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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그때 그사건
[그때그사건]독립운동가 출신 김안식선생 도평의원되다 <2>4.4 강진만세운동 관련자로 유일하게 전남도회 진출
주희춘 기자  |  ju@nsor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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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4.09  17:2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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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전남도회 친일파 · 일본인들이 장악
김안식 “왜 토지 보상없이 강제로 기부를 받느냐”
일본인 도지사 · 도간부들 압박… 전남도회 파란

   
1958년 김안식씨가 운영했던 금산정미회사 모습이다.
1931년 5월 20일 면협의원선거가 처음으로 직선으로 열린다. 이때 강진면(훗날 강진읍이 됨)의 정원이 20명이였고 도암면이 12명, 옴천면이 8명, 나머지 면은 모두 10명이였다. 강진읍의 경우 이때 김충식씨와 김안식씨, 오응추씨, 김우식씨등 이름있는 사람들이 정계에 발을 딛었고, 군동면에서는 차종채, 오병석씨등도 면협의원에 이름을 올렸다. 또 이때 선거는 일본인들도 피선거권이 부여돼 강진읍에서는 5명, 군동면 1명, 병영면 1명의 일본인이 면협의원에 당선되기도 했다.

1933년 5월 10일 이들 면협의원에 의해서 도평의원(지금의 도의원) 간접선거가 있었으며 이 선거에서 독립운동가 출신 김안식이 당선된 것이였다. 33년 간접선거에서 3.1운동 관련자로 도평의회에 진출한 사람들이 전국적으로 16명이였는데 김안식은 다른 의원 5명과 함께 ‘주도적 만세운동 참여 학생’으로 분류됐다. 전남도회에서는 김안식이 3.1운동 관련자로는 유일한 사람이였다.<일제하조선인도평의회 도회의원 연구. 동선희 박사학위 논문. 131페이지 참조>

김안식의원은 도평의원을 상당히 열정적으로 한 것으로 보인다. 1935년 3월 12일 전남도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도평의원들이 전남도회에 올라온 예산심의를 하는 날이였다. 김안식 의원이 토목예산에 대한 문제점을 요목조목 지적하고 나섰다. 요즘에야 도로가 나면 공사비와 함께 토지보상비가 함께 책정되지만 일제강점기에는 그런게 아니였다.

도로를 내면 공사비만 세우고 부지는 토지소유자로부터 강제적으로 기부를 받아 사업을 진행했다. 이에대한 주민들의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였다. 주민들은 아무런 항의도 못하고 일제의 정책에 따라야 했던 것이다. 도평의원들 역시 일본인들이 상당부분 진출해 있었고, 또 일부분은 도지사가 임명한 사람들이 많아 주민들의 불만을 효과적으로 전달한 분위기가 도저히 되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김안식의원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동안 신작로를 만들때 항상 토지를 강제적으로 기부케하면서 일반 민중의 불평이 허다한데도 불구하고 올 예산에 역시 여러곳에 신작로나 제방축조를 하겠다면서 공사비만 계상하고 부지 배상비는 일전도 계상되지 않았다. 올해도 토지소유자에게 강제기부를 받을 작정이냐”

이에대해 일본인 내무부장 시야(矢野)가 “예산이 부족해서 어쩔 수 없다. 여러분이 다같이 협조해 달라”고 답변했다. 다시 김안식의원이 마이크를 잡고 “그것은 안될 일이다.  강제로 토지를 기부케 하는 것은 헌법의 보장을 받고 있는 재산소유권을 관이 침범하는 것이다. 일반 민중들의 불평이 자자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원들에게 협조를 요청하는 것은 말도 되지 않은 일이다. 이 예산은 제3자인 토지소유자의 승낙을 받지 못하면 시행해서는 안될 공사이므로 예산 자체가 불법이다. 예산을 통과시켜 줄 수 없다” 고 주장했다.

상황이 험악해 졌다. 일본인 의장 근등(近藤)이 상황이 복잡해 지자 마이크를 꺼버렸다. 근등의장은 곧바로 발언권을 다른 의원에게 돌려 버렸다.

그렇게 되자 회의장 분위기가 더 험악해 졌다. 영암의 김병두의원이 김안식의원을 거들고 나왔다. 김안식 의원이 당연히 지적해야할 것을 말했는데 왜 발언권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냐는 것이였다. 그날 소란은 김병두의원이 조정을 하면서 마무리가 됐지만 그 후로도 오랫동안 각종 공공사업을 하면서 땅주인들로부터 강제로 부지를 기부받는 관행은 사라지지 않았다. 동아일보는 1935년 3월 14일 자에 당시 기사를 ‘전남도회에서 대 파란’이란 제목으로 크게 보도했다.

1937년 전남도회의원 선거에서는 차종채씨가 도회의원이 된다. 1931년 5월 면협의원이 된지 6년만의 일이였다. 차종채씨는 도회의원이 되기전에 30년대 중반 오랫동안 군동면장을 역임했다. 4년 후인 1941년에는 김충식씨가 1930년에 이어 다시 도지사 임명을 통해 도회의원이 된다. 김충식씨는 1930년 한차례 도회의원을 한후에는 주로 임명직 관료를 했다. 도의원을 마친 33년에는 강진면장을 했고 37년에는 강진읍장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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