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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의 대표 라이벌 김안식 - 차종채‘은하소주’‘강진소주’로 승부수
주희춘 기자  |  ju@nsor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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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4.09  17:2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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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안식 - 일제항거 독립운동가, 정치인 · 사업가로 맹활약
차종채 - 탐진강 방조제공사 주도한 ‘남도의 호랑이’

일제강점기 도평의원과 관료들의 면면을 보면 당시 김안식씨의 존재는 상당히 이단적인 모습이였던 것으로 보인다. 1919년 3.1운동(강진에서는 4,4만세운동)이 일어나기 전에는 강진의 경제력은 일본과 가까운 인사들이 장악하고 있는 상황이였다. 

강진읍 서성리 출신의 김안식은 1889년생으로 1920년 명치대학 법학과를 졸업한 사람이였다. 김안식씨는 일본에서 1919년 2월 8일 '2·8독립선언서'를 발표한 조선청년독립단의 핵심멤버였고, 입국과 함께 바로 고향 강진으로 내려와 4.4만세운동을 주도했다.

그는 강진의 4.4 만세운동을 주도한 혐의로 장흥법원에서 징역 1년 2개월을 선고받고 6개월을 복역했으며 대구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다.

그런 사람이 고향 강진에서 사업을 하겠다고 유유히 나타난 것이다. 당시에는 김충식씨가 전국제일의 재산을 과시하고 있었고, 차종채씨가 그 주변에서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하고 있었다.

강진농고도 지었고, 탐진강 제방도 쌓았다. 강진의 크고 작은 일들이 모두 이사람들을 통해 이루어진 시대였다. 독립만세운동을 하다 징역을 산 김안식씨가 고향 강진에서 사업을 한다고 했을 때 분위기가 어떠했을지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김안식씨는 고향에서 사업을 해서 큰 돈을 벌었다. 1930년대초에는 금산정미부, 금산주조부, 금산상점, 금산화물자동차부를 운영한 신진 소장파 실업가가 됐다. 김안식씨는 결국 거물 김충식씨가 맡고 있던 전남도회의원을 빼앗으면서 그들과의 경쟁에서 1차 승리를 한다.

일제가 골치아픈 독립운동가 출신 사업가의 도평의회 진출을 막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방해공작을 했을지 이 또한 상상하고도 남는다. 1933년 도평의원 당선 후 곧바로 ‘선거위반(선거법위반이라 하지 않았음)’혐의로 조사를 받은 것도 같은 맥락이였던 것으로 보인다. 저쪽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그후 도회의원 선거에서는 김충식씨가 도회의원을 탈환했고 그후에는 차종채가 그 바톤을 이어받음으로서 사실상 김충식씨의 최측근이 도회의원을 승계받는 모습이였다.

양측의 경쟁은 해방후 사업분야에서 계속됐다. 특히 김안식씨와 차종채씨는 정치․ 경제적 라이벌 관계였다. 두 사람은 1889년생으로 나이가 같았다. 김안식씨는 일본 명치대학을 졸업했다. 차종채씨는 ‘한문수학’이 학력의 전부였지만 자타가 공인하는 강진의 실력자였다.   

해방후 강진에는 큰 소주공장이 두 개나 있었다. 하나는 김안식씨가 운영하던 '강진은하소주' 였고, 하나는 차종채씨가 소유한 '강진소주'라는 회사였다. 소주공장으로 두 사람이 경쟁을 한 것이다. 은하소주는 지금의 강진읍 목리가는 길옆 옛날 농촌지도소자리에 있었고 차종채씨의 강진소주는 지금의 강진읍 금호아파트 자리에 있었다.

쌀을 이용해 내림소주를 만들었던 두 회사는 5.16 직후까지 인근지역등에 강진의 이름을 날리며 승승장구했다. 강진소주는 차종채씨의 아들인 차운영씨가 맡아 운영하기도 했다. 차운영씨는 1956년 도의원 선거에 당선돼 도의회의장까지 지내기도 했다.

차운영씨는 훗날 국회의원에 출마하며 정치적 입지를 노렸지만 끝내 국회의원이 되지 못했다. 김안식씨는 해방 후 금릉중학교 2대 교장을 했고 건국준비위원장등을 맡으며 역시 정치적 재기를 노렸으나 큰 성공은 이루지 못했다. 가족으로는 일본인 여성과 사이에 낳은 아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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