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막 살인사건 수준… 갈갈이라 할 정도 아니였다

1939년 단순 살인사건 드라마가 사건 확대 재생산
전달매체 부족한 시설 소문이 더 큰 소문 만들어
지역주민들도 '살벌한 소문' 산파역

강진갈갈이 사건과 관련해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기억하는 것은 범인이 사람을 갈기갈기 찢어죽였고 그 때문에 ‘갈갈이 사건’이란 이름을 붙였다는 것이다. 그럼 당시 사건은 사람을 정말 갈기갈기 찢어 죽였던 것일까.

지난호에서 기술했듯이 ‘강진갈갈이 사건’에 대한 기록은 1940년 5월 23일자 동아일보 기록이 있고, 법창야화 1화가 방송된 대본을 편집해 펴낸 ‘문화방송 연속실화극 강진갈갈이 사건’이란 책자가 있다. 또 가장 중요한 것으로 사건이 발생했던 마을사람들의 증언이 있고, 그 다음으로 사건현장에서 한참 떨어져 사는 사람들이 소문으로 들은 구전이 있다.

여기서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사건이 발생했던 마을사람들의 증언과 그곳에서 한참 떨어져 사는 사람들의 구전은 분명히 구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1939년 10월 발생한 이 사건은 세월이 흐르면서 소문이 소문을 만들어 내고, 다시 그 소문이 확대되면서 사건내용이 눈덩이처럼 커져 확산됐다. 사건현장에서 떨어져 있는 지역은 더 많은 소문을 만들어 냈다. 거대한 소문들이 마치 사실처럼 고착화 됐고, 강진사람들이 그 소문을 확대해 만들어내는 산파역을 했던 일도 허다했던 것이다.     

사실에 접근해 보기 위해 우선 세가지, 다시말해 동아일보 기록과 법창야화 대본 책자, 사건이 발생한 주변 마을 사람들의 증언을 종합해 보자. 이를 검토해 보면 당시 사건이 신체를 상당부분 훼손한 것은 사실이지만 ‘갈갈이’라는 표현이 갖는 의미대로 신체를 산산히 찢어죽인 사건은 아니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동아일보 기사를 보자.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흉기로 목을 베어 죽인뒤 범행을 감추기 위해 얼굴 가죽을 벗기는 갖은 끔찍한 짓을 했다’고 적고 있다.

또 범인이였던 A씨와 절친한 친구(현재 93세)사이였던 이웃마을 주민에 따르면 시체를 발견할 당시 목이 베어져 있었고, 엄지손톱이 뽑아져 있었다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증언했다. 이를 종합해 보면 살해당한 피해자 B씨는 발견당시 몸과 목이 분리돼 각각 다른 장소에서 발견됐고, 손톱이 뽑아져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후술하겠지만, 범인이 피해자의 신체를 훼손한 것은 피해자의 신원을 숨기려고 했기 때문으로 밝혀진다. 피해자 B씨는 얼굴이 곰보였고, 오른손 엄지 손가락에 줄이 있었다.

 범인은 시체의 얼굴가죽을 벗겨 곰보자국을 없애고 특정 자국이 있는 손가락을 빼버리면 완전범죄를 할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런데 라디오로 전파를 탄 법창야화 내용은 굉장히 살벌하다. 목과 양팔, 양다리가 각각 잘리어 흩어져 있었고, 모든 손톱과 발톱이 뽑아져 있었던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또 손톱발톱을 뽑은 이유는 죽는 사람에게 극도의 고통을 주려는 잔인한 행동이였다고 기술하고 있다.

소문은 더 살벌하다. 범인이 죽은 사람의 뭄뚱이 가죽을 벗겨 나뭇가지 수십군데에 걸어 놓았고, 살과 뼈를 갈갈이 찢어서 흐트러 놓았으며, 두 눈알을 빼 놓았다는 소문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말은 법창야화 대본에도 없는 내용들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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