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영개인택시 김제섭씨 105만4천㎞ 운행, 전국 최고수준

▲ 김제섭 사장이 자신의 애마 개인택시에 올라타 운전을 준비하고 있다.

강진에서 서울까지 거리는 약 400㎞정도다. 그럼 택시 한 대로 8년 반 동안 105만4천㎞를 운행했다면 이 사람은 강진과 서울간을 몇 번이나 왕복한 셈일까. 계산기를 두드려 보면 약 1천번을 왕복한 것으로 나온다. 그런 사람이 강진에 산다. 지구를 한바퀴 도는 거리는 4만120㎞다. 이 사람은 8년 동안 택시를 운전하며 지구를 스물 여섯바퀴나 돌았다.

병영 개인택시 김제섭(52) 사장을 만나기는 무척 어려웠다. 언젠가 밤에 택시를 타고 병영에서 강진읍으로 넘어오면서 기사님으로부터 문뜩 그런말을 들었다. “내 차는 100만㎞가 넘은 찹니다” 차 내부가 어두워 얼굴을 볼 수도 없었다. 그 기억만으로 김제섭 사장과 통화를 시도했다.

김제섭 사장은 취재를 위해 병영면 소재지에서 만나기로 하고 찾아가면 어느새 목포나 광주에 있었다. 다시 약속을 하고 찾아가면 장흥이나 해남은 물론, 진도에 있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강진일보> 창간호 마감일이 촉박해 지면서 병영면소재지 개인택시 사무실로 찾아가 그를 억지로 붙잡았다. 인터뷰 도중에도 쉴사이없이 핸드폰이 울려댔다. 택시를 부르는 전화였다.

우선 택시문을 열고 미터기를 확인해 보았다. 지난 16일 오전 11시 미터기는 정확히 105만5천900㎞를 나타내고 있었다. 현재의 개인택시를 구입한게 2003년 8월이므로 8년 5개월 동안 이 정도를 탄 것이다.

여기서 8년 반이란 숫자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택시의 법적 수명이 7년으로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일반 승용차는 본인이 원하면 9년 이상을 얼마든지 탈수 있지만 영업용 택시는 7년이 수명연한이고 연장신청을 하면 1년씩 두 번을 연기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택시운전사들의 운행 거리는 차를 몇 년 동안 타느냐가 아니라 9년 안에 몇㎞를 탔느냐가 관전 포인트다. 일반적으로 9년 정도 운행한 택시는 60~70만㎞를 탄다고 한다.

그러니까 김제섭 사장의 경우 같은 기간에 다른 택시 보다 40~50만㎞를 더 탄 것이다. 김사장에 따르면 지금까지 수명기간 동안 가장 많은 거리를 운행한 택시는 102만㎞로 부산의 어느 전시장에 기념으로 전시돼 있다고 한다. 공식적인 부분은 더 알아봐야 겠지만 김사장의 택시가 기존 기록을 이미 깨버린 것이다.

물론 일반인이 사용하는 승용차의 경우 15년, 20년을 타도 이 정도의 거리는 나오지 않는다. 결국 김사장은 택시와 일반승용차를 통틀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 거리를 운행한 사람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것이다. 자동차 역시 105만4천㎞를 타는 동안 잔 고장 한번 없었다고 했다. 작은 접촉사고도 없었다. 덕분에 택시수입으로 만 세 자녀를 모두 대학까지 가르쳤다.

이쯤되면 그 비결이 궁금하다. 시골의 면단위에서 개인택시를 운행하면서 전국에서 제일가는 운행거리를 자랑하는 비법은 무엇일까. 김사장은 새벽 6시경부터 밤 11시까지 거의 쉬지 않고 운전을 한다고 했다.
추정컨대, 이런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우선 제때 오일을 교체해 줄 것이고, 손님을 빨리 실어 나르는 신속함이 있어야 할 것 같다. 그래야 킬로수를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속함에 대해서 김사장의 답변은 이같은 예상을 깨버렸다.

“병영면내에서는 물론이고 광주에 가느라 4차선을 달릴 때도 80㎞ 이상은 왠만하면 달리지 않습니다.”
차를 급하게 몰다보면 급정거할 때가 많고 이렇게 되면 차에 무리가 가기 때문에 차의 수명이 짧아진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승객들의 안전을 위해 차를 천천히 운전한다고 했다. 그럼 손님이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김사장은 단골손님이 수백명이 넘는다고 소개했다.

“손님들과 대화를 합니다. 할머니가 타면 건강이야기, 주부가 타면 물가이야기.... 요즘에는 소키우는 농민들이 타면 소값 이야기를 하지요. 진심으로 물어보면 손님들도 마음을 열고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그러면 나중에 택시가 필요하면 틀림없이 전화가 옵니다. 결국 손님들과 소통하는 것이지요”

소통이라는 말에 귀가 솔깃해 졌다. 요즘 한국사회에서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말이다. 소통의 필요성을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었다. 김사장은 작은 면단위에서 손님들과 소통하면서 전국에서 가장 많은 운행거리를 자랑하고 있었다.

지나놓고 생각해 보니, 기자가 취재를 위해 김사장을 찾아간 것도 몇 달 전 택시안에서 도란도란 나누었던 대화 때문이었다. 그날 김사장은 어두운 차안에서 그날의 날씨이야기와 가족이야기를 하면서 옆자리에 앉은 나를 편안하게 해주었다. 덩달아 나도 몇마디를 했던 기억이 난다. 대화는 그렇게 사람의 마음을 열게하고 서로 의지하게 하는 소통의 열쇠였다.

김제섭사장은 이제 택시를 바꿔볼 계획을 세우고 있다. 김사장은 “몇 년은 더 탈수 있지만 손님들에 대한 서비스차원에서 새 차가 필요할 것 같다”며 “창간하는 강진일보가 오래오래 생명을 이어가는 신문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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