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경모 1만 5천1백4표 득표  ‘초대 국회의원’당선
우익 계열 김윤식 좌익계열 차경모 경쟁 치열
차경모, 김정식 읍 동성리 같은 마을... 두 후보 집 불과 1백여 미터 지근거리 ‘혈투’

1948년 5월 10일 총선을 통해 구성된 대한민국 제헌국회는 같은 달 31일 오후 3시, 지금은 헐리고 없는 구 중앙청 중앙 홀에서 한국 의회정치의 시작을 알리는 역사적인 개원식을 가졌다.

당시 국회의원 정수는 200명이었지만, 그 직전 4․3사건이 일어나 제주 지역 2곳이 선거가 연기됨에 따라 198명으로 출발했다. 두 선거구는 이듬해 5월10일 선거가 실시됐다. 북한에도 의석 100석이 배정되었으나, 소련의 반대로 유엔 한국임시위원단이 활동할 수 없었고, 결국 남한에서만 총선이 실시됐다. 

제헌국회는 임기 2년이었지만, 건국과 정부수립에 필요한 여러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 헌법을 비롯한 정부수립과 관련된 각종 법률을 제정했다.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결정하고, 초대 대통령으로 이승만을 선출하는 등 정부수립의 골격을 다졌다.

제헌국회 선거 당시 전남은 29개 선거구에서 11개 정당․사회단체와 무소속 후보 등 모두 92명이 출마해 3.2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광주시, 영암군, 영광군 등 3개 선거구는 후보가 각각 1인이 등록, 무투표 당선됐다. 제헌국회도 목포시를 비롯한 전국 9군데에서 재․보선이 실시됐다. 제헌국회 선거는 1구 1인을 뽑는 소선거구제로 실시되었으며 강진은 단독 선거구로 치러졌다.

[치열했던 선거전]

처음 치러지는 보통선거여서 그런지 투표율이 높았다. 2008년 18대 총선까지 역대 선거사상 가장 높은 투표율을 기록한 선거가 바로 제헌국회 선거다. 제헌국회 선거는 95.5%의 투표율을 기록했고, 전남은 전국 투표율보다는 조금 낮은 94.4%를 기록했다.

전남 인구수(1946.8.30)는 2백94만여 명이었고, 선거인수 1백11만여 명, 투표자수 1백4만여 명이었다. 당시 강진군의 인구수는 10만3천2백20명. 최근(2011년 12월말) 인구수 4만1천5백99명 보다 6만1천6백21명이 더 많았다.

강진군선거구(전남 제17선거구)에서는 모두 4명이 초대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 입후보했다. 이들은 한국민주당 김윤식(金允植․47) 후보, 무소속 차경모(車庚模․57) 후보, 무소속 김정식(金正植․47) 후보, 대한독립촉성국민회 김용선(金容善․59) 후보 등이었다.

김윤식․차경모․김정식 후보는 강진읍 출신이었고, 김용선 후보는 병영면 출신이었다. 특히 차경모 후보와 김정식 후보는 같은 마을(동성리)에 살고 있었는데, 두 후보의 집은 불과 1백여 미터로 지근거리에 있었다.

중앙청 출판국장을 지낸 김윤식 후보는 일제치하 민족 저항시와 서정시로 울분을 달랬었고, 전라도 사투리를 훌륭한 시적언어로 승화시켰던 시인 ‘영랑(永郞) 김윤식 선생’이다. 

후보기호는 추첨에 의해 김윤식 후보가 1번, 차경모 후보가 2번, 김정식 후보가 3번, 김용선 후보가 4번을 배정받았다. 그러나 지금과 달리 당시의 후보기호는 아라비아 숫자가 아니라,Ⅰ․Ⅱ․Ⅲ 등 로마숫자와 비슷한 막대기로 표시했다.

막대기 기호는 해방 직후 전 국민의 80%에 이르던 문맹률 때문이었다. 지금처럼 정당별 의석수에 따라 아라비아숫자로 기호를 배정한 것은 1971년 선거법 개정 이후부터. 이전까지는 선거구별로 기호 추첨을 했기 때문에 같은 당이더라도 기호가 선거구별로 모두 달랐다.

후보는 4명뿐이었으나 선거전은 치열했다. 해방직후 좌우익싸움이 선거전까지 이어졌다. 사회혼란상이 극에 달했다. 좌익계열은 선거에 불참했으나 특정후보를 지지했다.

전남지역 13개 중․고교에서 남한 단독선거 반대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고, 목포․무안 등지에서는 무장괴한이 나타나 투표함을 탈취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광주와 진도에서는 통신망이 파괴되고 경찰지서가 습격을 받기도 했다. 강진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강진은 우익 계열의 김윤식 후보와 좌익계열의 차경모 후보간 싸움이 치열했다. 읍내에는 상대후보를 비방하는 유인물이 살포되곤 했다. 좌익청년들은 김윤식 후보의 집(영랑 생가) 대밭에 선거기간 뿐 아니라 선거후에도 여러 번 불을 질렀다.

김윤식 후보는 서울 친척이 빌려준 자가용 자동차를 타고 선거운동을 벌였다. 군민 대부분이 농민이었기 때문에 ‘자가용 자동차 선거운동’은 상대후보 측의 좋은 네거티브 선거운동거리였다. “자가용을 타고 다니는 부자를 농민대표로 할 수 없다”는 상대후보 측의 주장은 농민들로부터 호응을 얻었다. 

개표 결과, 차경모 후보가 39.04%인 1만 5천1백4표를 득표해 ‘초대 국회의원’이라는 영광을 차지했다. 2위는 예상을 깨고 대한독립촉성국민회 김용선 후보가 기록했다. 김 후보는 차 후보보다 2천6백75표가 적은 1만2천4백29표(17.47%)를 얻어 낙선했다.

3위는 7천4백50표(17.58%)를 득표한 무소속 김정식 후보가 차지했고, 꼴찌인 4위는 7천4백5표(17.47%)를 얻은 김윤식 후보가 기록했다.

 <강진선거구 제헌국회 출마자 명단>

[차경모의원 아들 다른의원 딸 짝사랑 권총자살 사연도...]

차경모 제헌의원(1891년생)은 서당에서 한문을 배웠던 게 학력의 전부였다. 그는 농사를 지으면서 양조장을 경영해 돈을 제법 모았다. 농회(農會) 서기로도 2년간 근무했었다. 농회란 일제 강점기에 농업 행정을 보조하는 단체로, 일제가 조선의 농업을 수탈하기 위해 만든 농민 조직이었다.

차 의원의 정당 활동은 다양했다. 해방직후 건국준비위원회(건준) 위원을 지내다 한독당 강진군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제헌국회 선거 때는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으며, 이후 대한노농당, 민주국민당 등의 당적을 갖고 의정활동을 했다.

차 의원과 관련된 여러 일들이 당시 신문과 국회 속기록 등에 남아있다. 그는 우리 국회 역사상 처음으로 의원직 사퇴서를 제출한 의원으로 기록돼 있다. 차 의원은 l950년 2월 24일 “신병 쇠약으로 인해 의원직을 완수하기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사임 청원서’를 제출했다. 본회의에서 무기명 투표 결과, 가 17대 부 117표로 부결돼 사퇴서는 수리되지 않았다.

차 의원은 ‘국회 프락치 사건’으로 49년 8월 14일 체포돼 4개월여 동안 구속되었다가 석방된 후에 사퇴서를 제출했었다. 이 사건은 1949년 4월, 이른바 '남로당 프락치(공작원)'로 제헌국회에 침투, 첩보공작을 한 혐의로 3차에 걸쳐 국회의원 15명을 체포 구속한 사건을 말한다.

13명은 기소돼 징역형을 살았지만, 차 의원과 김봉두 의원(전북 장수)은 기소되지 않고 무혐의로 풀려났다. 때문에 의원직 사퇴서 제출도 당국의 압력 때문이었다는 얘기가 나돌았고, 이 사건도 일부 내용을 조작하고 고문과 자백만으로 기소한 사건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에 앞서 차 의원은 49년 1월 13일 고려대 3학년에 재학 중이던 아들(24)을 잃기도 했다. 차 의원은 함께 옥살이를 했던 절친한 사이인 김봉두 의원의 딸(23․이화여대 2년)과 자신의 아들이 맞선을 보게 했다. 그 후, 차 의원의 아들은 김 의원의 딸을 짝사랑했고, 자신의 사랑을 받아주지 않자 권총으로 동반자살을 기도해 생을 마감했다.

차 의원은 2대 국회 선거에도 출마했으나, 8명중 950표로 7위를 기록하는 수모를 겪으며 재선에 실패했다. 차 의원은 초대 국회의원이라는 영예도 안았지만, 아들을 잃고 감옥살이도 하는 등 곡절이 많은 비운의 정치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