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지살다 귀농한지 5년만에 사회단체장... 비결은 주민들과 소통

지난 16일 오전 군동면 중산마을 오리농장에서 만난 송영갑 회장은 처음 오는 귀농인들이 잘 정착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들도 노력해야 하고 지역 사람들도 더 큰 사랑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누가 보면 쉽지만
누구나 될 수 없는 자리

주민들과 자주 만나니
주민들이 마음을 열었다

귀농 성공하려면
준비 많이 해야


 

광주나 서울에 사는 지인들이 오랜만에 만나면 하는 말이 있다. “군의원이나 한번 해라” “도의원은 어때?” “군수나 한번 하든지…….”

서울에서 사는 사람들은 군수나 도의원은 물론 군의원 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모른다. 대도시 선거보다 몇 배 어렵고, 몇 배 발품을 팔아야 주민들의 마음을 잡을 수 있는 시골선거의 어려움을 도시 사람들이 알 턱이 없다.

농촌에서 사회단체장을 하기 위해서는 그곳에서 10여년 이상은 살아야 일단 컷오프 대상에서 제외되는 게 묵시적인 전통이다. 도시에서야 신도시도 있고, 초대규모 아파트단지도 있어서 마음만 먹으면 이런저런 단체의 장을 하기가 어렵지 않지만 농촌마을에서는 그곳에서 살며 주변 주민들과 미운 정 고운 정을 나눠야 “음 그래 그래서 저 사람은 자격이 돼”하는 소리를 듣을 정도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농촌도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 귀농이라고 해서 외지인들이 많이 들어오고 있다. 그들이 지역사회에 정착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지만, 반대로 지역민들 또한 그들의 힘이 필요하고 그들과 함께 살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다문화 가정이 강진에 225가구가 된다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신기한 이야기가 아니다.

최근 군동면 새마을협의회장에 5년 전 귀농한 송영갑(64) 회장이 선출된 것은 그런 의미에서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보인다. 서울에서 생활 하던 ‘객지사람’이 강진에 들어와 5년 만에 군동면 새마을협의회장이란 사회단체장이 됐다. 10여년 전만해도 강진에서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제는 외지인들도 강진에 들어와 강진사람들과 함께 살며 사회단체장도 하는 시대가 점점 열리고 있는 것이다.

흔한 말로 ‘중국 화교들이 짜장면집을 못 낸 곳은 강진뿐이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강진은 외지 사람들이 성공하기 어려운 곳이라고 한다(그러나 실제 강진읍에는 중국 사람이 운영하는 중국집이 있었다고 함). 장흥과 영암, 해남은 강진사람들이 많이 진출해서 상권을 장악하고 있는데 강진에서는 외지 사람들이 상업으로 성공하지 못한다는 말도 모두 그런 맥락이다.

그러나 송영갑 회장의 사례에서 보듯이 강진의 많은 분야에서 그 같은 폐쇄성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송회장은 5년 전 강진에서 오리농장을 시작했다. 서울에서 자동차 부품 관련 사업을 하다가 ‘이제는 내 인생을 찾아보자’고 귀농을 결심했다. 사업을 하며 시간을 쪼개서 7년 동안 틈틈이 전국을 찾아다니며 귀농할 곳을 물색했다. 결국 처가가 있는 군동면에 정착하기로 하고 현재의 땅을 구했다.

그러나 정착과정에서 이런저런 문제에 부닥쳤다. 처가가 있다고 해서 모든 게 순조롭지는 않았다. 오리농장이 온다고 하자 가까운 마을에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오리농장에 대한 거부감이 지금 정도는 아니었지만 주민들을 설득해야 하는 것은 똑같았다.

송회장은 주민들을 찾아가 솔직하게 대화했다. 계획을 말했다. 친환경적으로 오리를 키우겠다는 것, 냄새가 절대 나지 않게 하겠다는 것 등 자신이 앞으로 오리농장을 경영하면서 어떻게 하겠다는 계획을 소상히 설명했다.

이웃주민 오점수씨가 송회장의 의견에 적극 동의하며 최선을 다해 볼 것을 권장했다. 오점수씨 또한 친환경농업에 관심이 많은 전문가였다.

송회장이 약속했던 친환경오리사육은 미생물을 처리해서 축사안의 오리배설물을 발효시키는 것이었다. 송회장은 이 과정에 특허를 가지고 있다.

“오리의 배설물에서 미생물이 삽니다. 미생물은 생명이 있지요. 그것을 습도와 온도, 공기를 잘 맞춰주면 발효를 합니다. 지독한 냄새가 나는 것은 그것이 썩기 때문이지요.”

송회장과 함께 들어간 오리농장 비닐하우스 안은 오리배설물이 등재와 섞여 가득했지만 실제로 별다른 냄새가 나지 않았다. 송회장이 그것을 손에 들고 만져 보자 보실보실하게 흘러내렸다. 거의 건조 상태나 마찬가지였다.

송회장은 이러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주민들을 설득하고, 실제 그렇게 주민들과의 약속을 지켰다. 귀농을 준비하며 공부를 했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오리농장을 경영한 송회장은 지금은 2만 5천수의 오리를 거의 혼자서 키우다 시피하고 있다.

처음 정착과정에서 어려가지 어려움이 있었지만 마을주민들을 만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마을주민들이 뙤얕볕에서 일하고 있으면 음료수라도 한잔씩 대접했고, 마을의 애경사는 빼지 않고 참석했다. 마을에 어려운 일이 있으면 자신의 처지가 아무리 어려워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주민들과 벽이 차츰 없어졌고, 서로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생겼다.

송영갑회장이 자신의 집에서 키우는 말을 타고 탐진강 주변을 산책하고 있다.
그 와중에 지난해 초 마을 주민들로부터 제안이 들어왔다. 마을의 새마을지도자를 해보라는 것이었다. 새마을지도자가 어떤 자리인가. 지금은 시대가 많이 달라졌지만 80년대까지만 해도 마을의 요직중의 요직이었다.

지금도 각 마을에 1명씩이 활동하고 있고, 각 마을의 지도자는 면단위 협의회를 구성하고 있으며, 그들은 다시 군 단위 협의회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전국단위 조직이 아직까지 건재한 것은 물론이다. 아무리 시대가 변했다고 하더라도 ‘객지사람’에게 내주기는 아까운 자리다.

그러나 마을주민들은 새마을지도자의 적임자로 송회장을 선택했다. 송회장은 내심 걱정했다. 섭섭해 하는 주민이 있으면 안 될 일이었다. 송회장은 “아직 개인적으로 할 일이 많으니 나중에 맡겠다." 고 사양했다.

그러나 마을주민들의 한결같은 요청을 받으며 “그럼 열심히 한번 해보겠다”고 어려운 일을 맡았다. 마을 새마을지도자를 하면서 군동면새마을협의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덕분에 이번에 협의회장을 맡게 되는 영광을 안았다.

송회장은 새마을협의회는 보답을 받기 위한 자리가 아니라 맨바닥에서 봉사하는 단체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지금은 새마을협의회의 역할이 많이 줄었지만 무언가 좋은 일을 찾아서 열심히 하면 위상도 크게 높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송회장의 임기는 앞으로 3년이다. 3년 동안 새마을협의회의 모습이 어떻게 바뀔지 궁금해진다.

송회장은 귀농인들 사이에서도 대부로 통한다.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강진군귀농인협회 초대회장을 했다. 강진의 귀농인이 벌써 300여명에 이른다. 그렇다고 이들이 모두 잘사는 것은 아니다. 정착해서 잘 사는 사람도 있지만 실패하고 떠나는 귀농인도 보았다.

지난 5년 동안 농촌으로 몰려드는 귀농인 들을 볼 때 성공한 귀농인과 실패한 귀농인은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성공한 귀농인은 철저한 준비를 한 사람이었다. 미리 목표를 정해서 그 목표에 맞게 공부를 했고, 목표에 맞는 귀농장소를 찾았다.
 
실패한 사람은 그 반대였다. 일단 내려와서 무엇을 할 것인지 찾았다. 지식도 없었다. 있는 돈을 몽땅 쏟아 넣었다. 한번 실패하면 재기하기가 어려웠다. 그런 사람은 농촌을 다시 떠나갔다.

“꼭 부탁하고 싶은 게 처음에는 있는 돈의 3분의 1만 투자하라는 것입니다. 나머지는 아껴놓아야 해요. 처음에는 실패할 확률이 높잖아요. 그럼 그때 나머지 돈을 써야 해요. 그래야 실패해도 버틸 수 있고 다시 일어설 수도 있습니다”

귀농해서 성공한 사람의 너그러운 마음 때문일까. 송회장은 강진의 인심에 대해 칭찬을 많이 했다. “풀치터널을 처음 들어오면 가장 먼저 보이는게 ‘강진은 날씨 보다 인심이 따뜻한 고장입니다’란 말이 있습니다. 그 말이 딱 맞아요. 강진에서 제2의 인생을 살게 해준 주민들에게 참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 가지가 궁금했다. 귀농인들은 자기가 정착할 곳을 찾아온다고 생각한다. 정착지는 산으로 둘러싸인 폐쇄적인 공간을 상상할 때가 많다. 그래서인지 귀농인 들은 스스로를 폐쇄적인 공간에 넣으려는 모습을 보일 때가 있다. 그런 행동이 지역사회와 동화하는데 걸림돌이 되는 것은 아닐까.

“참 어려운 이야깁니다. 처음 들어 온 귀농인들이 그래요. 여기 살러 온 사람들이 오히려 마음을 닫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어디에 찾아가면 누가 반가워를 해줍니까, 알아봐 주기를 합니까. 참 외로울 때가 많아요. 그래서 처음 귀농하겠다고 온 사람들은 마음을 더욱 닫는 것이지요. 귀농인들이 강진에 잘 정착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들도 노력해야 하고 지역사람들도 더욱 큰 사랑을 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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