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이나 정치는 사람이 하는 것, 사람 바꿔야 정당개혁”

지난해 초 19대 총선 공천심사를 앞두고 민주당 의원들이 이런저런 비리에 연루돼 시끄럽자 ‘저승사자 박재승’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한 보수신문은 민주당의 공천싸움에 대해 ‘박재승도 울고 갈 민주당’이라는 제목을 달며 민주당을 비아냥 거렸다. 박재승 전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이 민주당 공천심사위원장을 맡은게 2008년 2월이다. 벌써 5년이란 세월이 지났다. 그러나 난세는 지금도 박재승을 그리워 한다. 한국정치가 변하지 않았다는 반증이다. 아니 악화일로다. 그의 말은 한없이 부드럽다. 맑은 눈동자는 73세의 나이를 마냥 속절없게 한다. 고향신문이 생일을 맞았다고 변명하며 어렵게 인터뷰를 성사시켰다.         /편집자 주.

민주당은 정권교체 국민여망 팽개친당
안철수의원, 정권교체 도움되는 정치하길

▷요즘 근황은 어떠십니까
“비교적 한가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이제 건강에 좀 유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운신의 폭을 줄이고 가벼운 운동을 자주 하고 있습니다”

▷고향인 성전 오산마을에는 주로 어느때 오시는지요
“명절에 성묘를 하러 옵니다. 4월과 10월에 시제 모시러 오고요, 1년에 서너번 오는 셈이지요. 앞으로는 좀 더 자주 와서 쉬어 가기도 할까 하는데 마음대로 될지 모르겠습니다”

▷잠깐 정치 이야기 좀 하겠습니다. 요즘 민주당이 개혁되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민주당이 어떤 형태로 개혁되어야 합니까.
“정당의 개혁이니 정치쇄신이니 하는 것은 따지고 보면 인적개혁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지요. 정당이나 정치는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니까요. 대선기간동안 당 안팎에서 인적쇄신요구가 그렇게도 거셌는데 민주당은 눈감아 버렸어요. 어떤 점이 문제인지 그들이 잘 알고 있을 겁니다. 그런데도 못하고 말았어요. 더 이상 할 말이 없네요”

▷안철수 전서울대교수가 무소속으로 국회에 진출했습니다. 안철수 의원이 새로 당을 만들어야 할까요. 아니면 민주당에 입당해 힘을 합쳐야 할까요.
“안철수의원이 국회에 진출했으니 위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겠지요. 이는 그가 결정할 문제입니다. 어떤 경우든 어느 길이 정권교체에 도움이 될 것인가를 두고 판단해야할 문제이지요”

▷안철수 의원이 그런 판단을 하기가 어렵지 않겠습니까
“매우 어려운 문제입니다. 안철수 의원의 최근의 행보를 보면 여전히 민주당의 계파 다툼과 패권주의를 문제 삼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이 개선되지 않으면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가 없다고 보고 있는 것이지요. 고민이 많을 것입니다”

▷지난 대선때 정권교체에 왜 실패 했을까요. 민주당이 반성도 한다고 하고 반성한다면서 자기끼리 싸움도 하고 그러더군요.
“참 아쉬운 점이 많습니다. 저는 선거 전에 민주당 하는 것을 보고 너무 한가한 생각들을 하고 있다고 한탄했습니다. 저렇게 하다가는 자칫 질 수 밖에 없다고 말하곤 했지만 그들은 생각이 달랐던 것 같습니다. 선거 전략은 크게 나눈다면 표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전략과 표를 잃지 않을 전략으로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위 두 개가 똑같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민주당은 이른바 후보 단일화에 성공하기만 한다면 대통령 선거는 다 되는 것처럼 생각하고 모든 힘을 거기에만 쏟아 붓는 모양새였어요. 그러는 사이 새누리당은 정책프로모션에 온 힘을 기울였고 그 결과 복지정책의 원조당이어야 할 민주당은 상대당의 홍보에 파묻혀 버리고 말았습니다. 완전히 뒤바뀌어버린 것입니다. 거기다가 계파갈등, 패권주의 잡음이 끊이지 않았고 지금도 그대로입니다. 있어야할 표가 도망가는 형국을 자초한 것입니다. 그렇게도 바라는 정권 교체라는 국민의 여망을 팽개쳐버린 것입니다. 그런데도 책임지는 인사가 하나도 없습니다”

북을 포용하고 용서하며 협상테이블에
차분하게 끌어 들어야 평화통일 가능

▷남북관계가 극도의 경색국면입니다. 어떻게 풀어야 합니까.
“대통령은 적어도 헌법을 집무실에 펼쳐놓고 꼼꼼히 음미하면서 보아야 합니다. 헌법은 그 전문에서 평화통일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전쟁은 하지 말라는 것이지요. 전쟁해서 이겨본들 그 상처는 어떻게 할 것이냐는 것이지요. 6.25의 쓰라림에서 이미 다 본것 아닌가요. 저 어리디 어린 김정은의 말에 일희일비만 하고 있으면 안됩니다. 우리는 큰 집 어른답게 북을 포용하고 용서하는 마음으로 협상테이블에 끌어 들여야 합니다.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그렇게 해서 느리지만 그래도 통일을 향해 한발 한발 나아가야 합니다. 2차 대전 후 분단된 국가 중 대한민국만이 유일하게 분단된 상태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분단 그 자체가 창피스러운 분단이었습니다. 독일은 전범국가였지만 우리는 아무런 잘못도 없이 이른바 강대국들의 이해에 따라 우리의 의사와는 아무 상관도 없이 분단된 것입니다. 경제적인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나라의 체면을 생각해야 합니다”

소통은 가치를 공유하기위한 과정
박대통령, 일방적 통보를 소통으로 혼동
국민들에게 마음의 상처 주지 말아야

▷박근혜 대통령 취임 후 벌써 60일이 넘었습니다. 박대통령의 국정운영 방식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대통령은 최소한 국가란 무엇인가, 무엇 때문에 인간은 국가라는 것을 만들어 살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국가라는 것이 없다면 힘 있는 자가 맘대로 하는 사회가 돼버립니다. 몸이 불편하거나 경제적 약자이거나 하면 살 수 없는 사회가 돼버립니다. 그래서 약자도 편하게,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하기 위하여 만든 것이 국가 입니다. 대통령은 주인인 국민으로부터 국가경영권을 위임받아 이를 경영하고 있고 그 경영의 총수일 따름입니다. 그런데 대통령 중에는 이런 원리를 모르고 마치 자기가 국가의 주인인 것처럼 국민을 억누르고, 속이고, 심지어는 자기 지위를 이용하여 사익까지 챙기려하는 대통령도 있습니다. 안되는 것이지요. 대통령은 국민 개개인을 주인으로 모셔야 합니다. 적어도 국민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하려면 대통령이 어떤 정책을 수행하려할 때 더러는 논란거리가 될 수 있고, 타협이 잘 안 될 경우가 생기게 되는데 이 때 대통령은 무조건 밀어 붙일 것이 아니라, 국민과 이른바 소통을 하여야 합니다. 소통이라는 것은 통고가 아닙니다. 상대방에게 나 이것 합니다 하고 알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소통은 가치를 공유하기위한 과정입니다. 대통령이 생각하고 있는 가치를 국민이 수긍하게 하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일방통행 식은 안됩니다”

강진지역 6.25 피해 상처치유 노력필요
고향에 오면 늘 어머니품에 안기는 기분

▷고향에 오시면 어떤 점이 가장 좋으신가요. 또 이것은 개선해야겠다는게 있으면 말씀해 주십시오.
“부모님은 안계시지만 꼭 어떤 품에 안기는 듯 아늑함을 느끼곤 합니다. 제가 다녔던 수양초등학교는 폐교되어 그 자리가 지금은 농협 창고가 돼있는 것 같아 서운하기 짝이 없습니다. 모교 성전중학교는 그런대로 건재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하교길에 자운영꽃밭에서 뒹굴던 기억 등이 아롱거립니다”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 위원회에서 활동하셨습니다. 강진에도 6.25 당시 민간인 희생자들이 많은데 아무런 명예회복활동이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할까요.
“강진에도 뼈아픈 사건들, 너무나 끔찍스러운 사건이 많았습니다. 제주 4.3 사건 및 희생자 명예 회복에 관한 법률은 김대중 대통령 때 제정된 법률입니다. 제가 그 법에 따라 제주 4.3사건 희생자 심사위원장 직에 있습니다. 진상조사에서 나타난 사실들을 보면 너무나 끔찍스러운 사건이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제주 4.3 사건을 국가가 저지른 불법행위로 규정하고 국민 앞에 사과했습니다. 강진에도 제주 4.3 보다는 규모는 작지만 끔찍한 일들이 있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 불행한 사건들이 일어난 배경이 지역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너무 끔찍스러운 일들입니다. 그런데 사건의 경위 등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명예를 회복해 달라고 주장하기가 어려워 망설이는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도 언젠가는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랫동안 강직한 판사로 명성을 날리셨습니다. 정의로운 사회는  어떤 사회입니까.또 정의로운 사회는 어떻게 만들어 지는 것입니까.
“강직한 판사라는 말을 들을 때 마다 부끄럽습니다. 박정희 정권시절, 특히 유신시절에 강직했다고 해 봐야 돌이켜 보면 사실은 부끄러운 점이 더 많습니다. 정의로운 사회란 평등사회를 말한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적 신분이나 경제력 등에 상관없이 평등한 대우를 받는 사회가 되면 억울한 사람이 덜 해 집니다. 그런 사회가 정의로운 사회에 가까운 사회인 것입니다”

▷2008년 초 통합민주당 공천심사위원장 당시 좋은 국회의원 후보를 공천하기 위해 여러가지 벽과 싸우셨습니다. 지금 다시 민주당의 공천심사위원장이 되시면 어떻게 하실것 같습니까. 
“다시 공천심사 위원장이 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다만 무슨 일을 하든 사심을 버리면 50점 이상은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대담= 주희춘 편집국장>


□박재승 변호사 약력

-1939년 성전면 오산마을 출생
-성전수양초등, 성전중학교 졸업
-광주고등학교 7회 졸업
-전남대학교, 연세대학교 법학과 졸업
-1973년~ 1981년 판사역임
-1993년 서울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장
-1994년 한겨레신문 감사
-2001년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
-2003~2005년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2005~2006년 스탠포드대학 객원연구원
-2008년 민주당공천심사위원장
-2009년 세종대학교 이사장
-현: 희망제작소 이사장
       법무법인 봄 대표변호사
가족관계 : 부인 김수정여사와 사이에 1남 3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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