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굴조사서 확인된 월남사의 ‘추억’-청자도판, 팔각향로, 청자베개등 출토

                      
절의 벽면은 청자도판으로 치장됐다. 도판 문형의 모란문양에서 모란향이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았다. 법당은 온통 비취빛 천지였다. 팔각향로에서는 은은한 연기가 피어오르고,  요사채의 방안에서는 송나라에서 가져 온 흑자완(黑瓷碗)을 이용해 차를 마셨다.

개성에서 잠시 쉬러 내려온 최고권력자들은 청자 의자에 앉자 뒤쪽으로 펼쳐진 월출산 절경을 감상했다. 그들은 그렇게 하다 피곤하면 청자 베게에 누워 낮잠을 청했다.

지금으로부터 8백여년전 성전면 월남사의 풍경을 이렇게 상상할 수 있는 유물들이  발굴됐다. 군에서 추진한 월남사지(月南寺址, 전라남도 기념물 제 125호) 일부에 대한 시굴조사가 마무리 되면서 확인된 것들이다.

이번 시굴조사는 (재)민족문화유산연구원이 지난해 말부터 올 1월까지 한달 여 동안 강진월남사지 3층 석탑(보물 제 298호)주변에서 이루어졌는데 12~13세기에 중점적으로 축조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유구가 다량 출토되었다.

출토유물은 기와와 도자기가 대부분으로 기와류는 고려시대 제작이 확인되고 있다.
귀목문(鬼目文) 수막새와 연화문 암막새의 존재는 건물지 위상이 높았음을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고려부터 조선까지 폭넓게 유물확인이 된 자기류는 고려시대 청자가 주를 이루는데 12~3세기의 완(碗)과 접시, 잔, 병, 향로, 의자, 베개 등 다양하고 많은 량의 출토가 관심을 끄는 대목이다.

도철문(饕uc0餮?)사각향로와 팔각향로는 의례용이며 의자와 베개 등 특수기종과 건물벽면 장식용으로 보이는 청자도판(陶板)은 출토사례가 드물고 모두 고급품의 유물로 당시 강진월남사지의 권위와 화려한 청자문화를 짐작하게 한다.

특히 중국 송대의 흑자완(黑瓷碗)이 확인되어 주목되는데 이는 당시 무인정권을 기반으로 한 월남사지의 사세(寺勢)와 함께 차 문화의 일면을 살필 수 있는 중요자료로 판단된다.

강진군은 강진월남사지 3층 석탑 주변의 군유지만을 대상으로 한 시굴조사에 그쳐 미흡하다고 밝히고 전체적인 사역범위와 건물배치 등의 정확한 파악을 위해서 문화재청의 지원을 받아 금년 하반기부터 전면적인 발굴조사가 이루어지도록 할 방침이다.

윤순학 강진군 문화관광팀장은 “그동안 문헌으로만 알려졌던 강진 월남사의 사세와 성격 등을 이번 시굴조사를 통해 조금이나마 확인할 수 있어 다행이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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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일상은 누구?

월남사지에서 이번에 출토된 명문기와 편에 ‘崔日尙(최일상)’ ‘京(경)’이란 글자가 나와 관심을 끌고 있다. 최일상은 사람의 이름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강진과 최씨 의 관계를 다시한번 생각하게 하는 유물이다.

월남사는 고려의 최씨 무신정권(1170년 ~1270년)때 중창했다는게 정설이다.  월남사지 곁에 있는 진각국사비(보물 제313호)가 이를 잘 설명하고 있다. 1196년 최씨 무신정권의 최고 권력자 최충헌이 권력을 잡았다.

최충헌은 장흥 출신 공예태후의 아들 신종을 왕위에 올리며 실권을 장악한 인물이다. 이어 최충헌의 아들인 최우가 정권을 잡아 최고 전성기를 누렸다. 최우의 아들인 최득전이 출가해서 월남사에 머물렀다는 기록도 있다.

고려와 최씨와 관련된 최씨중에 탐진최씨를 빼놓을 수 없다. 군동출신이면서 탐진최씨의 시조인 최사전(1067~1139)은 고려시대 인종의 어의였다.

최씨정권이 들어서기 전까지 지금의 국무총리에 해당되는 문화사랑 평장사라는 최고의 벼슬을 얻었다. 물론 최사전의 가계와 최씨 무신정권의 가계는 본이 다르다.

이번에 발견된 최일상이란 사람이 최씨 무신정권의 가계였을지, 아니면탐진 최씨의 시조 최사전의 가계였을까 하는 것은 알 수 없다.

최씨와 관련한 기록중에 많은 사람들의 기억속에 아직도 생생한게 있다. 지난 2007년 충남 태안앞바다에서 3만여점의 청자와 함께 발견된 목간이 있었다.
 
목간에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耽津亦在京隊正仁守了(탐진역재경대정인수료)' '강진(탐진)에서 개경에 있는 대정인수에게 보낸다. 최대경 댁에 올린다' 최대경과 최일상은 혹시 친척이 아니었을까. 발굴을 통해 나오는 역사의 편린들은 많은 수수께끼를 던져주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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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 사치품이였던 청자도편, 청자의자

청자도판과 청자베개는 문화재계에서 최고의 유물로 통한다. 청자도판은 지금으로 말하면 건물에 붙이는 타일이다. 지금으로부터 800여년전에 청자를 구워 건물벽에 붙힌 것이다.

이 유물이 발견되는 곳도 한정돼 있다. 지금까지 강화도 선원사와 경기도 파주시 해음원이란 사찰 발굴과정에서 나온게 전부였다. 선원사는 최씨 무신정권의 최우가 지은 사찰이고, 해음원은 고려왕실의 직속 사찰이었다.

청자의자도 구경하기 어려운 것이다. 이화여대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한점이 있을 정도다. 청자의자는 고려의 수도 개성에서 발견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처럼 월남사지에서 나온 청자도판과 베개등은 월남사가 고려왕실과 얼마나 가까운 사이였는지, 이 사찰의 위상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유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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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물보관은 어디에

이번에 발굴된 유물들은 1차 조사보고서가 나올때까지 발굴을 담당한 (재)민족문화유산연구원이 보관하게 된다.

이어서 출토유물 귀속과 관련된 법률에 따라 문화재청이 주인이 될 가능성이 크다. 현행 문화재버에는 발굴 문화재 모두를 국고에 귀속토록 하고 있다.

그러나 요즘에는 자치단체의 위탁 보관 관리가 어느정도 가능하기 때문에 강진군의 노력이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강진에는 청자박물관이 있기 때문에 월남사지에서 발견된 유물들을 이곳에 보관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강진에서 발굴된 청자편등은 국립박물관에 대부분 소장돼 있으며, 필요할 때 강진군이 이를 임대해서 전시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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