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천 평기리 출신 윤순탄 윤인석씨형제‘춘향방’최고인기

가장 맛있고, 깨끗하고, 가장 조선적인 음식 정평
윤순탄씨 형제 동경에서 운수업 대 성공후 조선요리점 창업
1916년 경성 한정식 문화 강진유입… 30년대들어 크게 꽃피운듯

1930년대 후반 한 일간지에 실린 경성의 조선요리점 동명관 광고. 이 무렵 신문을 보면 조선요리집 광고가 아주 많다.
강진 한정식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는 여러 가지가 있다. 가장 널리 알려진게 1916년 사이토 마코토 조선총독이 대구 청자요지를 구경하기 위해 강진지역을 찾았을 때 강진 유지들이 경성의 궁중요리사들을 초빙했는데, 그때부터 강진한정식이 유명했다는 것이다. 

지금이야 냉장고가 있어서 필요한 음식재료를 사철 사용하지만, 당시에는 그런 시설이 없기 때문에 고급 한정식상을 차리기 위해서는 1년 정도를 준비했다고 한다. 그래야 사철 나오는 식재료를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강진유지들이 사이토 총독을 대접하기 위해 궁중요리사들을 불러 몇 달씩 먹이고 재우며 음식을 준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이토 총독의 음식상을 차리는 비용도 만만치 않았겠지만 요리사들의 숙식비용도 엄청났을 것으로 보인다.

한마디로 그런 일은 대단한 갑부들이 아니면 감히 생각할 수 없는 일이였다. 그때 일을 김충식씨와 차종채씨, 유재의씨등이 도맡아 했던 것으로 전해 온다. 김충식씨는 사이토총독을 위해 여관을 새로 지어 잠을 재웠다는 말도 있다.

아무튼 사이토 총독이 대접을 잘 받고 올라간 후 강진사람들의 숙원사업이였던 강진세무서 유치사업과 강진읍승격 등이 순조롭게 진행됐다.

강진 한정식은 그 일을 계기로 1920년대로 접어들면서 이미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기 시작했던 것으로 보인다. 1938년 8월 27일자 동아일보에는 동경특파원 발로 재미있는 기사가 있다.

동경의 춘향방이란 조선요리점이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데, 이 사람들의 고향이 강진군 작천면 평기리라는 것이다. 신문은 춘향방이 조선요리점을 재패했다고 소개하고 있다.

신문에 따르면 당시 동경시내 각처에는 이름있는 조선요리점(한정식집)이 삼십팔개소나 있었다. 아마도 일제강점기 이후 조선을 왕래하는 일인들이 많아지면서 직접 일본으로 건너가 조선요리점을 내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 많은 조선요리집 중에서 가장 인기있는 곳이 춘향방이라는 요리집이였다. 춘향방은 경교구항일정이란 동경중심부 행정구역에 있었는데 설비(인테리어)가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조선적이고, 요리가 맛이 좋은 것은 물론, 서비스도 최고여서 제일특색있는 곳으로 주목받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춘향방을 경영하는 주인은 동경에서도 유명한 합자회자인 김택조자동차부의 윤순탄 윤인석씨 형제였다. 그러니까 화물자동차 회사를 경영하면서 한정식집을 운영했던 것이다.

화물자동차 회사는 꽤 컸던 것으로 보인다. 작천 평기리 출신인 이들은 일찍이 동경으로 건너와 운수업에 투신해 트럭이 30대나 되고 자가용 차고와 전화까지 겸비해서 업계에서 신용이 대단히 높다고 신문은 소개하고 있다. 일본은 윤인석씨가 먼저가서 자리를 잡고, 이후 윤순탄씨가 건너가 힘을 보탰다.

이들이 어떻게 해서 조선요리점을 시작했는지 정확히 알수는 없다. 그러나 김택조씨와 윤인석씨가 작천 평기리에서 살다가 동경으로 갔다고 하니까, 강진에서 생활할 때 높은 한정식 문화를 섭렵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동경으로 건너가 운수업을 통해 큰 돈을 벌게 되자 조선요리점을 시작했고, 그것도 가장 화려하고 맛있는 ‘춘향방’을 운영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처럼 강진한정식은 이미 1930년대에 국제시장에서 인정받을 정도로 높은 수준을 자랑하고 있었다. 강진한정식의 역사와 전통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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