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곡사 앞 바위는 두 절벽이 마주보고 있어 쟁계암이란 이름이 붙었다.
‘양편에 바위 우뚝솟아 서로 다투는 줄 알았더니
물줄기 한가닥으로 흐르는 것을 보니 근심 사라지네’


“목표가 하나면 다툼이 다툼이 아니다.
군수와 국회의원의 관계도 금곡사 쟁계암 처럼
그 아래 한가닥으로 흐르는 시원한 물줄기 있어야”


지난 주말을 전후해 금곡사 벚꽃이 절정을 이뤘다.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 벚꽃을 구경하고 금곡사로 올라가다 보면 개울옆에 시비가 있다.

양쪽으로 우뚝 솟은 바위가 위풍당당하다. 바위 아래, 개울 옆에 있는 시비는 강진라이온스클럽이 지난 1990년 4월에 세운 것이다. 방랑시인 김삿갓이 금곡사에 와서 남긴 시를 일붕 서경보 스님이 글씨를 썼다.
雙岩竝起疑紛爭(쌍암병기의분쟁)一水中流解忿心(일수중류해분심)
시비 앞에는 한문을 해석한 글이 친절하게 쓰여져 있다.

‘양편에 바위 우뚝솟아 서로 다투는줄 알았더니 물줄기 한가닥으로 흐르는 것을 보니 근심사라지네’
인터넷을 보면 ‘두 바위가 마주 서서 싸우는 것 같으나, 중간에 개울이 흘러 분한 마음 풀어주네’라는 해석문도 보인다. 하지만 시의 앞뒤 문구나 전반적인 흐름으로 봐서 현재 시비앞에 있는 해석이 원문에 훨씬 충실해 보인다.

금곡사 앞 바위는 일명 쟁계암(爭鷄岩)이라고 해서 싸우는 닭 바위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두 바위가 마주보고 서 있는 모습이 서로 다투는 모양이다. 시의 의미는 닭 두 마리가 싸우며 네가 옳으니 내가 옳으니 분쟁을 하는 것 같아 그 모양을 걱정스럽게 생각했는데 계곡의 물줄기가 한가닥으로 흐르는 것을 보니 걱정이 사라진다는 뜻이다.

올 봄에 이 문구가 유달리 새로운 것은 강진이 막 화해와 소통을 강조하는 시대를 맞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는 갈등이 왜 존재하는지, 그 갈등은 왜 화해라는 수단을 통해 풀어야 하는지 말해주는 분위기가 있다.

우선 이번에 선출된 국회의원과 군수의 관계가 그렇다. 군수와 국회의원의 관계는 일정부분 경쟁관계가 될 수 밖에 없는 사이다. 똑같은 선출직이지만 그 역할이 다르다.

그러나 그 일이 결국 주민들과 연결되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단계에서 대립이 일어날 수도 있다. 그때 주변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은 걱정이 많아진다. 어느 장단에 춤을 출 것인지 걱정이 태산이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서로 마주보고 있는 국회의원과 군수가 지역발전이라는 큰 물줄기에 마음을 싣는 것이다. 김삿갓의 시에 따르면 그렇게 하면 두 사람의 갈등이 깊어지지 않고 이를 지켜보는 주변의 근심도 사라지게 된다. 쟁계암 아래 계곡수가 한 가닥으로 흐르듯이 말이다.

금곡사 보각 주지스님은 “아무리 추운 겨울을 겪어도 봄이 오면 꽃이 피듯이 세상의 갈등이 아무리 깊어도 시간이 지나면 풀어지는 법이다”며 “쟁계암은 그러한 갈등도 서로 긍정적인 목표가 있으면 의미있는 것이라는 것을 전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쟁계암 논리’는 갈등을 화합으로 푸는데 다양하게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군 집행부와 군의회의 대립도 그렇고, 단체와 단체의 갈등, 개인과 개인의 갈등, 기관과 기관의 대립도 모두 마찬가지다.
 
지역사회의 다양한 갈등과 대립이 결국 지역발전이라는 큰 줄기를 이룰 수 있다면 지역사회는 훨씬 부드러운 사회가 될 것이다. 그런 큰 물줄기가 없다면 인위적으로 만들면 된다. 나와 저 사람의 갈등 사이에는 지역발전이라는 큰 계곡수가 흐르고 있다고 믿게 되면 그 싸움이 그렇게 깊어질 이유가 없다.

지역사회에는 일정한 갈등이 있을 수 밖에 없다. 모든 지역이 마찬가지다. 그러나 갈등구조 사이에 한가지 긍정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우리 강진에는 금곡사 입구에 쟁계암(爭鷄岩)이란 바위가 있어 다행이다. 누군가 밉고, 누군가와 갈등을 겪고 있다면 금곡사 입구 쟁계암 아래로 가 보자. 요즘에는 땅속이 풀려 계곡으로 모여드는 물이 많아졌다. 한 가닥으로 흐르는 물소리가 청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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