14대 국회와 15대 국회 때의 의정활동과 정치행적, 일화 등은 <14대 국회>와 <15대 국회>편에서 소개할 예정임.)
/임영상 객원기자(정치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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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05 14: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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