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많은 양수기야~ 변함없이 자알 돌아라~

박대통령, 양수기 애착 각별 ‘수시감사’
잘 돌던 양수기 감사 나오면 ‘스톱’ 일쑤

1981년 가뭄이 들었을 때 영암군 삼호면 동암마을에서 양수기를 이용해 2단 3단으로 물을 보내는 모습이다. 이때만 해도 70년대 초반보다 양수기 성능이 많이 개선됐을 때다.<81,82년 한해극복지. 농림산부 발행 사진인용>
1968년과 69년 엄청난 한해를 겪은 박정희 대통령은 70년대로 접어 들면서 가뭄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양수기 확보가 시급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는 저수지 개발이나 관정보급이 거의 되지 않았을 때다. 69년 처음으로 연리 9%, 1년거치 4년 분할조건으로 양수기 구매자금을 전액 융자로 보급하는 제도가 도입됐다. 지금 생각해 보면 상당히 높은 금리지만 그 전까지는 본인부담이 40%에 달해 현금이 없는 농민들이 양수기를 구입할 수 없는 형편이였다.

한편으로 정부는 68년 대일청구권 자금으로 일본에서 2천여대의 양수기를 도입한데 이어 70년대 들어서는 농업원조차관이 들어오면 우선적으로 양수기를 구입하는데 투입하는등 양수기 보급에 총력을 기울였다. 이렇게 해서 70년대 초까지 강진에도 각 면사무소에 일제 양수기와 국산 대동양수기가 20~30대씩 보급돼 만일의 한해 사태에 대비했다.

강진읍사무소에는 40대가 넘은 양수기가 있었다. 가뭄이 들면 이 양수기들이 2단, 3단, 4단 양수를 해서 멀리 있는 곳까지 물을 보냈다. 그런데 문제는 양수기가 제대로 작동을 하느냐 하는 것이였다. 정부가 있는 돈 없는 돈 끌어모아 보급한 양수기의 상당부분이 성능미약과 관리부실로 방치되고 있었다.

72년 3월 정부가 전국 시군에 공급한 양수기 3만5천대를 조사한 결과 14%인 4천여대가 관리부실로 다시 손질하지 않고는 쓸 수 없는 상태였다(동아일보 72년 3월 14일자 참조). 실제 불량은 이 보다 훨씬 많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1975년 주민들이 양수기를 닦고 손질하고 있다. 양수기 손질은 일반주민들도 참여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사태의 심각성을 알고 다음해 6월 특별담화를 발표했다. 이례적이였다. 전국 양수기를 일제 점검하도록 특별지시를 내린 것이다. 당시 박대통령의 특별지시는 막강한 권한을 가진 통치 행위였다. 박대통령의 특별지시가 각 중앙일간지의 1면 톱기사를 장식했을 정도다.

박대통령은 “농업생산증강을 위해서는 농업용수 문제의 해결이 가장 중요하다. 이를 위해 모든 농민과 행정기관은 한발이 들기전부터 미리미리 유비무환의 정신을 발휘해서 양수기를 점검해 두고 그 사용방법을 완전히 갖추도록 하라”고 특별지시했다.

전국에 양수기 점검 열풍이 불었다. 대통령의 특별지시로 즉각적으로 꾸려진 점검반에는 감사원감사관, 청와대사정특별보좌관실요원, 청와대민정비서실요원, 현역군인등이 포함됐다. 또 청와대는 각 시도가 책임아래 정비를 끝내도록 지시하고, 감사도 병행했다.
 
72년 내무 부감사에서 14명의 군수가 양수기 관리를 잘 하지 못해 직위해제되는 대란을 겪었다. 이정도면 시장 군수들이 양수기 관리에 모든 것을 걸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였다.  각 읍면사무소에서는 창고에 양수기를 보관하면서 개인당 한 대 꼴로 책임관리를 하게 했다. 닦고, 조이고, 칠하고 한 것은 기본이였고, 무엇보다 양수기가 정상적으로 가동을 해야 했다.

1994년 7월 16일 김영삼대통령이 가뭄때문에 양수작업이 한창인 칠량 장계리를 방문했다.
하루에도 몇차례식 시험가동이 이뤄졌다. 양수기의 무게가 보통이 아니여서 한번 이동하려면 어른 네다섯명이 힘을 써야 했다. 양수기 감사는 수시로 진행됐다. 전남도 감사관들과 군 보안대 군인들이 불쑥 내려와 양수기를 하나 찍었다. 돌려보라는 신호였다. 그때 돌아야 도는 것이였다.

그런데 전날까지 잘 돌던 양수기가 이상하게 감사관 앞에서는 꿈쩍하지 않을때가 많았다. 며칠씩 양수기를 닦고 조이며 관리하던 공이 완전히 헛수고가 됐다.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징계는 징계대로 당했다. 성격이 못된 감사관은 담당공무원을 발로 걷어찼다. 그게 통하는 시대였다. 그래서 강진군 공무원들 사이에 유행가가 생겼다. 양수기를 닦고 조이며 부르던 노래다.

‘한 많은 양수기야~ 변함없이 잘 돌아라~ 감사관이 오거들랑 쉬지말고 자알 돌아라’
대중가요 ‘한 많은 대동강아’를 개사해서 부른 노래다. 양수기가 그만큼 공무원들을 괴롭혔던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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