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교수진등 1996년 강진인구 12만8천명으로 예측

1975년 강진읍 중앙로 거리의 모습이다. 77년부터 도시종합개발계획에 따라 대대적으로 정비된다.
실제 인구는 5만3,500명...
며느리도 몰랐던 농촌인구 변화

지난해 말 현재 강진의 인구는 4만 241명이다. 강진의 인구는 1967년 12만7천170명을 최 정점으로 점점 줄어든다. 10만명대를 유지했던게 1979년까지 였다. 그때 인구가 10만237명이였다. 그후로 10만명대가 무너졌고, 90년도에는 7만명대가 무너졌다.

강진군에서는 1977년 처음으로 강진군농어촌종합개발계획이라는 것을 세운다. 또 강진읍도시종합계획을 세운 것도 이때다. 강진군의 장기발전 플랜을 처음으로 만든 것이다.  1977년부터 1996년까지 장장 20년 동안 강진군을 발전시킬 청사진이 이때 세워졌다.

당시 정채균 군수 재임시절인데 이를 근간으로 해서 강진군의 모든 발전 계획과 개발 모양이 확립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강진읍의 경우 이때 도시계획이 완성됐다. 꼬부랑길과 다랑치논이 산재해 있던 강진읍에 바둑판처럼 줄을 긋고 주거지역이니 상업지역이니 하는 지역을 정한게 바로 이때였다.

농어촌종합개발계획 역시 각 읍면의 마을창고나 회관, 공원, 지붕개량, 상수도보급계획이 ‘1977~1996년 강진군농어촌종합개발계획’에 모두 포함됐다.

그럼 1977년 당시 정책 입안자들은 강진의 장기 인구변화를 어떻게 전망하고 있었을까. ‘강진군농어촌 종합개발 계획’등에 참여한 사람들은 한국생산성 전남본부 연구팀과 전남대학교 교수진,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농경제학회 전문위원, 전남농촌진흥원등이였다. 대한민국의 쟁쟁한 전문가들이 강진군농어촌 종합개발계획과 강진읍도시종합계획 수립에 참여한 것이다.

1977년도의 강진인구가 10만5천374명이였다. 당시 책자를 보면 이들 전문가 집단들이 강진의 인구전망에 완전히 실패했다는 것이 확연히 드러난다. 두 계획서에는 동일한 강진인구 예상숫치가 나온다.

1977년에 세운 두 계획서의 강진군인구추정치를 보면 1981년 인구를 11만5,071명, 1986년에는 12만904명, 종합개발계획이 끝나는 1996년에는 강진인구가 12만8천8천738명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 세월을 바라볼 수 있는 지금의 시점에서 정확한 수치를 보면 1981년 강진인구는 9만1,354명이였고, 1986년은 7만8천357명, 1996년은 5만3,512명이였다. 그러니까 77년 전문가집단의 강진군 인구 예상수치가 81년에는 2만여명, 86년은 5만명, 96년에는 거의 7만여명에 이르는 오차를 보인 것이다. 모든 농촌이 그랬겠지만 강진의 인구는 세월이 가면서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급감했던 것이다.

당시 책자에는 이러한 오류의 가능성에 대해서 몇가지 적고 있다. ‘미래의 인구는 과거의 성장 유형치를 미래로 연장시키므로써 이루어지는데 인구추정은 상당한 불확실성을 내포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농촌은 지난 40여년 동안 불확실성 속에 있었고 그 누구도 예측하기 어려운 안개같은 미래를 안고 살았던 것이다.

인구예측이 빗나갔다고 해서 ‘강진종합개발계획’이 지난 세월 크게 흔들리지는 않았다. 인구가 예상보다 감소했다고 해서 과잉공급된 것은 없어 보인다. 요즘들어 빈집이 늘어나고 있는 정도로 보면 될까. 올 설 명절에 내려오는 출향인들은 어릴적 북적거리던 고향 모습을 잠시나마 떠올려 보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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