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국과 라면 5,000명 분을 준비합시다”

94년 설명절 한파로 뱃길 두절… 마량항서 진두지휘하며‘따뜻한 대접’

지난 2월 3일, 박재순 한국농어촌공사 사장이 나주시 세지면 화탑마을을 찾았다. 화탑마을은 박근혜 당시 대통령 당선인이 어느 좌석에서 농촌 발전의 성공 모델로 언급한 곳이였다.

박대통령은 후보시절 화탑마을을 방문하기도 했다. 박당선자가 화탑마을을 농촌의 성공모델로 소개하자마자 서울에서 한국농어촌공사 사장이 화탑마을을 찾은 것이다.

박사장의 이날 방문이 대통령의 농촌관심에 힘을 실어주고 한편으로 전남지역에서 척박한 박대통령의 위상을 많이 높힌 것은 물론이였다. 어찌보면 공기업 사장으로서 대통령을 돕는 당연한 행보로 보이지만 막상 그렇게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박재순 전 강진군수는 이렇듯 업무의 순발력에 있어서 타고난 감각을 타고 났다는 평가를 받는다. 누구나 해야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을 박군수는 선뜻 하는 스타일이다. 1996년 2월 어느날 이였다. 박 전군수가 전남도청 수산국장으로 재직할 때다. 그날 호남지역에 엄청난 눈이 내렸다.

해양수산부 고위간부가 전남지역 수산현장을 보기위해 내려오는데 전주인근 지점에서 고속도로가 눈길에 막혀 버렸다. 박재순 수산국장은 그 일을 보고받고 즉각적으로 전남도 소방본부와 협의를 벌였다.

긴급공무를 위해 헬기를 이용할 수 있다는 허가를 받았다. 박재순국장은 직접 헬기에 타고 전주까지 날아가서 해양수산부 고위간부를 태워 내려왔다. 나중에 해양수산부 일이 잘 풀린 것은 당연한 것이였다. 그 말을 전해들은 사람들은 혀를 내둘렀다.

이같은 ‘순발력’ 때문에 박재순 군수는 이런저런 오해도 받았다. 윗사람 눈치만 보는 사람이 아니냐는 것이였다. 허경만 지사 시절 초반기에는 그런 모함 때문에 꽤 어려운 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허지사도 박군수의 진심을 알고는 후반기에 그를 중용했다.

박군수가 강진군수로 있으면서 일어났던 일을 보면 그가 결코 윗사람의 눈치를 보는 사람이 아니라 주민을 각별히 생각하는 행정을 한 것 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농어촌공사 사장으로 재직중인 박재순 전 강진군수가 지난해 여름 농촌의 농업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군수 관사에도 귀향객 재우고 자신은 집무실서 새우잠
연휴 후 “강진의 친절에 감복했다” 전국서 편지쇄도


1994년 초 설 연휴때의 일이다. 그해 설 연휴는 2월 9일(수), 10일(목), 11일(금)요일 이였다. 추운날씨였다. 토요일이 지금처럼 휴일은 아니였지만 대부분의 직장들이 5일씩 휴가를 줘서 귀성객들이 역대 최대인파를 보였다. 9일이 되면서 강진에도 아침부터 밀려드는 차량들로 온 거리가 북적거렸다. 

그런데 그날 오후가 되면서 한파주의보가 내려졌다. 기온이 뚝 떨어지고 바다에는 태풍이 밀려오는듯 파도가 높았다. 강진은 마량항이 문제였다. 마량항의 뱃길이 그날 오후 끊겼다. 파도가 높아지면서 일체 출항이 금지됐다.

명절이면 마량항을 통해 인근 고금도에서부터 약산, 금일도로 들어가는 귀향인파가 2~3만명을 헤아릴 때였다. 그날 오후 5천여명이 일시에 마량으로 밀려 들어왔다. 그들은 모두 완도출신 출향인들이였다. 밀려드는 차량행렬이 마량면소재지를 채우고 대구면사무소 앞에까지 꼬리가 이어졌다. 차량들이 꿈쩍도 하지 않고 한파주의보가 풀리기만을 기다렸다. 설 대란이였다.

박재순 군수가 전 공무원 소집지시를 내렸다. 마량항에 임시사무소가 차려졌다. 우선 시급한게 차속에 갖힌 사람들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것이였다.

박군수는 공무원들에게 강진에 있는 모든 떡국을 수집하라고 했다. 공무원들이 집에서 설날 끓여먹기 위해 만든 떡국을 기본만 남기고 모두 가지고 나왔다. 강진읍내 방앗간을 모두 뒤져 떡국을 사서 모았다. 그것으로 부족해서 강진은 물론 인근 장흥과 영암의 모든 라면을 구입해 오게 했다. 강진의 부녀회들이 최대한 동원됐다.

설날 제사음식을 장만하던 부녀자들이 그릇과 기본반찬을 가지고 마량과 대구쪽으로 모였다. 5천명 넘는 사람들에게 떡국과 라면이 제공됐다.

담요를 구하는 것도 문제였다. 박군수가 대책을 마련했다. 마침 강진 영암 장흥의 민방위물품 창고가 강진에 있었다. 그곳을 파악한 결과 담요 500장이 있었다. 박군수는 그것을 귀향객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오후늦은 시간이 되면서 기름이 떨어져 더 이상 히터를 틀수 없는 차량들이 속출했다. 사람들이 추운 겨울밤을 보낼 수 없었다. 박군수는 차에 기름이 떨어진 사람들이 공무원들의 집에서 잠을 잘수 있도록 최대한 주선을 했다. 박군수도 두가족을 군수사택으로 데리고가 잠을 재우고 자신은 군수실에서 새우잠을 잤다.

설날인 다음날도 한파주의보는 꺾이지 않았다. 설날 아침에도 떡국이 제공됐다.발이 묶인 귀향객들은 차에서 멀리 있는 고향을 향해 차례를 지냈다.

대낮이 되어도 한파주의보가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자 대부분의 사람들이 귀향을 포기하고 서울로 돌아갔다. 담요를 회수했다. 500장중에서 회수되지 않은 것은 30여장에 불과했다. 대부분의 강진군청 공무원들이 설연휴동안 귀향객들을 뒷바라지 하느라 연휴를 포기했다.

그로부터 얼마 후 강진군청 군수실에 전국에서 편지가 폭주하기 시작했다. 그때 그 사람들이였다. “그때 강진군의 배려를 잊을 수 없습니다” “군수님, 어떻게 그 많은 떡국을 마련하셨어요” “우리가족 잠을 재워주신 000님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따끈한 강진의 인심에 놀랐습니다” 모두 감사와 인정이 넘쳐나는 편지들이였다.

아마도 요즘시대 같으면 강진군청 인터넷 홈페이지가 다운됐을 정도였다고 한다. 박군수는 이들에게 일일이 답장을 써주며 다시 한번 강진의 따뜻함을 전했다.

박군수는 그 일이 있은 그해 말 완도군의회에서 감사패를 받았다. 완도의 출향인들을 잘 재워주고 먹여준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였다. 감사패에는 ‘8만 완도군민의 정성을 모아 강진군수에게 감사패를 드린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박재순 전 군수는 “군정 하나하나에도 군민들의 숨결이 살아 숨쉬고 있다는 것을 그때 새삼 느꼈다”고 말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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