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일보
기획특집그때 그사건
강진의 1호 도평의원 채수강원래 제주도 사람… 강진군수 오랫동안 맡아
주희춘 기자  |  ju@nsori.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3.04.02  11:14:57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네이버밴드

‘친일반민족행위 관료’친일진상규명위 등재
  양아들 채순병은 독립운동가 건국훈장 받아

   
채순병
강진의 1호 도의원에 뽑힌 채수강은 연대적으로 볼 때 한일병합 직전부터 강진군수를 맡다가 그 후에도 4년 동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것으로 나온다.

일제에 대단한 충성을 보이지 않았으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지난 2009년 11월 발행한 보고서에는 조선인 관료 부분에 채수강의 이름이 등재돼 있다.

그는 강진군수를 마친 후 함평군수와 영광군수를 역임하는등 일제치하 관직에서 승승장구하다가 1920년 초에 퇴임한다. 아마도 영광군수를 퇴임하자마자 강진의 도평의원으로 임명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극명히 대비되는 기록으로 그의 양아들 이야기가 있다.

그의 양아들 채순병<사진>은 제주출신의 독립운동가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이 발행한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에는 채순병에 대한 소개가 나온다.

제주출신인 그는 경성고등보통학교 재학시절인 1919년 3월 4일 밤 하숙방에서 ‘독립만세운동이 개최되니 태극기를 가지고 나오라’는 격문 400여매를 만들어 배포하고 다음날 남대문역 앞에서 시위행진을 벌이다 체포된 것으로 나온다.

기록중에 관심을 끄는 대목은 그가 1920년 5월 14일 가출옥해서 전남 강진에 사는 양아버지 채수강의 집에서 휴양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채수강이 도평의원 임명과 함께 거처를 강진으로 옮겼고 그의 양아들 채순병이 이곳 강진에서 휴양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친일 관료의 길로 잔뼈가 굵었던 채수강과 반일의 최전선을 걸었던 그의 양아들이 강진에서 지내며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 사뭇 궁금하다. 채순병은 강진에서 2년을 보내고 학업을 계속하기 위해 일본으로 다시 건너가지만 고문 후유증으로 곧바로 요절하고 말았다.

채순병은 1990년 광복절에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됐다. 채수강은 그후로 19년만인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보고서에 이름을 올렸다. 역사는 두 사람을 분명히 다르게 기록했다.
 

< 저작권자 © 강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주희춘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네이버밴드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가장 많이 본 기사
1
도암중학교 31회 졸업생들 첫 동창회
2
강진농협 로컬푸드 참여농가 김명자씨
3
[현장르포]얼마만큼 묻혀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4
강진에 미용업소가 많은 사연은?
5
“갈대축제에 남해안 젓갈축제 더해보자”
6
강진군체육회장 출마하려면 11일까지 유관단체 사퇴해야
7
벼‘새일미’지고‘새청무’뜬다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 · 이메일무단수집거부
전남 강진군 강진읍 영랑로 35 강진버스여객터미널 2층 강진일보  |  대표전화 : 061)434-8788
사업자등록번호 : 415-81-43025  |  발행인 : 황민홍  |  정보관리 책임자 : 주희춘  |  청소년보호책임자 : 주희춘
Copyright © 2011 강진일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nsor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