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명 / 완도 금일고등학교 교사

월남사터 3층 석탑이 있는 곳에서 조금 위로 올라가면 아주 용맹스럽게 생긴 커다란 거북 위에 얹힌 비석이 하나 있다. 월남사를 창건한 진각국사 혜심(1178~1234)을 기리는 비로 알려져 있다.

진각국사는 고려 고종 때 살았으며 스물네 살에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당시 조계산에서 수선사를 열어 선풍을 펴고 있던 보조국사 지눌에게 가서 어머니의 명복을 비는 제사를 지낸 후 머리를 깎고 지눌의 제자가 되었다.

지눌이 살아있을 때 그의 후계자로 인정을 받았고, 1210년 지눌이 입적한 후 조계산 수선사(지금의 송광사에 있던 수행결사)의 제2세 사주가 된 사람이다.

당시 무신정권의 실력자였던 최우가 그의 명성을 듣고 여러 번 초청했으나 오지 않자 그의 아들인 만종과 만전(최항)을 보내 제자로 삼게 하였다.

혜심은 지눌의 충실한 제자였을 뿐만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고려 선가(禪家)의 위치를 굳건히 다진 인물로 한 번도 서울 땅을 밟은 적이 없으면서도 나라 전체의 존경을 받았다. 고종 25년(1234년) 56세 나이로 입적하자, 왕이 진각국사라는 시호를 내렸다. 

비석의 위쪽은 깨져 없어졌는데 대석과 거북의 기세, 비석의 폭으로 보아 매우 웅장한 비였음을 알 수 있다. 남아 있는 비의 높이는 2.12m, 폭 1.3m, 전체 높이는 3.58m로 용머리를 한 거대한 화강암 돌거북이 편마암을 깎아 세운 비신을 등에 지고 있는 형상이다.

편마암으로 된 비석의 앞면에 새겨진 비문은 고려시대의 대문장가였던 이규보가 지은 진각국사 혜심의 행적이 적혀 있는데, 남아 있는 면이 마멸되어 다 읽어낼 수는 없지만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과 「동문선」에 그 내용이 실려 있다.

비의 뒷면에는 앞면의 비문과는 별도로 최자가 지은 것으로, 비를 세운 경위와 진각국사의 제자 118명의 이름 등이 기록된 음기(陰記)가 적혀 있다.

음기에 따르면 이 비는 고종 37년(1250)에 최씨 무신정권의 제2대 집정인 최우와 그의 아들 최항의 각별한 관심에 따라 이곳 월남사에 세워졌다 한다.

최우는 진각국사를 몹시 존경하여 자신의 두 아들을 그의 제자로 보냈는데, 최항은 그 가운데 하나로 나중에 환속하여 최씨 정권의 3대 집정이 되었다. 

만들어졌던 시대를 반영하듯 보는 이에게 위압감을 주며 무인풍의 호방함을 보이는 거북과 비는 현재 보물 제313호로 지정되어 보호각 안에 들어있다.

저작권자 © 강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