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어르신들은
과거를 잊는다

건강관리 체계적으로
받아야 할 권리있어
 
누구에게나
생명은 희망

노년의 행복
가족과 사회가 찾아줘야

사람은 태어나 기저귀를 찬다.
 
신생아들은 자각능력이 없어 대소변을 가리지 못한다. 사람은 늙어도 기저귀를 찬다.

일부 노인들도 병들고 아프면 자각 능력이 없어 대소변을 가리지 못한다. 우리는 기저귀를 차고 세상을 시작해서 기저귀를 차고 세상과 이별을 한다. 그게 사람의 일생인가 보다.

강진읍 교촌리 강진노인전문요양원에는 70여명의 노인들이 생활한다. 이중에 남자가 20여명이다. 또 대부분의 어르신들이 치매증상을 앓고 있다.

기자는 지난해 여름 이곳에서 사회봉사명령을 받은 적이 있다. 아침 9시면 청소가 시작된다. 처음으로 한 일은 쓰레기봉지에 담긴 기저귀를 옮기는 일이였다. 보통 하루에 대형봉투로 10여개가 나왔다. 무거웠다.

어르신들이 사용하는 기저귀는 소아용과는 달라서 크고 두꺼웠다. 그 안에 대소변이 모이면 묵직했다. 그게 똘똘 말려서 비닐봉지로 들어가고, 봉지가 모이면 쓰레기 분리수거장으로 옮겨졌다.

어르신들의 대소변을 치우는 사람들이 누구인가 궁금했다. 며칠 후 실내를 청소할 기회가 왔다. 궁금증이 풀렸다. 그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요양보호사란 사람들이였다.

강진노인전문요양원에는 모두 30명의 요양보호사가 활동하고 있었다. 이중에 남자가 4명, 여자가 26명이다. 어르신들의 남녀 숫자에 비례해 남녀 요양사들이 배치돼 있는 형태다.

현병권(42) 요양보호사를 본 건 오전 9시경이었다. 이때 쯤이면 사람들의 발길이 분주하다. 어르신들이 누워있는 방들이 깨끗이 청소된다. 자원봉사 온 학생들도 눈에 띈다.
 
간간히 대변냄새가 풍긴다. 누군가 기저귀를 바꾸고 있다는 신호다. 진공청소기를 밀고 있는데 방에서 한 남자가 한 할아버지의 옷을 벗기고 기저귀를 갈고 있었다.
 
덩치 큰 요양보호사는 어르신들을 포근히 감싸며 웃옷을 갈아 입히고, 때로는 사뿐히 몸을 들어 올리며 예정된 일을 처리하고 있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 아버님께 저렇게 할 수 있었을까” 아버님은 18년전에 돌아가셨다. 그렇게 하지 못한 죄스러움이 물밀같이 스쳐갔다.

이런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존경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로 젊은 사람들이 왜 저렇게 어려운일을 하는지 궁금했다.

현병권 요양보호사는 이 일을 한지 4년 째다. 직장생활을 하다 따로 야간대학에서 공부를 하며 노인들을 돌보는 요양보호사가 됐다.

요양보호사는 어르신들에게 종합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이다, 잠자리 관리에서부터 운동관리는 물론 세면, 목욕, 양치질, 대소변을 돌봐줘야 하고, 틈틈이 말벗도 되어 주는게 일과중의 큰 업무다.

그런 일이 처음에 편했을리는 없을 것이다.

“어르신들의 개성이 모두 다릅니다. 살아오신 삶이 다른 것이지요. 치매증상도 같지가 않아요. 공부를 해서 자격증을 따서 시작한 일이었지만 막상 요양원에 들어와 어르신들을 대하니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치매증상을 심하게 앓고 있는 어르신들은 사람을 잘 못 알아본다. 날마다 봐도 생소해 한다. 그럼 그렇게 맞게 대해 주어야 분위기가 좋아진다. 날마다 새롭게 인사하고, 날마다 새롭게 안부를 챙겨드려야 한다.

또 어르신들은 관심사가 모두 다르다. 자식이야기를 많이 하는 사람들이 있고,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많이 하기도 한다.
 
또 군대에서 고생한 이야기도 많이하고, 월남전에 참전해서 죽을 뻔 했다는 어르신도 적지 않았다. 먼저 돌아가신 남편이나 부인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자식들에게 섭섭했던 이야기를 털어놓기도 한다.

“나이드시면 어린아이와 똑같이 된다는 말이 틀리지 않은 말입니다. 순수해지는 거 같아요. 모두들 자신이 살아오신 과거를 되돌아 보고 싶어 합니다”

아무래도 어르신들을 돌보다 보면 대소변을 치우는게 가장 힘든 일일 것 같았다.

“두어달이면 다 적응이 됩니다. 직업인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할 뿐이니까요. 그 일은 하루 일과중에 아주 작은 부분에 해당될 뿐입니다”

그런 말을 하는 현병권 요양보호사가 참 든든해 보였다. 또 한편으로 감사했다. 요양보호사들은 다른 많은 젊은 사람들이 부모님을 위해 해야 할 일을 대신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주말이면 노인요양원으로 가족들이 많이 찾아 온다. 명절에는 특히 많은 가족들이 찾아와 늙으신 부모님들을 만나고 간다.

현 요양보호사는 가족들이 왔을 때 “우리 어머님이 참 좋아지셨네요. 우리 어버님 건강이 많이 괜찮아 지셨어요”라고 말하면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어르신들을 그만큼 잘 모셨다는 칭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양원에 계시는 어르신들은 갈수록 건강이 쇠하는 경우가 많다. 치매증상이 날로 악화되기도 한다. 때문에 세월이 가면서 가족들을 못알아 보는 어르신들도 많아지고, 그런 어르신들을 만나는 가족들의 슬픔이 커지기도 한다.   

걸어 다니던 분이 어느날 갑자기 바닥에 주저앉아 휠체어에 몸을 의지하게 되고, 휠체어를 타던 분이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해 와상환자가 되기도 한다.
 
와상환자란 하룻네 침대에 누워있어야 하는 어르신을 말한다. 침대에 누워있던 어르신이 갑자기 호흡이 곤란해지기도 한다.

그럴 때면 상시대기하고 있는 의료진들이 어르신을 응급차에 태워 읍내 큰 병원으로 모시고 있다. 노인요양원에는 이런 일이 수시로 반복되고 있다.
 
그 사이 사이에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항상 어르신 주변을 살피고 있는 사람들이 요양보호사를 비롯한 요양원 식구들이였다.

노인들과 늘 생활하면 어떤 생각이 들까. 사람은 태어나 젊은 삶을 보내고 언젠가는 늙고 병드는 과정을 피할 수 없이 거치게 된다.

우리는 어떻게 노년을 준비해야 하고 어떡하면 아프지 않고 노년을 보낼 수 있을까. 특히 치매는 생각만 해도 두렵다. 모든 기억을 잃어버리게 된다. 신체의 인지능력도 없게 된다. 그럴 땐 어떻게 해야 하나.

“모든 사람에게는 생명에 대한 끈질긴 애착이 있습니다. 인지능력이 없는 치매 어르신들도 배고픔에 대한 갈망은 있습니다. 생명이 위독한 어르신도 눈을 뜨고 우리를 바라봅니다. 누구에게나 삶은 희망인 것 같습니다”

알듯 모를 듯한 현병권 요양보호사의 말을 들으며 따뜻한 위로 같은 것을 느꼈다.

지난 10여년 동안 농촌에서 가장 크게 바뀐 문화가 있다면 누구나 장례문화를 생각할 것이다. 10여년 전만해도 자기집이 아닌 다른 장소에서 장례를 치르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지금은 장례식장에서 치르지 않은게 이상한 일이 됐다.

요양원도 그렇다. 노인요양원이라면 불효자식들이 늙은 부모 떠 맡긴 곳 쯤으로 생각된 적이 있었다. 요즘은 그런 생각이 많이 바뀌었지만 아직까지 그런 분위기가 남아 있는 게 사실이다.

현대판 고려장이 아니냐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어르신 본인들이 노인요양원에 들어오는 것을 꺼리기도 하고 자식들이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하기도 한다.

이에대해 현병권 요양보호사는 적극적으로 노인요양원을 권장했다.
“시설 좋죠, 음식 제때 챙겨드리죠, 친구분들 생기죠, 의료진이 상시 대기하죠, 건강챙겨드리죠... 노인요양시설은 어르신들이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모든 것을 갖추고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인식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노인요양시설이 사회적으로 보편화될 것입니다”

필자에게도 78세되신 어머님이 계신다. 엊그저께는 감기와 장염이 걸려 강진의료원에서 4일간을 입원하고 나오셨다. 훗날 어머님이 많이 아프시면, 혹시 치매라도 걸리시면 넉넉한 마음으로 요양원에 입원시켜 드릴 수 있을까. 아직까지 자신은 없다. 그러나 사회적 변화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편하게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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