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전 이야기’구전으로 듣고 드라마화

당시 방송작가 사건 팩트 접근 못해 
1939년 사건을 1946년으로 소개
퇴직경찰의 영웅담 수준 픽션가득

범인인 고재웅이 노름쟁이 소갈찌를 죽이는 과정은 드라마 법창야화에 의외로 단순히 묘사된다. 책으로 나온 법창야화 분량이 446페이지인데 두 사람이 군동에서 산길을 따라 병영으로 넘어가며 살인사건이 벌어진 과정은 고작 두페이지 분량도 안된다. 나머지 440페이지 정도의 분량, 그러니까 ‘갈갈이 사건’이란 선정적인 제목을 달았으면서도 드라마의 99%가 범인을 잡기까지 과정을 극적으로 묘사한 신변잡기식의 내용이 대부분이다.

소갈찌가 노름돈을 보태라고 윽박지르자 병영사람에게 돈 받을 게 없으면서도 병영에 함께 가자고 거짓말을 했던 고재웅은 소갈찌와 함께 병영으로 가기 이틀전 미리 그 길을 걸어본다. 이를테면 사전 답사를 한 셈이다.

당시 신문보도에 따르면 사건은 1939년 10월 30일 일어난다. 두 사람은 그날 오후 6시쯤 군동을 출발해 병영으로 향했다. 고재웅이 병영사람으로부터 꿔준 돈을 받아 소갈찌에게 노름돈을 건네주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법창야화는 사건발생 시점을 1946년 3월로 잡고 있다. 사건의 가장 중요한 팩트를 실제 사건 발생 시점과 7년이나 후로 잘못 잡은 것이다. 이는 당시 법창야화 작가였던 최풍(79년 7월 사망)씨가 사건의 팩트에 다가가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 법정야화 단행본에 들어간 삽화
그는 당시 사건기록이나 판결문을 접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법창야화 책 내용에 따르면 그가 사건을 파악하기 위해 만난사람은 ‘수사의 일익을 맡았던 서울에 사는 퇴직 경찰’과 현지 마을 주민들이였다.

법창야화 책 내용에는 훗날 고재웅이 대구 형무소에서 사형당한 모습이 나오는 데 사형집행 날짜 조차 19××년, ×월 ××일로 나와 있다. 정확한 날짜를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물론 지금도 사형집행 날짜를 알 수 없지만, 70년대 초반에 사건의 진실에 다가가는데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기억이 희미해진 퇴직경찰관은 자신들이 범인을 잡기까지 벌였던 영움담을 말했을 것이고, 주민들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사건 내용을 살벌하게 묘사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강진갈갈이 사건은 70년대 초반 한 방송작가가 퇴직경찰의 영움담과 강진에서 구전돼 내려오는 주민들의 말을 취합해 만들었던 말 그대로 연속극 성격이 강했던 것이다.
당시 살인장면을 법창야화 대본 그대로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병영고갯길엔 산새가 많다. 깨질 듯 조용한 고갯길이 였다. 길 옆은 아스라한 낭떨어지가 있었다. 산새의 울음 소리만 없다면 그냥 숨결이 없는 정지된 한폭의 그림이다. 그 그림같은 고갯길을 두 사내가 바삐걷고 있었다.

그림같은 고갯길에는 어울리지 않은 두 사내. 한 사람은 저 악명높은 소갈찌요, 또 한사람은 무서운 계획을 품고 가는 고재웅이였다. 그들은 지금 병영으로 넘어가서 그 곳에 있는 누군가에게 돈을 받아 내야 하는 것이였다.

그들은 쉬어갈 요량으로 길가 잔디위에 앉았다. 그때 소갈찌가 고재웅을 툭 치며 “자네 뭘 그렇게 생각하나.”하고 말했다.
“성님” “워쪄?”
“되돌아가는 것이 워떻겄소?” “뭣이여?” “날씨도 요렇거럼 저물어 가는디 별로 마음에 안내키는구만요”
“야” 하고 소갈찌가 눈을 부라리며, “너 이자슥, 고 돈이 아까와서 꼬리를 뺄 작정이여? 임마, 여긴 인적이 드문 산속이여, 너 같은 놈 하나 저 아래로 밀어 처박아서 귀신도 모르게 보낼수 있지만 인생이 불쌍혀서 내 고런짓은 안허것다”하고 엄포를 놓았다.

고재웅은 하는수 없이 또 일어서서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길을 가던 고재웅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소갈찌가 이를 보았다.

“야 이자식아 너 워쩌서 고렇거럼 부들부들 떨어? 요거 안 되겄고만. 네가 앞장서라. 내가 뒷따라 갈 테니께” 하며 소갈찌는 뒤따라 오던 고재웅을 앞세우고 자기가 뒤따라 갔다.

소갈찌는 고재웅의 눈길에서 무엇인가 불안을 느낀 모양이였다. 예상은 적중했다. 몇발짝 앞서가던 고재웅이 갑자기 뒤돌아 서며 순간 ‘예잇’하고 소갈찌를 밀어버렸다. 소갈찌가 “으악”하는 단발마의 비명을 남기고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졌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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