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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으로 본 강진정치사]제6대 국회(1963.12.17~1967.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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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03.06  15: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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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ㆍ영암 첫 동일선거구
김준연,윤재명,유수현 출마
 

   
김준연 의원
제6대 국회의원 선거는 1963년 11월 26일에 실시됐다. 이에 앞서 61년  5․16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군부세력은 곧바로 군사혁명위원회를 설치, 입법․사법․행정 3권을 장악한 뒤 국회를 해산했다.

군사혁명위원회는 5월 19일 국가재건최고회의로 개편하고 군정내각을 발족시켰다.
국회 역할을 했던 국가재건최고회의는 62년 12월 국민투표를 거쳐 헌법개정안(5차)을 확정했다.

주요 내용은 내각책임제에서 대통령제로 환원, 양원제 국회에서 단원제 국회로 환원, 국회의원 입후보자의 정당추천제 실시 등이었다.

개정 헌법에 따라 정당법, 선관위법, 국회의원 선거법도 제․개정됐다. 국회의원 선거구역의 확대와 의정사상 처음으로 비례대표제(전국구)가 채택됐다.
 
선거구는 기존 233개에서 131개로 대폭 줄었다. 전남지역도 32개 선거구에서 19개 선거구로 축소됐다. 그 만큼 관할 선거구역이 넓어진 것.

선거구가 축소됨에 따라 의원정수도 대폭 줄었다. 5대 국회까지는 의원정수가 233명이었으나, 6대 국회부터는 175명(지역구 131명, 전국 44명)으로 줄었다.

입후보자 정당추천제가 도입됨에 따라 무소속으로는 출마할 수 없게 됐다. 때문에 총선에 후보를 낸 정당이 12개나 됐다. 이 가운데 의석을 차지한 정당은 5개뿐.

선거결과, 여당인 민주공화당이 모두 175석 중 110석(지역구 88, 전국구 22)을 획득했다. 그 뒤를 이어 민정당 41석(지역구 27석, 전국구 14석), 민주당 13석(지역구 8석, 전국구 5석), 자유민주당 9석(지역구 6석, 전국구 3석), 국민의 당 2석(지역구) 등이었다. 전남에서는 민주공화당 12명, 자유민주당 3명, 민정당 3명, 민주당 1명 등 모두 19명이 선출됐다. 

전남지역에서는 5․16이후 2년6개월에 걸친 군정을 마감한 뒤 실시된 6대 총선에서 모두 111명(보선 포함)이 입후보해 5.55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선거구 조정으로 도내 지역구가 32개에서 19개로 대폭 감소돼 경쟁이 치열했다.

강진군은 제헌 국회 이래 유지되어 오던 단일 선거구가 복합선거구로 조정됐다. 6대 총선부터 처음으로 영암군과 동일 선거구가 돼 국회의원을 선출했다. 그러나 출마자들이 많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금배지에 도전한 후보는 3명뿐이었다.

전남 제12선거구인 강진․영암선거구에 출마한 후보는 김준연(金俊淵․69, 자유민주당) ․ 유수현(劉守鉉․47, 민정당) ․ 윤재명(尹在明․31, 민주공화당)후보.
유수현 후보와 윤재명 후보는 강진 출신이었고, 김준연 후보는 영암 출신이었다.

기호는 총선에 참여한 12개 정당이 추첨을 통해 결정했다. 예전처럼 같은 당이라도 선거구별로 다른 기호를 사용한 것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동일한 기호를 사용했다.그래서 김준연 후보(자유민주당)가 3번, 유수현 후보(민정당)가 9번, 윤재명 후보(민주공화당)가 12번이 됐다.  

   
국회 본회의장 의장석에서 연설하는 김준연 의원
5선에 도전한 김준연 후보는 동아일보 편집국장을 지낸데 이어 법무부장관과 민주당 최고위원, 통일당 위원장, 자유민주당 대표최고위원 등을 역임한 정치 거물.

반면, 유수현 후보는 해남군수와 무안군수 등을 지낸 후 5대 총선에 뛰어들어 차점 낙선했던 인물이었고, 현실정치에 처음 뛰어든 윤재명 후보는 집권당인 민주공화당 공천을 받아 국회 입성을 노렸다.

선거전은 외양상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이었다. 그러나, 선거전이 점차 진행되면서 3파전으로 변했다. 김준연 후보의 당선이 예상되면서도 유수현 후보의 조직력과 집권여당의 지원을 받고 있는 윤재명 후보의 선전으로 선거전이 후끈 달아올랐다.    

선거 결과, 예상대로 김준연 후보의 승리. 김 후보는 유효 투표수(7만477표)의 39.77%인 2만8천27표를 득표했다. 김 후보는 이로써 5선에 성공했다. 2위는 윤재명 후보. 그는 31세의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처음으로 출마해  2만3천 751표(33.7%)를 얻었다.

유수현 후보는 1만8천699표(26.53%)를 득표해 3위를 기록, 5대 총선에 이어 또다시 금배지 도전에 실패했다. 그러나 유 후보는 2년 뒤인 65년 11월  전남 1선거구(광주시 일부지역, 정성태 의원 사퇴)에서 치러진 보궐선거에서 정민회 후보로 출마해 마침내 국회입성에 성공했다.  

강진․영암 선거구에서 6대 국회의원을 지낸 김준연(金俊淵)의원(1895.3.14생)은 영암군 영암읍 교동리에서 9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호는 낭산(朗山). 낭산이란 영암군의 옛 이름인데, 김 의원의 고향사랑을 알 수 있다.

그는 영암보통학교를 마치고 상경, 경성공립고등보통학교(경기고 전신)를 졸업한 후, 일본으로 유학 가 동경제국대 법학부 독법과를 졸업했다. 이듬해에는 독일로 건너가 베를린대 법과에서 정치법률학을 연구했다.  

김 의원은 일제 강점기의 언론인이자 독립 운동가였고, 대한민국의 대표 정치인이었다. 그의 삶은 우리나라의 항일투쟁사였고, 건국의 역사이자 반공․반독재의 투쟁사였으며, 한국의 정치사 ․ 근대사였다.

김 의원은 1925년 한국 신문사상 처음으로 조선일보 해외특파원이 돼 모스크바에 파견돼 필봉을 드높였다. 신문사를 옮겨 1928년 동아일보 편집국장 재직 시 ‘제3차 공산당사건’(ML당)에 연루돼 7년간 복역하기도 했다.

   
젊은시절의 김영삼 전 대통령과 함께 자리하고 있는 김준연 의원
김 의원이 동아일보 주필이었을 때인 1936년 8월25일,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한 손기정선수의 가슴에 있던 일장기를 지워버리고 보도한 ‘동아일보 일장기 말소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으로 동아일보는 무기한 정간처분을 받았고, 주필이던 김 의원은 친구이자 동아일보 사장이던 송진우 선생, 그리고 편집국장과 함께 사임했고, 현진건 사회부장 등 직원 8명은 구속됐다.

김 의원은 또한 ‘흥업구락부 사건’, ‘조선어학회 사건’ 등을 주동하는 등 국내에서는 가장 격렬한 항일투쟁에 참여해 격동기 한국사의 중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었다.

김 의원은 1937년부터 해방되기 까지 경기도 전곡에서 인촌 김성수 선생의 농장인 ‘해동농장’의 관리인으로 은거생활을 하기도 했다.

마침내 8․15 광복이 되자 칩거생활을 정리하고 정계에 투신해 눈부신 활약을 펴나갔다. 남조선과도입법위원회 의원으로 활약했고, 신탁통치 반대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제헌국회에 진출한 이후 3,4,5,6대 국회까지 5선 의원을 지냈다. 제헌 국회 때는 영암에서 단독 입후보해 국회에 진출했고, 2대 국회 때는 낙선의 아픔을 겪기도 했다.

한민당 창당에 참여했던 김 의원은 그 후 민국당, 민주당, 통일당, 자민당, 민중당, 신민당 등을 거치면서 당대표 등 항상 당 지도부에서 활동했다.

그는 대통령선거와 부통령선거에 두 번 출마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한 번은 60년 3․15 정․부통령선거에 통일당 부통령 후보로 출마했었고, 또 한 번은 67년 5월에 실시된 제6대 대통령선거에 출마했었다.

13세 때 결혼한 김 의원은 4년 연상인 부인 김옥성 여사가 69년 먼저 타계한 후 둘째 딸(자향) 집에서 여생을 보냈다. 슬하에 1남 3녀를 두었으나 아들은 19세에 요절했고, 장녀(자옥)는 서울 성북구에서 국회의원에 출마한 적이 있다. 막내(자선)는 ‘대쪽 법관’ ‘청빈 법관’으로 유명한 고 김홍섭 판사(전북출신)의 부인.

   
영암군 영암읍 교동리에 세워진 낭산 김준연 기념관

지난 09년 1월 ‘낭산 김준연선생 기념사업회’가 출범했으며, 영암읍 교동리 교동서원 아래에 ‘낭산 김준연 기념관’이 세워져 있다. 김 의원은 71년 12월 31일 늦은 밤 향년 78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장례는 사회장으로 거행되었으며, 경기도 양주군 주내면 천주교묘지에 안장됐다.
/임영상 객원기자(정치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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