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준 / 동국대 교수.시인

“ 우리가 찾고 있던 보물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함께 어울려 있다. 즉 눈부시게 반짝이는 아침의 동백나무 숲, 비 개인 월출산 하늘에 떠있는 구름, 그리고 밝은 달이 탐진강을 건너올 때를 차를 마시기 좋은 때라고 다산이 말하였다는 것을”

금릉의 네가지 보물을 찾아나섰다가,  월출산의 달과, 만덕산의 동백, 탐진강의 청자를 만났다. 이 달과 동백 그리고 청자를 보다 더 아름답게 하는 것은 강진의 차가 있기 때문이다.

차는 우리가 찾는 강진의 네 번째 보물이다.  이곳 강진에서 18년간 머물렀던 다산은 차 마시기 좋은 때를 일러 ‘아침나절 꽃이 피어날 때, 뜬 구름이 비 갠 하늘에 곱게 떠 있을 때, 낮잠에서 갓 깨어났을 때, 밝은 달이 푸른 시냇가에 휘영청 비추일 때’라고 하였다.

이 차마시기 좋은 때와 강진의 네 가지 보물을 대입해보면, 우리가 찾고 있던 보물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함께 어울려 있다.

즉 눈부시게 반짝이는 아침의 동백나무 숲, 비 개인 월출산 하늘에 떠있는 구름, 그리고 밝은 달이 탐진강을 건너올 때를 차를 마시기 좋은 때라고 다산이 말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강진의 차는 어디서부터 그 연원을 밝혀야 할까? 그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고려시대 월남사 진각국사의 차시나 백련사 팔국사의 차시를 필두로 하여 조선 후기에 이르러 그 생산과 유통에 이르기까지 우리에게 온전한 차문화의 흐름을 보여주는 차문화사의 가장 역동적인 현장이 된다는 것은 강진의 차문화가 하루 아침에 일어선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과 역사 속에서 다듬어 졌다는 것을 말한다.

조선 후기 강진의 차문화를  비교적 자세히 알 수 있는 것은 범해각안(梵海覺岸)의 <다가(茶歌)>를 통해서이다. 이 <다가>에 등장하는  생산현장에 관한 언급은 모두 8구절이 등장하는데, 그 가운데 이 두 구절이 강진을 주목하고 있어 흥미롭다.

 康海製作北京啓 강진과 해남에서 차 만드는 것은 북경의 계시를 받았다네
 月出出來阻信輕 월출산서 나온 것은 믿음이 가벼워지는 것을 막았다네.

각각 떨어져 있는 구절이지만 이렇게 이어놓고 보면, 앞 구절에서는 강진과 해남에서 새로운 차를 만들기 시작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뒷 구절에서는 귤동의 <다신계>이외에도 정약용과 교류를 한 강진의 새로운 차생산 집단이 월출산에 있었다는 것을 짐작하게 하는 부분이다. 

이 시대의 다른 기록들에서도 새로운 차문화의 기풍이 자리잡고 있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 조재삼(趙在三·1808~1866)은 정차(丁茶)와 남차(南茶)가 기록하고 있고, 이규경은 강진에서 찌고 말려서 만든 만불차(萬佛茶)에 관한 기록을 우리에게 남겨주고 있다.

정차는 정약용, 남차는 정약용의 제다법을 한단계 더 발전시키고 완성지은 초의선사의 차를 가르키고, 만불차는 아암혜장과 그 제자들이 만들던 만덕산 백련사의 제다법을 말한다.  이렇게 볼 때, 강진에서는 귤동 다산계열의 차와 월출산 백운동 계열의 차 그리고 만덕산 백련사 계열의 차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강진의 차생산현장이 한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넓은 지역에서 다양한 사람들에 의해 생산되었다는 것이 강진이  조선 후기 차문화사의 중심이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즉 이곳 강진에는 예전 만들던 차가 있었는데, 그것을 다산 정약용이 중국에서 들어온 차와 비교하고 재조명하여 구증구포라는 새로운 제다법을 창안한 것을, 초의선사가 더 발전시켜 완성하였다는 것이 우리차문화사를 이해하는 바탕이 될 것이다.

그리고 뒤이어 등장하는 백운옥판차, 금릉월산차, 금릉다산향이란 차이름은 우리 현대차문화의 서막에 화려하게 수놓는다.

강진의 차에는 옛 것을 이어서 새것으로 만드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과 함께, 중국차의 도전에 응전을 한 우리선조들의 지혜가 담겨있다.

강진에는 다도(茶道)가 있다. 차를 수행하는 뜻의 어려운 의미의 다도가 아니라, 글자 그대로 차에게로 가는 길이다.
 
월출산에 올랐던 초의선사의 길, 월출산 백운동에서 만덕산 백련사를 거쳐  귤동으로 이어지는 아암혜장과 다산 정약용의 길, 그 길을 걸으며 묻노니 강진이여, 강진인이여, 강진의 차문화가 찬란한 슬픔의 모란처럼 피는 날까지 기다리고만 있을 것인가?

이제 기지개를 펴고 이 시대의 새로운 차문화를 꽃 피울 때가 되지 않았는가? 나는 차에게로 가는 길을 걷는다. 이 길을 걸었던 그 때 그 사람들의 차와 함께한 기쁨이, 지금 이 길을 걷는 사람들의 차 한 잔 속에 찬란하게 피어나는 날까지 걷고 또 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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