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군부 주도 5공 출범후 첫 총선
김식 후보, 유재희 후보 동반 당선

제11대 국회의원 선거는 12대 대선이 끝난 지 한 달 만인 1981년 3월 25일 실시됐다. 1979년 ‘10․26 사건’ 이후 11대 총선까지 1년 5개월은 짧은 기간이었지만,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큰 정치적 격변기였다.

이 기간 동안 대통령 선거 세 번(79.12.6, 80.8.27, 81.2.25), 8차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 한 번(80.10.22) 등 모두 네 번이나 선거가 실시됐다. 또한 현직 대통령이 시해되고 군사반란이 일어나 새로운 정치세력이 등장하는 등 크고 작은 사건과 정치적 조치 등이 연이어 일어났다.

전두환 정권은 헌법 개정에 이어 초헌법적인 기능을 발휘했던 ‘국가보위입법회의’를 통해 국회의원 선거법을 개정했다.

국회의원 임기를 4년(당초 6년)으로 단축하고, 1개 선거구에서 2명을 선출하는 중선거구제는 유지시켰다. <통일주체국민회의>를 폐지하고 <대통령선거인단>을 구성해 간선으로 7년 단임의 대통령을 선출토록 했다. <통일주체국민회의>의 국회의원 선출권(유신정우회)도 없어졌다. 그 대신 9대 국회 때 폐지됐던 전국구 제도를 다시 도입했다.

전국 선거구는 기존 77개에서 92개로 늘어났다. 의원은 지역구 의원 184명과 전국구 의원 92명 등 모두 276명을 뽑았다. 전남(광주 포함)의 선거구도 1개가 늘어 11개 선거구로 조정됐다. 의원정수는 22명.

선거 결과, 민주정의당(민정당)이 151석(지역구 90석, 전국구 61석)을 획득, 원내 안정세력을 구축했다. 민주한국당(민한당)은 81석(지역구 57석, 전국구 24석)을 획득했고, 한국국민당(국민당)은 25석(지역구 18석, 전국구 7석)을 얻었다. 이밖에 민주사회당, 민권당, 신정당은 각각 2석, 민주농민당과 안민당은 각각 1석, 무소속은 11석을 차지했다.

<전남 제9선거구(장흥․강진․영암․완도) 제11대 총선 입후보자명단>

이름

(나이)

기호

주소

직업

학력 및 경력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백정기

(51)

1

장흥군 장흥읍 건산리 734-3

회사원

육사 8기 졸, 육군 준장 예편, 삼성종합건설 이사

한 국

국민당

31,319

(16.63%)

유재희

(46)

2

영암군 금정면 안로리 910

상업

조선대 법대 졸, 전국웅변협회 이사장, 무역사 자격시험 합격

민 주

한국당

34,089

(18.1%)

이정채

(32)

3

서울시 동대문구

청량리동 35-1

상업

단국대 법대 2년 중퇴, 시사통신사 정치부기자, 10대 총선 입후보

원 일

민립당

6,035

(3.20%)

송춘호

(46)

4

완도군 완도읍 군내리 2구 675-2

상업

동국대 행정대학원 3학기 수료, 서울 대영학원장, 재경완도군향우회 부회장

신정당

10,709

(5.69%)

김윤봉

(39)

5

강진군 강진읍 동성리 329-2

무직

단국대 경영대학원 수료, 성신건재 경영

민권당

6,442

(3.42%)

김 식

(48)

6

강진군 칠량면 영동리 631

 

농업

강진농고 졸, 육사 11기 졸, 국방부 조달부 물자국장, 육군소장 예편

민 주

정의당

74,256

(39.43%)

이영권

(45)

7

장흥군 용산면 어산리 715

 

무직

조선대 법학과 졸, 광운공대 교수

무소속

25,449

(13.51%)

※명단의 내용은 입후보 당시 선거관리위원회 기록임

선거초반 김식 백정기 당선 전망
선거후반 장흥서 백정기 이영권 표분산
영암출신 유재희 당선

전남 제9선거구(장흥․강진․영암․완도)에서 입후보한 후보는 10대 총선 때와 같이 모두 7명이었다. 이 가운데 정당후보는 백정기(白正基․51, 한국국민당) ․ 유재희(柳在熙․46, 민주한국당) ․ 이정채(李正彩․32, 원일민립당) ․ 송춘호(宋春浩․46, 신정당) ․ 김윤봉(金潤奉․39, 민권당) ․ 김식(金湜․48, 민주정의당)후보 등 6명이었다. 무소속 후보는 이영권(李永權․45) 후보 1명뿐.

후보들은 4개 군에서 모두 출마했다. 백정기․이영권 후보는 장흥 출신이었고, 김식․김윤봉 후보는 강진 출신, 송춘호․이정채 후보는 완도 출신, 그리고 유재희 후보는 영암 출신이었다. 

선거전은 여야 대결 및 소지역 대결 양상으로 진행됐다. 선거쟁점은 여야 간 공명선거 논쟁, 여당의 안정론과 야당의 견제론, 관권선거 시비 등이었고, 민한당과 국민당 등 야당은 선명성 경쟁을 벌였다.

선거운동 초반에는 5공화국 주도세력인 김식 후보(육사 11기, 소장 예편)와 백정기 후보(육사 8기, 준장 예편)의 동반 당선이 점쳐지면서, 누가 금메달로 획득하느냐가 관심사였다.

그러나 선거운동이 중반에 들어서면서 4파전으로 흘렀다.  전국웅변협회 이사장인 유재희 민한당 후보와 광운대 교수인 이영권 후보가 야성향 표와 지역표를 확보하면서 맹추격, 4명의 후보가 치열하게 혼전을 벌였다.

선거 결과, 김식 후보와 유재희 후보가 동반 당선됐다. 김식 후보는 유효 투표수(18만8천299표)의 39.43%인 7만4천256표를 얻어 1위를 차지했고, 유재희 후보는 3만4천89표(18.1%)를 얻어 2위로 금배지를 달았다. 백정기 후보는 2위 보다 2천770표가 적은 3만1천319표를 득표해 3위에 그쳤다. 무소속으로 출마한 이영권 후보는 4위로 낙선했지만 2만5천449표(13.51%)를 얻어 성장가능성을 보여줬다.

이밖에 송춘호 후보는 1만709표(5.69%)를, 김윤봉 후보는 6천442표(3.42%)를, 이정채 후보는 6천35표(3.20%)를 각각 얻었다. 장흥은 백정기 후보와 이영권 후보가 모두 5만6천700여 표를 득표했으나, 한 후보에게 표가 집중되지 않아 의원을 배출하지 못했다.

 
김식, 5공출범 주역 여당서 요직 두루맡아
유재희, 중소기업 보호 육성에 큰 역할
 


민정당 노태우 대표위원이 1985년 3월 12일 광주를 방문, 신양파크호텔에서 열린 민정당 전남지부 환영리셉션에 참석해 당직자 및 지구당 위원장들과 함께 건배하며 환담하고 있다. (오른쪽 세 번째가 김식 전남도지부 위원장)
김식 의원(1933.2 ~ )은 강진군 칠량면 영동리가 고향이다. 강진농고를 거쳐 육군사관학교를 11기로 졸업했다. 육사 11기는 4년제 정규 사관학교로 재개교한 뒤 입학한 첫 기수였다.

김 의원은 6․25전쟁 중인 1951년 10월 육사에 들어가 55년 10월 동기 1백56명과 함께 소위로 임관, 군 생활을 시작했다.

김 의원의 육사 동기생들은 5․16군사정변 이후 ‘박정희 시대’가 꽃피울 때 상당수가 권력주변에서 권력의 생리를 지켜보고 학습했던 ‘정치군인’들이었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을 비롯 김복동․권익현․정호용 전 의원 등 이름만대면 알 수 있는 인물들이 많다.

김식 의원은 주로 군수분야에서 일했다. 대전군수창장과 병참학교장을 지낸데 이어 국방부 물자조달국장을 역임하다 소장으로 예편,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5공화국 출범의 핵심세력이었던 김 의원은, 11대 총선을 통해 국회의원이 되자마자 민정당 전남도지부 위원장을 맡았다.

또한 국회 농수산위원장을 11대와 12대 국회에 걸쳐 5년간이나 맡았고, 13대 총선에 낙선한 후에는 농림수산부 장관과 한국전력 이사장도 지냈다. 11대 총선부터 15대 총선까지 5번 출마해 2승 3패를 기록. 13대부터 소선거구제로 바뀌고 재야인사 김대중 선생의 정치전면 등장으로 ‘황색바람’이 불면서 내리 세 번 낙선했다.

김 의원은 지난 2010년 1월 부인(정영자 여사)과 사별하는 아픔을 겪었다.  자녀는 2남 1녀. 큰 아들(정원)은 사업을 하고 있고, 둘째 아들(정욱)은 현재 중앙일보 정치부 차장으로 야당을 출입하고 있다.

사위는 미국의 대표적 한반도․아시아 전문가로 유명한 빅터 차 조지타운대 교수. 빅터 차 교수는 지난 2007년까지 4년간 미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아시아담당국장과 6자회담 미국측 차석대표를 지내기도 했다.

유재희 의원(1935.12 ~ )은 영암군 금정면 안로리에서 5남1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호는 유정(裕淨).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6년 동안 농사를 짓다가 21세 때 고교(조대부고)에 진학했다.

조선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상경, 서울 정릉에서 고시공부를 하다가 중단하고 종로5가에서 의약품 수입업을 해 나름대로 재력을 쌓았다. 전국웅변협회 이사장과 유진종합개발(주) 사장, 득원건설 회장 등을 지냈다.

유 의원은 사업을 하면서도 정치권과 활발하게 교류를 해온 덕분에, 12대1의 경쟁을 뚫고 민한당 공천을 받아 11대 총선에 출마해 금배지를 달았다. 12대 총선 때 재선에 도전했으나 낙선. 그 후 인천에서 사업에 전념하다 15대 총선 때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로 재도전했으나 또다시 실패했다. 

유재희 의원은 이영권 전 의원과는 서울에서 고시공부를 함께했던 친구 사이. 그러나 11대 총선 이후 서로 교류하지 않고 있다. 두 사람은 11대 총선 출마 전에 만나 “당 공천을 받지 못한 사람은 불출마 한다”고 약속했는데, 이영권 전 의원이 무소속으로 11대에 출마해 버린 것. 결과는 유재희 의원의 승리. 12대 총선 때도 맞붙었다. 이때는 이영권 의원이 이겼다. 두 친구간의 전적은 1승1패.

유 의원은 주로 국회 상공위원회에서 의정활동을 했다. 특히 중소기업 진흥을 위한 활동에 주력했다. 그는 상임위 야당 간사 시절, 중소기업을 보호 육성하는데 큰 역할을 하는 <중소기업 진흥법>초안을 만드는 등 법제정을 주도했다. 의원시절 강원도 국영광업소인 함백탄광에 위장 잠입해 광업소비리를 적발, 시정시키기도 했다.

하이마트와 고려시멘트를 인수한 유진그룹의 유재필 명예회장이 유 의원의 큰형이고, 유재민 동강대총장과 유재연 동신대 관광일본어과 교수는 동생들이다. 부인 강영자 여사와 2남1녀를 둔 유 의원은 현재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서 살고 있다.
(재선의원인 김식 의원의 12대 국회 때 정치행적이나 일화 등은 <12대 국회>편에서 소개할 예정임)
/임영상 객원기자(정치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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