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왕인역사 본격 발굴

영암 최대 관광상품으로 성장
일부학자들 “도선의 역사와 중복”

2년전 열린 왕인문화축제 행사에서 가장행렬단이 벚꽃이 화려하게 핀 거리를 행진하고 있다.
요즘 영암에서는 '2012 영암왕인문화축제'가 한창이다. 강진의 청자축제가 그렇듯이 영암에서 왕인문화축제는 가장 큰 행사이다. 강진에 고려청자가 있다면 영암에는 왕인박사가 있다고 묘사될 정도다.

왕인박사는 일본에서 유명 인사였지만 우리나라에는 공식적인 기록이 없다. 그래서 국내에서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일본에는 고대 사료인 ‘일본서기’와 ‘고사기’에 ‘백제 17대 아신왕 14년인 서기 405년 백제인 왕인박사가 논어와 천자문을 전했다’는 역사 기록이 있다.

그러다가 70년대 들어 사학자들과 향토사학자들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왕인의 고향이 영암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영암군 군서면 구림리가 왕인의 탄생지라는 것과 구림리 주변에 있는 ‘돌정자’가 왕인이 일본으로 건너갈 때 서호강으로 나가면서 동네를 뒤돌아보던 곳이라는 것.

왕인박사가 공부하던 곳으로 전해진 문산재에는 석축과 우물, 주춧돌, 오랜 기왓장이 나뒹굴고 있었고, 왕인이 종이를 만들었다는 지침바위도 현장에 있었다.

70년대 초반 구림리에 학자들을 중심으로 한 고증답사반이 찾아왔다. 이 답사반은 당시 영남대학교 총장이던 이선근 박사와 성균관대학원장 유홍렬박사, 고려대학교 조동필 교수, 서울농대 유달영교수 등 전국의 유명석학들이 망라됐다.

영암이 왕인박사의 출신지라는 것을 확신한 고증답사반은 같은 달에 곧바로 ‘사단법인 왕인박사현창협회’를 만들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75년 1월에는 전남도가 2억 원을 들여 왕인박사 유적지를 성역화하기로 결정했고, 76년 11월에는 구림마을 성기동에 왕인박사유허비가 제막돼 이곳이 왕인박사 탄생지라는 것을 전국에 공식화했다.

왕인박사 성역화사업은 성기동일대 5만평을 정화하면서 3년 동안 30억원을 투입해서 87년 9월 마무리 됐다. 당시 전남 도지사이자 현 왕인박사현창협회장인 전석홍씨의 전폭적인 지원이 컸다. 왕인박사 유적지는 이제 영암의 최대 문화적 자산이 됐다.

그러나 일부 역사학자들은 왕인의 역사에 대해 시원치 않은 반응을 보인다. 역사의 어느 기록에도 왕인이 영암출신이라는 내용이 없다는 것이다. 더욱이 왕인의 구림마을 탄생지 설화는 상당부분 영암 출신 도선선사의 그것과 중복되고 있어 왕인 현창사업이 역사를 왜곡했다는 주장도 편다.

그렇다고 왕인을 추모하는 영암사람들을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 아이템 개발 노력마저 없다면 농촌에는 아무런 축제도 열지 못할 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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