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패밭이 쑥대밭... 인공종패 뿌려봤지만 ‘허사’

어민들이 칠량 봉황리 앞 죽도인근에서 쏙이란 해산물을 잡고 있다. 이곳은 예전에 바지락이 많이 서식하는 곳이였으나 지금은 한톨도 나오지 않고 있다.
종패밭이 쑥대밭... 인공종패 뿌려봤지만 ‘허사’
바지락 파던 어민들 해남 영암으로 밭일하러다녀


매일같이 바지락 캐기에 바빴던 주민들은 요즘 해남이나 영암등으로 상당수 밭일을 하러다니고 있다. 바지락이 사라지면서 일감도 사라지고 수익도 없어졌기 때문이다.

봉황마을의 수백년 생활 구조가 끝나고 있는 상황이었다. 다른 어촌계 주민들도 마찬가지였다. 요즘에는 다행히 선거운동원 일자리가 있어서 젊은 축에 들어간 사람들은 그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한 주민은 “바다에 나가 바닷일을 해야할 사람들이 해남이나 영암으로 건너가 밭일을 해야하는 마음은 어민들이 아니면 모른다”고 한숨지었다.

강진만에서 바지락이 사라진 것은 말 그대로 씨가 말랐기 때문이었다. 죽도 뒤쪽에는 아주 오래전부터 30㏊에 걸쳐 천연 종패(種貝) 서식처가 형성됐다. 바지락의 종자가 집단을 이루며 서식했던 곳이다.

어민들은 6~7월 사이에 이곳으로 몰려들어 종패를 파다가 마을앞 자신의 어장에 뿌렸다. 그러면 3년후가 되면 성패가 되고 그것을 수확해 팔았던 것이다.

종패 채취철이면 이 일대가 사람들로 불야성을 이뤘다. 마량앞바다에서는 해양경찰이 강진만 입구를 막았다. 다른 지역 어민들이 몰래 들어와 종패를 채취해 가면 싸움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죽도 종패가 좋다는 소문이 퍼져 완도, 해남, 장흥에서 어민들이 몰려 들었다. 그렇게 좋은 종패밭이였다.

바닷물이 좀 더 빠져나가자 죽도 뒤편에 잔등이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종패밭이다. 종패밭은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었다. 물이 빠져나갈수록 그 모습이 확연히 드러났다. 다시 배를 탔다. 배가 종패밭에 닿았다. 가우도 뒤쪽에서부터 시작된 종패밭은 죽도 뒤편을 지나 북쪽으로 긴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종패밭이 시커먼 갯벌로 완전히 뒤덮혀 있었다. 원래 종패밭은 뻘속에 형성된 것일까.
“3년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모래가 80%, 갯뻘이 20%되는 곳이였습니다. 모래가 많아서 발이 빠지지 않았어요. 그래야 종패가 숨을 쉬며 삽니다. 그런데 이렇게 완전히 썩은 뻘이 뒤덮었습니다. 종패가 한톨도 나오지 않습니다”

동행한 김종섭 강진군수협조합장은 종패장이 완전히 초토화됐다고 했다. 쓰나미가 한 도시를 삼켜버린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혀를 찼다. 취재진은 종패장 중심 지점까지 걸어가 보려던 시도를 포기해야 했다. 갯벌이 워낙 깊어서 허벅지까지 차올랐기 때문이다. 5년전까지만 해도 이곳이 사람이 뛰어다닐 정도로 모래가 많았다는 말이 실감나지 않을 정도였다.

이곳에서 종패가 생산되지 않으면서 강진만의 바지락 생산체계는 완전히 마비됐다. 종패생산이라는 핵심기능이 중지되면서 원료공급 체계가 끊긴 것이다. 어민들은 이를 두고 씨나락이 없으면 못자리를 할 수 없고, 못자리를 못하면 벼를 심을수 없다는 것에 비교해 설명했다.

어민들은 비상대처 수단으로 종패를 외지에서 사들여와 뿌렸다. 충청도와 전라북도, 울산광역시에서도 종패를 사왔다. 그러나 허사였다. 다른 바다에서 태어난 종패들이 강진만에 적응을 하지 못했다. 3년후 성패가 되어야 할 바지락들이 중간에 빈껍질만 남기고 썩어 버렸다.

어민들은 요즘에 완전히 손을 놔버렸다.
봉황마을 황의학(65)씨는 “어민들은 바지락이 큰 농사인데 이렇게 갑자기 사라진 것은 꿈에도 생각못한 일이다”며 “하루 빨리 원인을 알아내서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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