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근한 맥주, 뜨뜻한 사기잔… 당연히 거품이 날 수 밖에

“옴천면장 술인심 좋았던 사람, 그런거 애낄 사람 아니였다”
소문 일파만파 전국 술자리에 단골등장… “오래전 일 이제 잊어달라”

옴천면장이 맥주를 한잔 사겠다고 하자 다른 면장들이 농담을 건냈다. “옴천면장도 술 살돈이 있당가” “아 맥주한잔 살돈도 없당가” 옴천 한면장이 농담을 받았다. 다른 면장들은 육군 상사출신이 몇 있었고, 옴천면장은 유일하게 대위출신이였기 때문에 이런 분위기에서 옴천면장이 밀리지 않으려 했다. 

옴천면사무소는 재정이 가장 어려운 곳이였으나 당시에는 사실 모든 면사무소가 돈이 있는 곳이 아니였다. 가난하기는 옴천면장이나 성전면장이나 매 한가지였던 것이다.

1977년 일간신문에 소개된 맥주를 맛있게 먹는 방법을 소개한 광고다. 이때만 해도 사람들이 맥주를 어떻게 마셔야 하는지 잘 몰랐다. 하물며 60년대 초반 옴천면장이 그것을 알았을리 없다.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맥주를 4병 시켰다. 맥주가 아주 귀할 때다. 삼거리 막걸리집에 유리잔이 있는게 아니여서 두툼한 사기잔이 나왔다. 잔을 아홉 개 놓고 옴천의 한면장이 술을 따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맥주가 냉장이 됐을 리가 없었다. 사기잔도 뜨뜻했다.

맥주 거품이 사정없이 넘쳤다. 한 병가지고 큰 사기잔으로 여섯잔 이상이 나왔다. 거품이 넘치자 면장들이 연신 사기잔을 혀로 핥았다. 다른 면장이 웃으며 그랬다. “옴천면장은 맥주도 못 따른당가” “맥주 애낄라고 그랑거 아니여” 좌중에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옴천의 한면장은 잔을 몇순배 돌리고 맥주가 부족하자 한병을 더 시키는 여유를 보이기도 했다. 계산도 그 자리에서 옴천면장이 했다.

마침 옴천가는 버스가 와서 면장이 급한김에 술을 빨리 따랐다는 말이 있으나 그것은 맞는 말이 아니다. 옴천가는 버스는 있지도 않았다. 술자리가 끝나고 옴천면장은 최병규 어르신과 마침 지나가는 세발트럭을 얻어타고 옴천까지 갔으니 정확한 증인도 있는 셈이다. 트럭을 만나지 못하면 옴천까지 걸어갈 참이였다.

그런데 그 후로 소문이 이상하게 돌았다. 몇몇 면장이 농담으로 시작한 말이 돌고 돌아 술자리의 화제가 된 것이다. 그러면서 술잔을 가득 채우지 않으면 “옴천면장 맥주따르대끼 한다”는 말이 나왔다. 맥주는 물론 막걸리나 소주를 마실때도 ‘옴천면장 맥주 따르대끼 한다’는 말이 단골처럼 나왔다. 그 말이 돌아 서울까지 갔고, 부산 대구까지 갔다.

최병규 어르신은 이제 그 이야기는 잊어달라고 했다.
옴천면사무소에서 퇴직한 최병규 어르신은 “당시 한면장이 술을 좋아했기 때문에 술인심이 나쁜 사람이 아니였다. 맥주가 뜨뜻하고 잔이 그래서 거품이 많이 났던 것 뿐이였다. 소문이 돈 것은 옴천 재정상황이 그만큼 좋지 않았다는 뜻인데 그때 그렇게 어렵지 않은 면이 어디 있느냐”고 말했다.

이 말 때문에 싸움도 많이 했다. 옴천주민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말이였다. 60년대 후반 한 옴천면사무소 직원은 밥먹는 자리에서 군동면사무소 직원과 멱살을 잡고 싸움까지 한 일도 있었다.  

맥주사건의 주인공이였던 한면장은 옴천에서 딱 1년을 근무하고 면장생활을 접었다. 평소에 막걸리를 대단히 많이 마셨지만 기회가 있으면 맥주도 종종 즐겼다고 한다.

최병규(82. 옴천면 황곡마을) 어르신은 “이제는 잊혀질때도 되지 않았느냐. 그냥들 잊으라고 해라”고 했다. 참고로 역대 옴천면장들은 일을 열심히 했을 뿐 아니라, 맥주 인심도 아주 후했다고 한다. 지금의 정성목 면장도 마찬가지다고 주민들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저작권자 © 강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