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재선생 친필... 당시 강진사회 자세히 기록

강재 박기현 선생의 증손인 박병채 선생이 금릉읍지(金陵邑誌) 필사본을 최근 강진군에 기증했다. 금릉은 조선시대 강진의 옛 이름이었다. 금릉읍지는 1809년에 처음 나온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원본의 존재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번에 군에 기증된 금릉읍지 필사본은 1890년대를 전후해 강재 박기현 선생이 옮겨 적은 것으로 보인다. 또 원본을 그대로 옮겼는지 아니면 필사를 할 당시의 상황을 대입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박병채 선생이 기증한 금릉읍지에 따르면 당시 강진에는 8천1백88호가 있었으며 인구는 2만7천70명이었다. 가구당 평균 인구수는 3.3명이었다. 지금은 가구당 평균 인구수가 2.1명이다. 성별로는 남자가 1만4천914명이었고, 여자가 1만2천376명이라고 적고 있다. 남자가 여자보다 2천300명 정도 많은 구조다. 요즘(2월말 기준)에는 여자가 남자보다 1천920명 많다.
 
이밖에도 금릉읍지에는 병영성내에 軍器가 무엇무엇이 있고, 병영성내에 시장이 있다는 등 병영성과 관련된 여러 가지 기록을 포함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 필사본은 원본을 그대로 옮겨적은게 아니라 자신이 거주하고 있던 병영지역의 내용을 보다 풍부하게 해서 적은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박병채 선생은 “몇차례 분실될 뻔 했던 것을 어렵게 보관하다가 이번에 군에 기증하게 된것”이라며 “강진의 소중한 역사자료로 활용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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