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나무를 산림과에서 심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산림과는 산의 나무를 관리하는 곳이니 새마을과에서…
공무원들, 주말과 휴일 반납 막노동
지금의 벚나무 터널 장관 만들어
지금은 봄이되면 군동 호계리에서 금곡사앞을 거쳐 작천까지 이어지는 벚꽃이 장관을 이뤄 강진사람들은 물론 관광객들의 큰 볼거리가 되고 있다. 이 벚꽃거리가 생겨나기 까지 적지 않은 에피소드가 있었다.
92년 부임했던 문병일군수는 나무를 심는 일에 유난히 애정이 많았다. 문군수는 호계리에서 금곡사로 이어지는 도로 주변에 나무가 없는게 늘 아쉬움이였다.
경남 진해의 벚나무가 늘 부러웠다. 그래서 생각한게 호계리~ 금곡사까지 벚나무를 심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나무심는 예산이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본예산만 내 주면 나머지 부대적 일을 해당 부서 공무원들이 말그대로 몸으로 해결하는 시대였다. 실과장이 참석한 간부회의가 열렸다. 문군수가 입을 뗐다.
“금곡사 가는길에 벚나무를 심어야겠는데 어느부서가 맡아야 할 것 같습니까. 아무래도 나무를 심는 일이니 산림과가....”
산림과장이 한마디했다. “저희 산림과는 산에 나무를 심는 부서이기 때문에 가로수를 심는 일은 새마을과에서 하는게 적당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만...”
당시에는 88올림픽때 대대적인 도로변 정비를 하면서 각 시군에 화단을 정비하는 부서가 따로 있었다. 산림과장의 말은 그 부서에서 가로수를 심고 관리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이였다. 그러자 새마을과장이 입을 열었다.
“새마을과는 화단을 관리하는 부서이지 전문적인 나무를 심고 관리하는 일은 여러 가지 부족합니다. 가로수는 나무 전문부서인 산림과가 해야할 것 같습니다만...”
두 사람이 일을 서로 미루면서 핑퐁분위기가 됐다. 문군수도 멋적어졌다. 그래서 대뜸 가정복지과장에서 한마디 했다.
“이 일을 가정복지과에서 맡아주면 어떻겠습니까. 가로수는 주민들의 복지와 관계될 수도 있으니... ” 이 말을 듣고 있던 원용호 기획실장이 “그냥 기획실에서 하겠다”고 분위기를 바꾸었다. 도저히 가정복지과에서 할 일은 아닌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기획실이 가로수를 심기로 하고 본격적인 작업이 시작됐다.
당시에는 묘목을 구하기도 힘들었다. 전국을 수소문한 끝에 제주도에서 600여주의 묘목을 구했다. 직경이 15㎝로 비교적 큰 나무였다. 기획실직원 15명이 매주 주말과 일요일에 이 일에 메달렸다.
시간외수당도 없을 때였다. 당시 기획실의 기획계장은 신석재, 예산계장은 임경룡, 법무계장은 윤영관 이였다. 포크레인이 대충 구덩이를 파주면 기획실 직원들이 삽으로 모양을 만들었다. 인근 야산에서 마사토를 파서 들 것으로 옮겨 구덩이에 넣었다.
나무를 심고 지주를 세우고 지주를 보호하기 위해 페인트를 칠했다. 각 나무에는 공무원들의 명찰을 달아 나무를 심은 후에도 관리를 하게 했다. 이 사업은 2년 동안 계속되면서 금곡사를 넘어 작천 평리까지 벚나무가 착착들어섰다.
당시 나무심기에 참여했던 한 공무원은 "지금도 그 길을 지날 때면 그때 고생했던 일이 눈에 선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