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명 / 완도금일고등학교 교사

선의 아름다움과 섬세하고 세련된 문양, 그리고 인간이 이루어 낼 수 있는 최고의 경지에 도달한 신비로운 색깔의 완벽한 조화로 한국 문화 사상 그 예술적 가치를 널리 인정받고 있는 고려청자는 강진을 대표하는 이미지이다. 그러므로 강진의 문화유적의 대표선수도 마땅히 사적 제68호로 지정된 고려청자 도요지가 되어야 한다.

“천하에서 제일 귀하고 값진 것”, “누가 나에게 신에 이르는 길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고려청자를 통해서라고 대답할 것” 등 다양한 찬탄 속에 한국 문화의 진수로써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고려청자에 대한 인식은 비단 도예 전문가나 미술사가들 뿐만 아니라 어느 정도 우리 문화에 대해 관심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지극히 일반화된 상식이기도 하다. 탯줄을 묻은 곳은 아니지만 어쩌다보니 인근 장흥 땅에 삶터를 잡고 살아가고 있는 필자는 초기 지방자치시대에 ‘청자문화제’를 열어 지역 이미지를 확장시키던 강진이 엄청 부러웠던 적이 있다.
 
비슷한 시기 유홍준 선생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통해 사람들에게 강진이 다산 정약용 선생의 유배지로 더 잘 알려지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최근의 일일 뿐이다. 고려청자가 천년이 지난 오늘날의 우리들에게까지 그 신비스러운 아름다움과 예술적 감각을 공감하게 하는 것은 그 속에 분명 한국인의 가슴속에 영원히 남아 있는 고유의 정서가 반영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고려청자를 강진 문화의 대표선수로 인정하는 데 주저함은 없지만 그 아름다움을 읽어내는 눈이 필자에겐 없다. 그래서 아무래도 필자의 생계 밑천이 되는 지리학의 관점을 빌려 고려청자에 대한 일반적인 상식과 이해의 수준을 벗어나 신비로써가 아닌 역사적 사실로써 강진의 청자 문화를 보다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 ‘고려청자는 과연 어떠한 배경과 이유 때문에 강진 땅에서 그처럼 발달할 수 있었을까?’, ‘그 시대에 왜 강진에서만 그것이 가능하였을까?’라는 역사·지리적 배경에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다.

강진의 고려청자 유적은 한국 청자 문화의 메카라고 불려지는 데 그 이유는 첫째, 이 지역의 청자가 다른 지역의 것에 비하여 질적으로, 기술적으로, 또는 조형적으로 뛰어나 현재 고려청자 중에서 국보급으로 지정된 것의 대부분이 강진 도요지에서 제작된 것으로 믿어지고 있다는 점과, 둘째, 강진의 청자 도요지는 우선 청자 발달의 발생에서부터 시작하여 청자의 세련기, 절정기, 그리고 청자가 대량 생산되어 일반화되고 조선 시대 초기의 분청사기와 백자로 전환되기까지의 전 과정을 보여주는 유적이면서도 다양한 고려청자의 제작 기법과 발달 유형을 포괄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그렇다면 고려청자의 발전은 당시의 강진 지역과 전라도의 역사 발전과는 어떠한 연관성을 맺고 있는지를 중심으로 앞으로 세 차례로 나누어 ‘강진 고려청자 요지의 분포 특색’, ‘바닷길과 고대 강진의 역사 문화적 위치’, ‘강진 청자 도요지의 지리적 성격’ 등을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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